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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를 생각하면 안타깝고 정권 교체를 생각하면 시원하고도 고맙다. 정권 교체의 당위 앞에 야권 후보 단일화는 꼭 넘어야 할 산이었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 앞에 단일화는 답보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치 개혁과 쇄신을 외치는 문-안 두 사람도 별 수 없다는 말들이 들렸다.

하지만 23일 오후 8시 20분 안철수가 후보를 사퇴하고 문재인 후보의 지지를 선언했다. 역시 안철수답다. 그는 국민 앞에 약속한 단일화가 그 어떤 가치보다 앞서는 것이라고도 했다. 안 후보의 사퇴는 야권 단일화를 구태라며 두 사람을 이간질하던 새누리당에 일격을 가한 사건이기도 했다.

다 알다시피 안철수는 작년 10·26 보선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에게 후보를 양보함으로써 기존의 정치에 쐐기를 박는 역할을 했다. 구 정치에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일을 안철수가 해냈다. 그 양보로 인해 그는 이미 대선 후보 반열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안철수는 본인이 후보가 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국민이 원해서 후보가 된 경우에 해당된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그 자체로 정치 쇄신을 향한 몸짓이었다. 그의 말과 행동에는 진정성이 묻어났다. 그래서 많은 국민이 정당 기반도 없는 그를 좋아하고 따랐다. 그가 문재인과 후보 단일화를 위해 TV 토론에 나갔을 때, 나는 두 사람에게서 구태 정치를 벗어날 희망을 발견했다. 문재인도 그랬지만 안철수는 정말 신선했다.

그는 웬만해서 흥분하지 않았으며 상대 토론자(문재인)에 대해서도 최대한의 예를 갖추어 맞섰다. 정치 발전은 말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준 토론회였다. '100분 토론'이니 '심야 토론'이니 해서 뻔한 토론자들이 나와 핏대를 올려가며 말싸움하는 것에 익숙한 눈에는 그들의 토론이 신기하게 느껴지기조차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막장 토론도 단일화를 일구어 내지는 못했다.

안철수는 마지막 수를 던졌다. 문재인에게 후보를 양보하고 자신이 사퇴하는 길을 택했다. 나는 그의 이런 결단이 정치 개혁과 정치 쇄신 나아가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다수 국민들의 뜻을 읽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안철수도 별 수 없다는 세간의 시선들을 일시에 불식하게 만들었으니까. 안철수는 눈앞의 유익을 포기하고 더 큰 것을 일구어 낼 줄 아는 사람이다.

새로운 정치가는 이런 자세의 사람이다. 안철수의 후보 사퇴를 놓고 대체로 세 가지 평가들이 나오는 것 같다. 먼저 안철수 사퇴를 잘한 일이어서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두 번째는 안 후보의 사퇴는 잘한 일이지만 방법론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세 번째 부류는 안철수의 사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다.

이것을 조금 더 부연 설명하자면, 안철수의 사퇴를 정권 교체를 위한 희생으로 보고 그의 행동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단일화의 다른 한 축이었던 문재인 지지 그룹과 안철수 후원 그룹 일부가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이들은 안철수의 정치 생명이 끝난 것으로 보지 않고 더 강한 리더십을 갖춘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될 인물로 안철수를 본다.

두 번째, 안철수의 사퇴를 환영하면서도 그 방식에 다소 불만을 표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양보의 모양이 좋지 않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경선 룰을 좀 양보해서 선의의 경쟁으로 국민적 관심을 끌어 올린 뒤 경선 패배로 물러나는 방법이 좋았을 것이라는 주문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런 주문은 정권 교체와 문재인 후보에 매몰된 사고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정당 조직도 없이 대선 후보 빅3에 속한 안철수는 기존 정치권에서도 무시 못할 존재였다. 그렇다면 그의 정치 철학과 정체성 그리고 지향점들이 없을 수 없다. 이런 그에게 모양 좋은 양보를 말한다는 것은 일방적 요구밖에 안 된다.

세 번째 부류는 안철수의 사퇴를 무조건 부정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평가이다. 여기에도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문재인의 적극 지지자들 중 이런 눈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안철수가 양보하지 않고 3자 구도가 되어도 문재인이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안철수에 대한 것은 무조건 부정적 시각으로 보려고 한다. 확언컨대 이런 사람들은 문재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세 번째 부류의 또 하나 큰 줄기는 박근혜 지자들이다. 이들은 안철수가 후보를 사퇴하지 않고 3자 구도로 대선을 치러야 승산이 있는데, 그가 사퇴하고 문재인-박근혜 2자 구도가 됨으로써 버거운 싸움이 될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사퇴를 잘못된 선택이라고 강변한다. 대선을 전쟁에 비유한다면 이기기 위해서는 여하한 생각과 행동도 거침없이 할텐데, 상대 후보의 진지를 강화시켜 주는 안철수 후보 사퇴를 정상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안철수 후보가 대승적 결단을 했다고 본다. 소수를 위한 보수 정권의 재집권을 막기 위한 것보다 더 시급하고 절실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이익에만 매몰되다 보면 큰 것을 잃게 된다. 안철수는 큰 것을 얻기 위해서 작은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이번 후보 사퇴로 정치적 무게가 더 무거워지게 되었다. 살신성인의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유익이다. 그의 이런 사퇴를 구태 정치에서 과연 맛볼 수 있었을까.

과거에도 단일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밀실 야합이거나 성공하지 못한 단일화로 우리의 정치사는 점철되어 있다. 노태우-김영삼의 야합이 그렇고, 소위 DJP(김대중-김종필-박태준) 연합도 그런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며, 성사 직전까지 갔다가 파기된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도 볼썽사나운 것이었다. 결국 실패해서 노무현 당선으로 이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단일화는 작은 것 때문에 큰 것을 거르기 쉬운 작업에 속한다. 그래서 한 치의 양보 없이 줄다리기를 하다가 결국 결렬되고 마는 것이 구태에서 자주 목격한 단일화였다. 안철수는 이런 구태를 탈각하고 후보를 사퇴함으로써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안철수는 아직 젊다. 그의 이번 대선 후보 사퇴는 더 큰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한 자신을 위해서도 유익한 것이었지만 새 정치를 바라고, 희망의 정치를 열망하는 국민들에게도 그 가능성을 선물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결단을 대승적인 것이었다고 해도 결코 손색이 없다 할 것이다.


#안철수 사퇴#문재인 지지#정치 쇄신#구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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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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