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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6일 화재로 사망한 뇌성마비 중증장애인 김주영씨의 노제가 10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 조재현

서른넷, 아직 세상을 뜰 나이가 아니었다.

지난 10월 26일 서울의 한 주택에서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불은 10분 만에 꺼졌지만 집 안에 혼자 있던 중증장애인 김주영씨는 목숨을 잃었다. 혼자서 움직일 수 없었던 그녀는 살기 위해, 살고 싶어 터치펜을 입에 물고 119에 전화했지만 소방관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7평짜리 원룸, 현관까지 불과 다섯 걸음. 다섯 걸음 바깥 세상은 그녀에게 너무 멀리 있었다. 그날 밤 활동보조인만 옆에 있었다면 그녀는 오늘도 웃고 있을 것이다.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집행률 38%에 불과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는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정부가 활동지원급여를 제공하는 것이다. 활동지원급여를 제공받은 장애인은 자립생활센터라는 중개기관을 통해 활동보조인을 둘 수 있다. 즉,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하지만 김주영씨처럼 하루 24시간 활동보조가 필요한 최중증장애인에게도 활동보조서비스는 한 달 최대 180시간(하루 평균 6시간)밖에 제공하지 않는다. 그것도 혼자 살 때에만 이 정도 시간을 제공하지 가족과 함께 살면 아무리 장애가 중해도 한 달 최대 100시간밖에 제공하지 않는다. 하루 평균 3∼5시간에 불과하다.  시내 외출 한 번 하기도 빠듯한 시간이다.

또한 서비스가 필요한 중증장애인은 35만 명이 넘지만 서비스 대상자는 1급 장애인 약 5만5천명 뿐이며 그나마도 3만7천여 명 만 이용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예산액 대비 집행률은 38%에 불과하다.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은 많고, 이용 시간이 부족하다 아우성인데 편성된 예산은 남아도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 이유는 '본인부담금' 때문이다.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아니라면 반드시 일정 금액을 부담해야 한다.

본인부담금은 2007년 제도 시행 당시에는 한 달에 4만 원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상한제한선이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10년도에 두 배로 늘린데 이어, 법이 제정된 2011년 이후에는 최고 15%까지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월평균 급여액 70만 원을 기준으로 할 경우 최고 10만 원 가량의 본인부담금이 발생하는 것이다.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워 활동보조서비스를 받는 1급 중증장애인이 매달 10만 원 가량의 돈을 내야 한다는 건 경제적으로 매우 버거운 일이다. 게다가 본인부담금은 소득과 장애 정도에 따라 차등적으로 적용되는데 중증 장애인 일수록 본인부담금을 많이 내도록 설계 되어 있다.

예컨대 전국가구 평균소득 50% 이하(207만 원 이하)의 경우 본인 부담금이 2만1천 원(42시간 기준)에서부터 5만1600원(103시간 기준)까지 차이가 있다. 언뜻 많은 시간 서비스를 이용하니 본인 부담금도 많이 내는 것이 당연하게 보인다.

하지만 서비스 이용 시간은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등급 판정'을 통해 결정된다. 활동지원서비스 '인정조사표'에 의한 방문조사에서 220점 이상을 받아야 겨우 대상자가 된다. 인정조사표는 국민연금공단이 주관하는 것으로 '혼자 밥은 먹을 수 있는가' 등의 내용이 담긴 설문조사다. 인정조사 점수에 따라 4등급으로 구분되며, 등급에 따라 활동보조 시간이 달라진다.

인정점수가 380점∼445점일 경우 1등급이라 103시간을 제공받는다. 인정점수가 220점∼259점이 나와 최저등급인 4등급을 받으면 42시간 밖에 제공받지 못한다. 쉽게 말하자면 최중증 장애인일수록 활동보조 시간을 더 많이 지원받고, 좀 덜한(?) 중증 장애인이면 시간을 적게 지원 받게 된다는 것이다. 장애 정도가 심할수록 서비스 제공 시간이 길어진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그게 따라 본인부담금도 많이 낼 수밖에 없다.

활동지원서비스 문제의 원인? 새누리당에 있다

문제는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점이다. 활동보조 서비스 대상은 만6세 이상 만65세 미만의 장애인복지법상 등록 1급 장애인이다. 오로지 중증의 '1급'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에서 또다시 인정조사표에 의해 등급을 구분한다. 그에 따라 서비스 제공 시간을 제한하고, 소득을 기준으로 본인부담금을 부과한다.

스웨덴은 자기관리원칙에 의하여 본인이 활동지원서비스의 필요성을 말하면 사회복지사가 그것이 타당한지 판단한다. 영국은 사회복지사 등의 전문가가 판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데 의사의 진단서는 참고 정보로 활용되는 정도에 불과하다. 캐나다는 본인이 활동지원서비스 신청서를 제출하면 동료판정위원회(장애인으로 구성)에서 심사하여 판정결과를 주정부에 보고하고 본인에게 통지한다.

한국과 가장 유사한 일본은 장애등급에 의한 서비스 제한이 없고, 장애 정도 구분이 판정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나 환경과 욕구를 감안하여 지방자치단체 심사위원회에서 서비스를 결정한다.

다른 나라는 시행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불가능하다고만 하는 걸까.

 2011년도 4인 가구 기준 기본급여 본인부담금 상한액은 91,200원이며, <국민연금법> 제51조제1항제1호에 따른 금액의 100분의 5에 해당하는 금액에 따라 매년 변동될 수 있음(매년 5월에 변동되나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2011년 기준표만 올라와 있어 본 표를 인용함).
ⓒ 박선민

문제의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새누리당이 있다.

<장애인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활동지원법)은 2010년 말 예산안 통과를 두고 여야가 대치하여 국회가 아수라장이 된 가운데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날치기로 통과시킨 법이다.

본회의에 직권 상정하여 통과되었으니 제정법임에도 공청회는커녕 소관 상임위에서 한 차례의 법안심사도 거치지 않았다. 이 법률의 직접 적용을 받는 장애인들의 의견 역시 전혀 수렴되지 않아 법 제정 후 장애계에서는 크게 반발했다. 오죽했으면 법 제정 직후 개정안이 다시 제출돼 '시행도 하기 전 개정'이 이루어졌을까.

한나라당의 날치기가 '사람 잘 살게 하자는 법'을 '사람 잡는 법'이 되게 했다. 만약 그때 한나라당이 날치기하지 않았다면, 상임위에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져 장애계의 의견이 수용되었더라면, 그래서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가 제공되고, 본인부담금에 대한 부담도 사라졌더라면, 그랬다면 김주영씨에게 닥친 불행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게 그렇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동료들과 메신저로 수다를 떨거나, 장애등급제 폐지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하라고 거리에서 서명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세상에 없는데 그녀가 보인다. 정말 두려운 것은 앞으로도 계속 24시간 활동보조서비스가 시행되지 않고 여전히 본인부담금의 장벽이 높다면 제2, 제3의 김주영은 계속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에도 집에 홀로 있던 30세 근육장애 남성이 인공호흡기가 빠져 목숨을 잃었다. 24시간 호흡기를 착용하고 있어야 하는 그는 활동보조인이 퇴근하고 가족이 집에 오는 사이에 목숨을 잃었다.

다음은 누구 차례일까. 사회적 타살, 이제 제발 좀 그만 보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박원석 의원실 보좌관입니다.



태그:#활동보조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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