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보나 황홀경이니 누구나 사진 작가가 됩니다. 가을은 우리에게 색으로 말합니다. 명징한 햇살과 물드는 나뭇잎이 조화돼 감탄사를 연발케 하니까요.
시월 스무여드레, 깊어가는 가을날에 카메라를 멨습니다. 우선 제 일터로 갔습니다. 제 일터는 대전 외곽 '오량산'에 위치한 친환경 고등학교로 사계 경관이 수려합니다.
특히 가을이면 교정 은행나무가 노오랗게 물들어 장관을 연출하는데요. 오후에 잠시 머무는 동안 가을 분위기 물씬 풍기는 장면을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화단의 향나무랑 단풍나무가 조경 기술자의 전정가위에 꼼짝 못하고 새 단장을 하는 중입니다. 교정 조경수들은 해마다 반복되는 통과의례에 잘 적응하는 듯합니다.
늘 푸른 소나무 저 편으로 노란 은행잎이 화려합니다. 며칠 후에 은행잎은 인연의 끈을 놓고 '자유낙하'하겠지만 솔잎은 그 모습 그대로 겨울을 견디겠지요.
나뭇가지와 잎사귀를 이은 수많은 인연의 끈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치열하게 한몸을 이루던 잎사귀가 나뭇가지로부터 사뿐히 떨어져 나가 나뭇가지에 작은 생채기를 남기고 겨울을 나게 할 것입니다.
오후 햇살이 은행잎에 찰지게 달라붙어 분주합니다. 햇살이 숨가쁘게 고루고루 잎새의 물기를 마르게 합니다. 그래야 나뭇가지로부터 쉽게 떨어질 수 있을 테니까요.
잔디 운동장 한 쪽에선 세 명씩 짝 지어 축구를 합니다. 이 정도 풍광에 운동이라면 그대로 삶의 에너지가 되겠지요.
초등학생 다섯 명이 운동을 마치고 돌아갑니다. 진입로에 깔린 은행잎을 발로 차기도 하며 해맑게 웃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일요일이지만 나홀로 자습을 마친 학생이 노오란 은행잎 길을 따라 하교합니다. 저 학생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요? 오롯하게 이루기를 바라봅니다.
엄마와 아들이 은행잎을 줍고 있습니다. 저 고사리 손에 쥔 은행잎이 순수의 상징으로 보여 더 귀엽게 느껴집니다. 이 가을에 엄마의 여유는 유년기 아이에게 사랑의 가치를 전하는 데 손색없어 보입니다.
해질 무렵 빛이 줄어듭니다. 음식 배달 오토바이 한 대가 누군가의 배를 채우기 위해 오르내립니다. 교정 진입로에 늘어선 은행잎이 배달 청년 힘내라고 박수를 쳐주네요.
일찌감치 잎새를 떨군 은행나무 우듬지에 직박구리 한 쌍이 앉아 숨고르기를 합니다. 개점휴업 상태인 까치집 주변에서 한 마리 직박구리가 몸단장을 합니다. 직박구리가 살기엔 너무나 큰집입니다.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면서 가로등에 불이 들어옵니다. 은행잎 색깔이 불길처럼 타오르는 듯 변신을 합니다. 사진은 빛의 예술이라고 하는 이유를 아주 조금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