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 굽은 천문동 가는 길, 99구비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 굽은 천문동 가는 길, 99구비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중국 장가계, 7년여 만에 다시 찾아간 장가계 주변 역시 많이 변해있었습니다. 기암을 이루고 있는 산천, 배경처럼 드리운 자욱한 안개는 그대로였지만, 관광지 입구에 늘어선 상가들의 상황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7년여 전 그곳은 길옆 양쪽으로 맨땅에 좌판을 펼치고 있는 난전이었지만, 다시 찾아간 관광지 입구는 깔끔하게 정리된 상가로 가득합니다. 땅바닥에 주섬주섬 진을 치고 있던 모습에서 느껴지던 정겨움은 사라지고 진열장에서 풍기는 상술만이 서툰 한국말로 다가왔습니다.

12명 가족이 함께 떠난 4박 5일 여행

비록 한 지붕 아래서 자란 형제이고 조카이지만, 가정을 이뤄 각자 뿔뿔이 흩어져 살다 보니 12명이 한꺼번에 움직여야 하는 단체여행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일행 12명 중 10명이 할아버지나 할머니입니다. 환갑을 지낸 누나와 매형들도 있고, 조카 부부도 함께하고 있지만, 어찌 되었건 필자가 나이가 제일 어린 막내입니다.

다시 보고 싶었던 자욱한 안개 속 기암 산세도 보았습니다.
 다시 보고 싶었던 자욱한 안개 속 기암 산세도 보았습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산 꼭대기에 있는 호수 보봉호
 산 꼭대기에 있는 호수 보봉호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말로는 금방이라도 떠날 수 있는 것처럼 쉬웠지만, 공동 경비를 마련하고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맞추는 데는 얼마간의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10월 6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북경을 둘러보고 장가계로 갔습니다. 이미 다녀온 곳이지만 절경을 이루고 있는 산세가 다시 보고 싶고, 어떻게 변해있을까 궁금해 다시 그곳으로 가자고 정했습니다.

산 정상에 있는 호수에서 배를 탈 수 있는 보봉호에서 배도 타고, 동굴 안에서 배를 탈 수 있는 황룡동굴도 들렀습니다. 한국인이 투자해 새로 개발했다는 대협곡에서 미끄럼도 탔습니다. 모노레일을 타고 펼쳐진 기암산세를 구경하는 십리화랑도 돌고, 비가 오는 날이면 자욱한 안개로 하늘과 땅이 구분되지 않는 천자산 길도 비옷을 입고 걸었습니다.

장가계는 관광지 입구만 변해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7년 전에 방문했을 때는 멀찍이서만 바라봐야 했던 천문산, 뻥 뚫린 동굴사이로 비행기가 통과했다는 전설같은 실화를 안고 있는 천문동에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가 있었습니다.

해발 1518미터인 천문산은 장가계 시내에서 출발하는 세계최장의 케이블카, 단편의 길이가 7.45Km나 되는 케이블카를 30여분 쯤 타면 정상에 도착할 수가 있었습니다. 케이불카에서 내려 조금 걸으면 귀곡잔도(鬼谷棧道)로 들어섭니다. 귀곡잔도로 이어지는 입구는 온통이 주렁주렁 매달린 빨간색 리본입니다.

귀곡잔도로 들어가는 입구는 온통 빨간색 리본입니다
 귀곡잔도로 들어가는 입구는 온통 빨간색 리본입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오금이 저릴 만큼 아찔하게 낭떠러지 위에 설치된 잔도
 오금이 저릴 만큼 아찔하게 낭떠러지 위에 설치된 잔도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고백하는 마음이 적혀있고,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곡한 소원이 적힌 리본들이 잔도로 가는 길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잔도(棧道)는 말 그대로 '다니기 힘든 험한 벼랑 같은 곳에 선반을 매듯이 하여 만든 길'입니다. 귀곡잔도는 해발 1400미터의 높이에 가슴이 섬뜩할 정도로 까마득한 수 백미터의 낭떠러지 벼랑 위에 선반처럼 설치된 인공통로입니다.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을 비켜 잠시 바깥쪽으로 걸으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초점을 어디에 맞춰야 할 지를 모르는 마음에 다리가 후둘 거립니다. 끊이지 않는 인파에 잔도가 무너지거나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는 날이면 죽은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주검조차 산산이 부서지며 흩어질 거라는 방정맞은 생각이 번뜩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찔한 공포감과 후덜덜거리는 발걸음이 사람을 묘하게 흥분시킵니다. 하지만 장난을 칠 객기까지는 생기지 않았습니다. 1600미터쯤 길이의 귀곡잔도를 지나니 해발 1516m에 위치한 천문산사(天門山寺)입니다. 천문산사는 중국 호남성 서부 불교의 성지로 당나라 때 창건되었다 소실되었던 것을 청나라 때 건축 구조로 1999년도에 재건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해발 1516미터에 자리하고 있는 천문산사
 해발 1516미터에 자리하고 있는 천문산사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그동안 다녀온 무수한 절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은 지리산 반야봉 아래, 해발 1500미터에 자리하고 묘향암이었습니다. 천문산사는 묘향암보다 16미터나 높게 자리하고 있으니 지금껏 다녀온 절 중에서 가장 높은 절에 대한 기록이 바뀌는 순간입니다.

이리 높고도 험한 곳, 자동차는 물론 어떤 건축 장비도 접근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되는 이런 곳에 어찌 이리도 크고 웅장하게 산사를 지을 수 있었을까 궁금할 뿐입니다. 우산크기만 한 향이 꾸역꾸역 연기를 내며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제한된 시간이라서 그런지  걸음은 재지고 경내를 둘러보는 마음은 바빠집니다. 전각마다 갈 시간이 없으니 할 수 없습니다. 대웅전에 들려 제불을 에두르는 삼배로 참배를 대신합니다. 

천문산사를 둘러보고 천문산 케이블카 정류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곤돌라를 이용합니다. 무한궤도를 그리며 허공에 매달린 109개의 곤돌라 중 앞에 와서 멈추는 곤돌라에 앉으면 비탈질 산능선을 발아래로 하며 끄덕거리며 올라간 곤돌라가 케이블카 정류장에 도착합니다.

멀리 바늘귀처럼 보이는 천문동으로 비행기가 통과했다고 합니다.
 멀리 바늘귀처럼 보이는 천문동으로 비행기가 통과했다고 합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곡예단 비행기가 통과했다는 천문동
 곡예단 비행기가 통과했다는 천문동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정류장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케이블카, 8명씩 탈 수 있는 케이블카를 타고 얼마쯤 내려가면 케이블카가 주춤거리며 멈추는 중간 정류장입니다. 이제 중간 정류장에서 내려 소형버스를 탑니다. 엔진소리조차 힘겹게 헉헉 거리는 소형버스가 아흔아홉 구비를 돌며 올라가면 천문동 광장입니다. 

아흔아홉 구비 돌고 999 계단 걸어서 올라가는 천문동

아흔아홉 구비는 몸부림을 치듯이 굽고, 회오리바람이 불듯이 휘돌며 난 아찔한 낭떠러지 길입니다. 잔도가 수 백길 낭떠러지라서 아찔하더니, 천문동으로 오르는 버스 길 역시 수백 길 낭떠러지를 휘돌고 있어서 아찔합니다.  

100미터쯤을 전력 질주하고 나서 토해내는 숨소리처럼 거칠게 엔진소리를 토해내던 버스가 천문동광장에 도착합니다. 멀찍이서 봤을 때는 바늘귀처럼 작게만 보였던 천문동이 저만치 위에 뻥 뚫린 허공으로 존재합니다.

수십 길 낭떠러지 위로 난 99구비 천문동 가는 길
 수십 길 낭떠러지 위로 난 99구비 천문동 가는 길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이제 999개의 계단만 걸어 오르면 천문동입니다. 그러고 보니 109개의 곤돌라에 99구비, 999개의 계단입니다. 중국인들에게 9라는 숫자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모양입니다. 

현지가이드(임호, 28살, 조선족)에게 중국인들에게 9의 의미를 물으니 9는 중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숫자로 양(陽)의 가장 큰 숫자이기도 하지만, 9는 황제를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천문동으로 오르는 계단이 999개인 이유를 물으니 하나를 더하면 천(天)으로 오르는 숫자가 되기 때문에 일부러 999계단으로 맞춘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999 계단쯤 단숨에 뛰어오를 수 있을 것 같아 뜀박질로 시작해보지만 반쯤을 오르고부터는 걸었습니다. 차오르는 숨도 숨이지만 허벅지 근육이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이 아파져 옵니다.

멀찍이서 봤을 때는 바늘귀처럼 작게만 보였던 천문동이 높이가 131미터, 너비가 57미터, 깊이가 60미터에 이른다고 하니 의외로 컸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산중 터널을 세계 곡예 비행사 대회 때 경비행기로 천문동을 통과하였다고 하니 비행술이 놀랍고 담력이 경이로울 뿐입니다.     

999 계단을 올라가니 하늘로 들어가는 문, 천문동입니다. 천에서 모자라는 하나의 계단을 대신해 펄쩍 뛰어보지만, 발끝으로 느껴지는 천은 뛰어오른 만큼에서 확보된 허공일 뿐입니다. 새신을 싸 가지고 와서 신고 펄쩍 뛰었으면 천문(天門)으로 들어설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기는 순간입니다.

천문동에서 내려다보는 천문산하는 천문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땀을 흘리고, 무릎을 짚으며 올라온 사람들마다 천문동 정상에 마련된 조형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어떤 염원을 담은 채 주렁주렁 매달린 자물통, 어떤 마음과 소원을 담은 빨간색 헝겊 조각들이 또 하나의 볼거리입니다. 999라는 숫자를 맞추느라 그랬는지 천문동으로 오르는 계단의 높이는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계단은 높고 어떤 계단은 야트막하니 올라갈 때보나 내려오는 길이 더 조심스럽고 위험합니다. 

헛발이라도 디디면 곤두박질을 치거나 내동댕이쳐지듯 나뒹굴 것만 같아서 손잡이를 잡고 조심스레 내려옵니다. 등골을 타고 흐르던 땀이 식을 때쯤 케이블카 중간 정류장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하산합니다. 올라갈 때 바라보던 구비도 그랬지만, 내려가는 차창 밖으로 비추는 구비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움찔거리게 합니다.

천문동에 오른 대개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필자도 사진 한 방 찍었습니다
 천문동에 오른 대개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필자도 사진 한 방 찍었습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99구비를 돌아내려 온 버스가 케이블카 중간역에서 멈추어 섭니다. 버스에서 내려 케이블카로 옮겨 타고 얼마간을 내려오니 어느새 천문산을 향해 출발하던 장가계 시내입니다.

가방도 꾸리고 마음도 꾸려서 비행기에 오르는 것으로 여행의 일단을 정리합니다. 12명이 함께 한 시간은 비록 4박 5일에 불과하지만, 우리 가족이 함께한 4박 5일은 12명의 여생에 있어 다시 들춰 보고 싶은 앨범, 다시 듣고 싶어지는 소리, 다시 함께 하고픈 행복한 시간으로 오랫동안 가슴 머금고 머리에 맴돌 추억이 되었으리라 확신합니다. 


태그:#장가계, #천문동, #귀곡잔도, #십리화랑, #보봉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