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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에서는 팔열팔한 지옥, 여덟 개의 불지옥과 여덟 개의 얼음 지옥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불가에서는 팔열팔한 지옥, 여덟 개의 불지옥과 여덟 개의 얼음 지옥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임윤수

지옥과 극락이 반드시 죽어서 가는, 사후세계에만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진수성찬을 먹고 고대광실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꼭 행복할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초가삼간이라고 해서 반드시 불행할 거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습니다.

초가삼간에서 거친 음식을 먹으며 살아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으면 그곳이 극락이고, 고대광실에서 떵떵거리며 살아도 마음이 괴로우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서규 지음, 다차원북스 출판의 <스님, 지옥에 가다>는 지옥의 실체, 살아있지만 지옥살이를 하는 삶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입니다.

주인공인 휘문 스님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해 부산 범어사에서 혜장 스님을 만나 출가하며 휘문이란 법명을 받습니다. 혜장 스님은 은사스님인 황태사 주지 홍안 스님의 연락을 받고 황태사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서고, 휘문 스님이 동행을 합니다.

 <스님, 지옥에 가다> 표지
<스님, 지옥에 가다> 표지 ⓒ 다차원북스
두 스님, 혜장 스님과 휘문 스님이 황태사에 도착을 하니 홍안 스님은 절에서 기르는 벌집 근처에서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생불로 소문이 난 홍안스님의 다비에서 사리가 나오지 않음으로 벌어지는 소란 속에 연이은 죽음이 이어집니다.

보성 스님은 황태사에서 외양간 일을 돌보고 있으며 여느 스님들과는 달리 절 바깥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운 스님으로 휘문 스님과는 포로수용소에서 함께 생활한 악연이 있는 스님입니다. 그런 보성 스님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음의 그림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황태사에서 장독대를 관리하는 소임을 맞고 있는 은겸 스님까지 주검으로 발견되는 연속 살인으로 이어집니다.

빨치산, 폐결핵, 이, DDT, 삐라, 대처승, 경무대, 미군, 지뢰 등 전쟁 직후의 사회적 분위기와 대처승과 비구승 간에 벌어지는 산사의 세력다툼, 스님들의 세계가 밑그림처럼 그려집니다.

수사 극 같고 추리소설 같은 <스님, 지옥에 가다>

결국 혜장스님은 그런 풍경과 분위기 속에서 이어지는 살인, 연속살인을 벌이고 있는 주범의 실체를 추적하며 찾아냅니다. 휘문 스님은 혜장 스님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지만 혜장 스님의 속마음까지는 읽지 못합니다. 혜장 스님이 살인범을 추적해 가는 과정은 한편의 수사 극이며 심리전으로 펼치는 추리소설입니다.

결국 혜장스님이 찾아낸 살인범은 황태사 주지였던 홍안 스님을 가장 가까이서 모셨던 도문 스님 이었습니다. 연속 살인의 범인으로 그 실체가 드러나 여러 스님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첫 살인의 목격자인 일두 스님, 치매를 앓고 있는 노승이 등장합니다. 바람처럼 나타난 일두 스님이 도문 스님에게 달려들며 끌어안는 바람에 두 사람, 일두 스님과 도문 스님은 불길에 휩싸이며 죽어갑니다.

도문 스님이 살인을 벌이게 된 것은 출가 수행자로서는 품어서는 안 될 연정 때문이었습니다. 황태사 말사에 머물고 있던 비구니 문혜 스님에 대한 만(慢)이며 집착 때문이었습니다.

여덟 개의 불지옥과 여덟 개의 얼음 지옥의 실체

혜장 스님과 휘문 스님은 지뢰 폭발과 함께 참혹하게 죽어간 보성 스님, 똥독 항아리에 거꾸로 처박힌 채 불꽃에 그슬려 죽은 은겸 스님의 주검을 보며 팔열팔한 지옥, 여덟 개의 불지옥과 여덟 개의 얼음 지옥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유지족, 만족할 줄만 알면 지옥은 면하게 될 것입니다.
오유지족, 만족할 줄만 알면 지옥은 면하게 될 것입니다. ⓒ 임윤수

하지만 저자가 <스님, 지옥에 가다>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지옥은 따로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연속 살인과정에서 겪었던 보문 스님의 마음이 바로 팔열팔한 지옥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저지른 살인을 감추기 위해 거짓행동을 하고, 또 다른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순간순간의 마음이야 말로 불보다도 뜨겁고 얼음보다도 차가운 지옥 같은 마음 이었을 겁니다.

저자가 <스님, 지옥에 가다>를 통해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의 골자는 사랑, 부, 명예, 권력 그 어느 것에라도 걸림 없이 사는 삶이라면 삶 자체가 극락이고 집착하고 옥매여서 사는 삶이라면 삶 자체가 지옥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됩니다. 

덧붙이는 글 | <스님, 지옥에 가다>┃지은이 이서규┃ 펴낸곳 다차원북스┃2012.09.10┃값 12,000원



스님, 지옥에 가다

이서규 지음, 다차원북스(2012)


#스님, 지옥에 가다#이서규#다차원북스#비구#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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