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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열린책들)는 폴 오스터의 젊은 날의 글쓰기 분투기이다. 열 예닐곱 살에 이미 오직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가 작가로 살아가기 위해 젊은 날 고군분투했던 경험들이 녹아 있다.

의사나 경찰관이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결정이지만, 작가가 된다는 것은 다른 것이라 그는 말한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 보다 선택되는 것'이고 글 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험한 길을 걸어 갈 각오를 해야' 하는 것임을 그는 일치감치 알았다. 그는 또 작가가 된다는 것이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신들의 호의'를 받지 못하면 비바람을 막아 줄 방 한 칸 없이 떠돌 수도 있고 입에 풀칠하지도 못할 것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도 이해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작가가 되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 재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 그것뿐이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직장과 글쓰기로 이중생활을 한다. 돈 버는 것을 본업삼고 글쓰기는 남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지만 그는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직장에 묶여 있는 생활은 생각만 해도 그를 얼어붙게 했다. 원치 않는 일로 돈을 벌고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을 1년 다니다가 그만두었고 부모의 이혼과 재혼의 아픔을 겪었고 젊은 시절 그는 프랑스와 런던 뉴욕 등 많이 떠돌았고 밑바닥 일을 하면서 글을 썼다. 그의 모든 일들 틈엔 글쓰기가 있었다. 한 예를 들면 파리에 있었던 2년 동안 그가 얼마나 책 속에 파묻혀 지냈는지 알 수 있다.

책 속에 파묻혀 지낸 2년 동안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인생을 바꾸어 놓는 새로운 피가 수혈되어 혈액의 성분까지 달라졌다. 문학과 철학에서 나에게 아직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거의 다 그 2년 사이에 나와 첫 대면을 했다. 이제 와서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 많은 책을 어떻게 다 읽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벌컥벌컥 술잔을 비우듯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어냈고 책의 나라와 대륙을 모조리 섭렵했으며 아무리 읽어도 늘 책에 허기져 있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극작가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 러시아 소설가들, 초현실주의 시인들, 나는 두뇌에 불이라도 붙은 듯, 책을 읽지 않으면 목숨이 꺼지기라도 할 듯, 필사적으로 책을 읽었다. 한 작품은 다음 작품으로 이어졌고, 하나의 사상은 다른 사상으로 이어졌고, 세상사에 대한 생각은 다달이 바뀌었다.(p40)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란 무엇인가, 글을 쓰면서 살기로 작정하고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그가 젊은 날 얼마나 닥치는 대로, 치열하게, 종횡무진, 오직 글쓰기를 위해, 작가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는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 작가가 되기 위해 그것과 관련된 일들을 찾고 치열하게 쓰고 쓰면서 밤낮 책상 앞에 몇 년 간 붙어 앉아 있었는지, 얼마나 많이 썼는지, 거의 온종일 낱말을 적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는지...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막노동, 유조선 배타기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고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고 또한 돈이 되는 글쓰기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는지를.

오직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그것이 다른 일들처럼 진로결정이 아니라 선택되는 것이란 것을 알았다. 또한 글 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신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다른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도 있었지만 보수를 떠나 쓰는 일과 관련한 일을 했다. 더 열심히, 더 많이.

해결책은 번역을 최대한 빨리, 그리고 숨 쉴 겨를도 없이 계속 해대는 것뿐이었다. 그보다 훨씬 여유 있는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도 있지만 리디아와 나는 체계적으로 일에 착수했다. 출판사에서 책을 건네받으면 우리는 일감을 둘로 쪼갰다. 그리고 하루 작업량을 정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작업량을 채워야 했다. 날마다 너무 많은 양을 번역해야 했고, 일할 마음이 내키든 말든 날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정해진 작업량을 처리했다. 차라리 프라이팬에서 햄버거를 뒤집는 편이 더 수지맞는 일이었을지 모르나, 적어도 우리는 자유로웠다. 아니 적어도 우리는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나는 직장을 때려치운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거의 온종일 종이에 낱말을 적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p134)

시, 희곡 등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마주기 위해 숨 돌릴 틈도 없이 일했지만 늘 지지부진했고 그는 덫에 걸린 짐승처럼 빠져 나갈 구멍을 찾기에 바빴다. 대개의 작가나 작가지망생들의 고민이 그러하듯 그 역시 영혼의 요구(시간)와 돈의 요구 사이에서 갈등했다. 하지만 그의 결혼과 이혼. 그 4년 동안 폴 오스터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소설이 성공궤도에 올랐고 사랑에 빠졌고 재혼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 큰 힘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글을 쓰느라 몇 년 동안 책상 앞을 떠난 순간이 거의 없었던 폴 오스터에게서 글쓰기의 치열성이 느껴진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일에 몸을 빼앗기면 머리꼭지부터 발끝까지 잔뜩 긴장하여 돌이 되고 서간이 되고 산투르가 되어 버릴 정도로 일에 몰입하고 집중하였듯이 그가 '대지와 곡괭이와 갈탄에 호흡을 일치시키고 그의 망치와 못은 나무와의 싸움에 단합했듯이'. '돋보기로 태양광선을 한 곳에다 집중시키면 거기에 불이 붙듯이 태양열이 분산되지 않고 바로 그 지점에만 모이듯이' 폴 오스터의 글쓰기 역시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올인 했음을 느낄 수 있다. 무슨 일이든지 자신이 하는 일에 탄광의 갱도에서 나의 금광을 캘 대로 다 캐고 캘 때까지 뚫릴 때까지 불이 붙을 때까지 그렇게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급증 내지 말고 꾸준히 성장해 가기! 그것 또한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했던 말처럼,

예술가는 나무처럼 성장해가는 존재입니다. 수액을 재촉하지도 않고 봄 폭풍의 한 가운데에 의연하게 서서 혹시 여름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는 일도 없는 나무처럼 말입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여름은 오니까요. 그러나 여름은 마치 자신들 앞에 영원의 시간에 놓여 있는 듯 아무 걱정도 없이 조용히 그리고 여유 있게 기다리는 참을성 있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날마다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오히려 내게 고맙기만 한 고통 속에서 그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인내가 모든 것이라고.('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p31~32)

폴 오스터의 <빵 굽는 타자기>를 읽으면서 나는 작가란 과연 무엇인지, 글 밥을 먹고 살기 위해 인사이드가 주류인 삶의 길에서 이탈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감내해야하는지, 작가로 산다는 것이 무얼 말하는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글쓰기란 뚫릴 때까지, 탄광의 갱도에서 나의 금광을 캘 대로 캐낼 때까지, 불이 붙을 때까지...꾸준히 나아가는 것이다. 꾸준히 성장해 가자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했던 말처럼 그렇게...나무처럼 성장해가면 되리라.

폴 오스터가 작가의 궤도에 올라서기까지 글 밥을 먹고 살기 위해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작가의 궤도에 올라서기까지, 글 밥을 먹고 살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 했는지 더듬어 보며 마음의 옷깃을 여미는 시간이었다. 한 작가의 치열한 글쓰기의 역사 그 리얼한 분투기, 일독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 <빵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 씀, 열린책들 펴냄, 2008년, 8800원



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열린책들(2000)


태그:#폴 오스터, #빵굽는 타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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