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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마루에 주민과 관광객이 섞여 같이 쉬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정자 마루에 주민과 관광객이 섞여 같이 쉬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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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여행에서 한옥마을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여행지이다. 한옥을 개조해 만든 세련된 카페, 맛집들과 게스트하우스, 한옥스파가 있는가 하면, 영화 배경으로 나왔던 고풍스러운 고딕식 건물인 '전동성당',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도 한옥마을과 함께 있어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나이든 사람들에겐 한옥마을이 보여주는 다채로운 풍경이 새삼스러워서 관광을 오고, 젊은 사람들은 그런 풍경이 새로워서 찾아오는 것 같다. 

전주 한옥마을의 역사는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전주의 상권을 장악하던 시절,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이곳에 한옥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가 1930년대라고 하니 전주한옥마을은 역사가 80년이 된 한옥마을인 셈이다.

하지만 유명한 관광지는 잘 가지 않게 되는 내 취향탓인지, 한옥마을은 서울이나 전주나 그리 당기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왕 가본다면 관광지로서의 한옥마을보다는 주민들이 사는 동네의 속살을 찾아 골목골목을 여행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여행의 동반자는 역시 자전거가 제일이다.

한옥마을에 생기를 불어주는 풍경들 




자전거탄 주민들 덕분에 한옥마을이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자전거탄 주민들 덕분에 한옥마을이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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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보고 싶게 하는 한옥의 정취를 살린 카페, 식당들이 많다.
 들어가보고 싶게 하는 한옥의 정취를 살린 카페, 식당들이 많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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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맑고 풋풋한 전주천 산책로를 지나가다보면 '전주향교' 이정표와 함께 한옥마을로 들어가는 들머리가 보인다. 한옥마을에 오가는 관광객들이 많다 보니 따로 길을 헤멜 필요도 없겠다. 때마침 자전거를 타고 한옥마을로 들어가는 주민 아저씨의 뒤를 따라 갔다. 유명한 관광지가 된 명소엔 동네 주민들을 보기가 힘든데 초장부터 운이 좋다.

'전주향교' 방향 한옥 마을 골목길로 나를 이끈 아저씨의 소박한 '생활 자전거'가 주변 한옥건물, 담장과 잘 어울린다. 주민 아저씨 덕분에 한옥마을 풍경이 담긴 엽서와 카드를 사서 지인에게 보낼 수 있는 아주 작은 우체국에 들어가 낭만적인 기분에 휩싸여 예쁜 엽서를 고르고, 닭들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나는 어느 한옥집 마당 안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청수이용원에 들어가 동네 토박이 이발사 아저씨께 한옥마을 이야기도 잘 들었다.

골목마다 자리하고 있는 한옥마을에 찾아온 관광객들을 위한 카페나, 식당들도 한옥의 옛스러움과 멋스러움을 살려 눈길이 가고 들어가보고 싶게 한다. 어느 사진관은 그 존재 자체도 특별하지만 사진관 간판에 '흑백사진 연구소'라 써있다. 흑백사진과 한옥마을, 너~무 어울리지 않은가.  

주민들의 삶이 자연스레 공존하는 동네 

관광객 가득한 한옥마을의 사거리 중심에서 떡하니 장기를 두고 있는 동네 아저씨들.
 관광객 가득한 한옥마을의 사거리 중심에서 떡하니 장기를 두고 있는 동네 아저씨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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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이 다른 관광지와 다르게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동네 주민들의 자연스러운 '출현'이다. 보통 유명한 관광지에 가면 관광객들만 바글거릴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가게나 식당에 가야 잠시 마주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전주 한옥마을에선 자전거 탄 아저씨, 아주머니가 논일 하러 가는 농부처럼 부지런히 지나가고, 곳곳의 정자 마루에는 편안한 자세로 눕거나 기댄 주민들이 관광객들과 뒤섞여 묘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어찌보면 동네 주민들이 멀리서 찾아온 관광객들을 '관광'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런 기분이 확신으로 든 건 경기전 옆 한옥마을 사거리 중앙의 등나무 밑에 모여 앉은 동네 아저씨들 때문이다. 각자 편안한 차림새로 앉은 아저씨들의 소일거리는 장기를 두거나옆에서 훈수를 두는 것과 사방으로 지나쳐 가는 다양한 관광객들을 구경하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온 외지인 필자를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쳐다보거나 말을 거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 전주 한옥마을에서 다른 관광명소와는 다른 특별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옛 소설속에 나옴직한 칼갈이 할아버지를 마주치다니, 무척 놀라고 반가웠다.
 옛 소설속에 나옴직한 칼갈이 할아버지를 마주치다니, 무척 놀라고 반가웠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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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옥 체험관 뒷마당에서 'TV 문학관'에서나 나옴직한 칼갈이 할아버지를 마주쳤을 땐 눈앞의 장면이 잘 믿어지지가 않았다. 터져 나오는 놀라움과 반가움을 꾹 삼키며 할아버지 옆에 앉아 칼 이외에도 가위 등을 숫돌에 가는 장면을 구경했다. 칼날의 느낌을 손끝으로 만지며 작업을 하시는데 가위는 물론 칼마다 그 날의 느낌이 다 다르고 제품과 용도에 맞게 칼을 갈고 날을 세운다고 하신다.

수십 년 경력의 달인답게 무디었던 칼이 몇 분 후 은빛으로 반짝이는 날선 칼로 다시 태어난다. 위 사진속의 나무통을 가방처럼 한쪽 어깨에 메고 한옥마을과 그 주변 동네를 다니신단다. 관심을 보이고 이것 저것 묻는 내가 기특했는지 할아버지는 전주 시외버스터미널 옆에 가면 오래된 대장간이 있다는 귀한 정보까지 알려 주셨다. 사람마다 감흥이 다르겠지만 내겐 한옥마을에서 문화재급 보석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준 전주 한옥마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준 전주 한옥마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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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 담장을 따란 난 나무와 벤치, 여행자에겐 참 좋은 쉼터다.
 '경기전' 담장을 따란 난 나무와 벤치, 여행자에겐 참 좋은 쉼터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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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있는 쉼과 여유의 공간들

전주 한옥마을이 더욱 마음에 들었던 건 마을 곳곳에 있는 정자 마루와 나무 벤치, 한옥의 작은 툇마루 등이었다. 주민이나 관광객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휴식 공간이다. 그러다보니주민들과 여행자들이 함께 뒤섞여 정자 마루에서 쉬는 풍경은 다른 유명 관광지에선 보기드문 장면이다. 서울만 해도 한옥마을을 관광하다가 좀 쉬어가려면 주변의 고급스러워보이는 카페나 가야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걸 떠올려보면 작은 공간들이지만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진다.

전주 한옥마을 곳곳에 둘러보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 가득하지만, 700여 채의 한옥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최고의 명당을 놓치면 섭섭하겠다. 그곳은 바로 오목대. 이성계가 왜구를 토벌하고 연회를 베풀었다는 곳이다. 이곳은 오래 전부터 전주 시민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는데 올라보니 왜 그런지 알 것 같다.

전주 한옥마을 최고의 쉼터중 하나는 책방들이다.
 전주 한옥마을 최고의 쉼터중 하나는 책방들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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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가장 좋았던 쉼터는 한옥마을 동문길가에 있는 서점들과 헌책방. 터줏대감격인 홍지서림은 내년이면 50주년이 된다는 서점으로 흔한 홈페이지도 없이 전주 시민들의 사랑을 오래도록 받는 곳이다. 서점 안의 풍경은 어디나 비슷하지만 이곳에서는 전주 사람들의 애향심과 자부심이 추가로 풍겨온다. 홍지서림 바로 옆에는 헌책방 한가서림이 이웃하고 있다. 그 모습이 왠지 공존의 현장을 보고 있는 듯해 흐뭇하다.  

전주 한옥마을은 걷거나 혹은 자전거를 타고 구석구석 다니다 보면 어느새 하루 해가 넘어갈 정도로 골목과 거리가 다양하고 너른 동네다. 그래서인지 한옥마을 안에 민박집, 게스트하우스, 찜질방 등이 있다. 전동성당의 고풍스러운 야경을 감상하며 여유로이 하루를 묵어보면 한옥마을의 저녁 풍경이 낮과는 또다른 모습으로 넉넉하게 다가올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옥마을 관광안내소에서 '뚜벅이 지도'를 배포하니 이용하면 좋겠다.



태그:#전주한옥마을, #자전거여행 , #홍지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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