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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뿔싸! 사기다!

며칠 전, 아내가 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여보, 큰일 났어."
"응? 왜? 무슨 일이야?"

"엊그제 n포탈 카페 중고ㅇㅇ에서 H원액기 산다고 내가 부탁해서 당신이 입금했던 거 있잖아, 그거 아무래도 사기 같아. 돈 보냈다고 문자 보냈는데 택배 송장번호도 안 찍어주고, 전화도 계속 안 받고 문자도 씹어. 그러더니 몇 시간 전에 까페 게시판에 내가 봤던 거 하고 똑같은 글을 올렸어. 우리가 분명 사겠다고 돈을 보냈는데."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었어? 제품이 여러 개 있었던 거 아냐?"

"아니, 그래서 당장 밑에 답글을 달았지. 돈 보냈는데 이 글은 뭐냐고. 그랬더니 그 글을 곧바로 삭제하더라고. 그 뒤 통화가 되었는데 휴대폰을 잃어버렸으니 다른 번화로 전화하래. 또 택배가 많이 밀렸으니 돈은 그냥 오늘까지 돌려준다고 하고. 이상하지?"

"수상한데. 이거 사기 아냐? 그렇다면 카페에다가 같은 제품을 올린 건 뭐라는데?"
"그건 자기가 올린 게 아니래. 자기도 자기 ID로 어떻게 그런 글이 올라온 건지 모르겠대. 어쩌면 좋지? 내가 좀 더 확인하고 돈을 보냈어야 했는데...어쩐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너무 싸다 싶었어. 지금까지는 계속 직구(직접 구매)를 해서 이런 사기를 당한 적이 없었는데."

아내의 말대로 뭔가 이상했다. 늦게라도 통화를 했다면 그냥 제품을 주면 되지 왜 돈을 돌려주겠다는 것이며, 자신의 ID로 올라온 글을 자신이 모른다는 것도 수상했다. 만약에 그게 사실이라면 펄쩍 뛰면서 자신의 ID를 도용한 사람을 찾아야 정상 아닌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선 인터넷을 뒤져 우리와 비슷한 사례를 찾았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비슷한 인터넷 사기를 당하고 있었는데, 난 그들이 가르쳐준대로 녀석의 전화가 대포폰인지부터 확인했고, 그나마 대포폰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했다. 아주 꾼은 아닌 듯. 그럼 계좌 주인 '장태ㅇ'는 본인 이름인가?

난 이후 친정에 가 있는 아내를 대신해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다. 퇴근하면서도 전화를 했고, 저녁을 먹으면서 전화를 했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전화를 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받지 않았다.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입금한 205,000원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녕 당한 것인가.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출근길에 전화를 걸었고,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전화를 걸었다. 다시 아내가 문자를 보내왔다. 녀석이 또 카페에 같은 글을 올렸다는 것이다. 직접 찾아보니 ID는 다르지만 전화번호가 같은 게, 분명 녀석이었다.

걸리는 순간, 사기다
▲ 녀석의 낚시질 걸리는 순간, 사기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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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자리 박대리 휴대폰으로 제품을 사겠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내 전화는 받지 않던 녀석이 대뜸 문자를 보내왔다. 자신이 대전에 있으니 직접구매가 아니면 돈부터 입금하라는 것이었다. 아뿔싸, 역시 사기였구나.

얼마나 전화했을까. 오전 10시쯤 녀석이 드디어 전화를 받았다. 어눌한 목소리에 세상 모든 게 귀찮다는 말투였다. 조금은 어린 듯한 목소리.

"저 정ㅇㅇ 남편되는 사람인데요. 돈을 어제까지 보내주신다고 하셨다면서요?"
"입금할게요. 어제는 은행보안카드를 안 가지고 와서 못 넣었어요."

"그러지 말고 우리 직접 만나죠? 퇴근하고 대전까지 제가 갈게요. 그냥 H원액기 주세요."
"아니예요. 그냥 돈 받으세요. 14시까지 넣어드릴게요."

"그렇다면 왜 카페 게시판에 계속 같은 글이 올라오는 거죠? 경찰한테 신고해서 IP주소 추적해도 되겠어요?"
"경찰한테 신고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 난 쓴 적 없으니까."

녀석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열이 났지만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렵게 연결된 전화. 가장 중요한 건 어쨌든 돈을 돌려받는 것. 따라서 녀석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결국 난 별 소득없이 전화를 끊었고 하릴없이 14시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래도 녀석이 혹시 돈을 부치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

이윽고 14시. 역시나 돈은 들어오지 않았고, 놈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만 문자는 주고받았는데 녀석은 막무가내로 시간만 끌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문자를 보낸걸까?
▲ 녀석과의 문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문자를 보낸걸까?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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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넣을꺼냐? 경찰에 신고한다. 전화 받아라.'
'왜 반말이세요. 좀 있다가 전화드린다니까.'

'내가 당신 말을 어찌 믿어. 아니면 당신 신분 확인할 수 있는 사람 전화 번호를 가르쳐 주던가.'
'010-6302-97XX'

'장난해요? 이 번호는 어제 휴대폰 잃어버려서 새로 개통한 뒤 우리 와이프랑 통화한 번호잖아요. 저도 어제 몇 번이고 전화한 번호입니다 대체 진실이 뭐죠?'
'오늘 내로 보내드릴테니 걱정말고 기다리세요'

'몇 시까지 입금하실꺼죠? 몇 시 까지라고 이야기 못하는 건 못 보낸다는 뜻이군요.'
'무슨 그런 식으로 해석되나요? 그럼 11시 59분까지 해드릴게요. 만족하시나요?'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모든 게 오해의 소치라면 죄송합니다. 다만 지금 상황은 제가 충분히 오해할만한 상황이므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쁘신 분은 아닌 거 같은데 조금이라도 믿어주시면 안 되는걸까요? 저도 정확히 언제 시간이 날지 모르니까 오늘 내로 드린다고 말씀드린건데. 만약에 제가 6시까지 드린다고 했는데 또 약속 못 지키면 기분 나쁘시잖아요. 그러니까 오늘은 이런 생각하지 마시고 내일 잔액 조회해 보시면 들어와 있을 겁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인터넷 사기 피해자들의 이야기인즉슨 마냥 기다리라는 것은 사기꾼들의 뻔한 수법일 뿐이었다. 계속해서 시간을 끌다가 피해자들이 지치기만을 기다리는 사기꾼들. 결국 난 퇴근 뒤 경찰서를 찾았다. 고소를 해서라도 녀석을 잡고 싶었다. 도대체 누구냐 넌.

"인터넷 사기의 90%는 n포탈 카페 중고oo"

경찰서에 도착해 민원실에서 조서를 작성했다. 조서를 쓰면서 담당 경찰에게 혹시 진짜 무슨 오해가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물었더니 그는 코웃음만 쳤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는 놈들은 백이면 백 사기꾼이니 미련 갖지 말라는 것이었다. 진짜 우리 사회 신용도가 이 정도란 말인가.

조서를 갖고 다시 사이버수사대를 찾아 진정서를 작성했다. 담당 수사관은 이런 사건이 워낙 많은지 나의 이야기가 익숙한 듯 보였고, 차근차근 행정 절차 등에 관해서 설명해 주었다. 진정서가 접수되면 경찰이 계좌번호를 추적한 뒤 그 지역 관할 경찰서에 사건을 넘기고, 그 뒤 전화를 해서 피의자를 경찰서로 부르고, 그렇게 3번의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수배령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 절차의 기간은 약 한 달에서 두 달. 꼴랑 205,000원 찾는 데도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린다니 답답했지만 별 수 없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더불어 경찰관은 우리처럼 n포탈 카페 '중고ㅇㅇ'가 인터넷 사기의 90%라고 귀띔해 주었다. 경찰에 따르면 '중고ㅇㅇ' 관련 사기의 경우 대부분 소액으로서 커봤자 50만 원 미만인데, 따라서 피해자들이 귀찮아서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범인들은 이를 노리고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었다. 피해자들이 고발하겠다고 하면 합의하고, 귀찮아서 '먹고 떨어지라'고 반응하면 그걸로 한 몫 챙긴다는 사기꾼들.

씁쓸했다. 결국 선진국, 후진국의 구분은 그 사회의 신용 문제라던데 아직 우리 사회는 사회 구성원들을 신뢰할 만큼의 수준이 아닌건가.

어쨌든 난 그렇게 경찰에 신고를 했고 다시 조마조마하게 녀석의 문자를 기다렸다. 혹시나 놈이 진짜 오늘 안에 입금하면 곧바로 진정 취하서를 제출해야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 모든 것이 오해라면 무고한 사람을 고소하면 안되지 않는가.

그러나 역시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녀석은 23시 59분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이제는 문자마저 답이 없었다. 100% 사기였다. 열이 나기 시작했다. 돈도 돈이었지만 혹여 그 모든 것이 오해일까봐 미안해했던 어리숙한 내 자신에 대해 짜증이 났고, 그만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문자를 통해 했던 그 많은 말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도대체 이 녀석 이름은 뭐지?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잡을 수 있지? 만약 경찰에서 잡는다면 합의를 해주어야 하는 것일까? 감방으로 직행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후 나의 일상은 녀석의 전화번호와 함께하기 시작했다.

좋을 말 할 때, 전화받아라.


태그:#인터넷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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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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