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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윤정씨가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6년간 일하다 악성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가운데,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 본관 앞에서 엄수된 노제에서 남편 정희수씨가 딸을 품에 안고 위로하고 있다. 이들 뒤쪽으로 고 이윤정씨의 영정사진이 운구차량에 놓여져 있다.
 고 이윤정씨가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6년간 일하다 악성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가운데,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 본관 앞에서 엄수된 노제에서 남편 정희수씨가 딸을 품에 안고 위로하고 있다. 이들 뒤쪽으로 고 이윤정씨의 영정사진이 운구차량에 놓여져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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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엄마가 숨졌다. 영정 사진 속 젊은 엄마는 밝고 예쁘다. 1980년에 태어났으니 나보다 열 살쯤 어리다. 이렇게 젊은 사람이 숨지다니... 큰아이가 8살이라는데. 이 아이는 죽음의 의미를 알기나 할까.

8살과 6살. 둘째가 우리 집 막내랑 나이가 같다. 이렇게 어린 아이를 두고 세상을 떠나는 엄마는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 들였을까. 얼마나 아이들에게 미안했을까. 얼마나 새끼들 끼고 살고 싶었을까. 또 남편은 지금 어린 아이를 안고 얼마나 먹먹할까. 고인의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고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까. 그것도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5월 7일에 삼성반도체 노동자였던 이윤정씨가 숨졌다.

며칠 전 보리출판사에서 3월에 새로 나온 책 <사람냄새>(김수박 저)를 읽었다. 이 책에서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은 삼성의 직업병 사망자가 54명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그 사이 사망자가 또 나왔다. <사람냄새>는 김수박씨가 만화를 그렸다. 그리고 이 책은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가 해준 이야기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입사 20개월 만에 백혈병 진단... "엄마, 나 죽었으면 좋겠어"

<사람 냄새> 겉표지
 <사람 냄새> 겉표지
ⓒ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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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19살인 유미씨가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취업이 됐다. 고3 때 삼성전자에 취업이 된 것은 5월 7일. 사망한 젊은 엄마 이윤정씨와 똑같다. 19살 나이, 참 어린 나이다. 중3인 우리 집 큰아이보다 겨우 세 살 많은 나이에 삼성전자에 취업이 된 것이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취업이 된 유미씨는 부모 곁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다.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이 돼 유미씨 부모는 아마도 주변의 부러운 시선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유미씨가 입사하기 전엔 어떤 딸이었는지 묻는 작가의 질문에 아버지는 "착했지" 한 마디를 한다. 여느 부모처럼 황상기씨도 직장 생활이 힘들더라도 딸이 성실하게 일하길 바랬을 것이다. 유미씨 일기장엔 일이 힘들어서 퇴사를 하고 싶었지만 대학에 들어가라면서 취업을 끝까지 반대했던 엄마에게 너무 미안해서 퇴사는 못하겠다는 내용의 글이 나온다.

그런데 입사한 지 19개월이 됐을 때, 유미씨 부모는 "속이 메슥거리고 토하고 어지럽다"는 유미씨의 전화를 받는다. 황상기씨는 체한 줄 알고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으라고 한다. 체한 줄 알고 간 동네병원에서 피에 이상이 있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듣는다. 그렇게 찾아 간 큰 병원에서 유미씨는 백혈병이란 진단을 받는다. 19살에 입사해서 20개월 만에 백혈병 진단. 그 사이 유미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황상기씨는 딸의 치료에 열중하면서 계속 이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유미씨의 백혈병 진단 소식을 들은 유미씨 할머니는 "애를 몹쓸 공장에, 이상한 데 보내갖고 병에 걸린 거 아니냐"며 속상해 하셨다. 그리고 며칠을 식사를 못하시다가 돌아가셨다.

2005년 12월 유미씨는 다행히 골수 이식을 받는다. 수술 덕분에 몸이 좋아진 유미씨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집은 병원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감옥이었다. 매일 락스로 소독하고 병균이 옮길까 봐 집안 식구도 밖에 나가지 못하고 이웃들도 집에 오지 못했다. 온 집안 식구들은 우울했다. 유미씨는 그때 "엄마, 나 죽었으면 좋겠어"하고 말한다. 그 소리를 들은 부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누군가의 엄마이자 딸이었던 사람들... 더이상 희생 없길

겨울이 지나고 2006년 봄이 오면서 부모님은 우울해 하는 유미씨를 데리고 여기 저기로 꽃구경을 하러 다닌다. 사진 속 유미씨 얼굴이 정말로 앳돼 보인다. 그러던 중 유미씨와 같은 라인에서 근무했던 이숙영씨가 7월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한 달 만에 사망했단 소식을 듣게 된다.

아버지는 회사 과장에게 산업재해 처리를 해 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회사는 펄쩍 뛰었다. 10월이 됐을 때 회사 사람이 집으로 찾아 왔다. 찾아 온 이유는 휴직기간이 끝났으니 사표를 내라는 거였다. 그간의 치료비를 주는 조건으로 결국 사표를 썼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상태가 좋아졌던 유미씨는 며칠 뒤 백혈병이 재발하게 됐다. 그리고 치료비와 관련해서 아버지는 회사쪽 사람들과 싸우는 일이 많아졌다. 결국 그 속상한 마음에 아버지는 여기 저기 찾아가고 언론사에 유미씨 사연을 제보하게 된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2007년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왼쪽)와 아버지 황상기(오른쪽). 김수박 작가의 <사람 냄새>는 황상기씨를 주인공으로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한 그의 투쟁 과정을 담았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2007년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왼쪽)와 아버지 황상기(오른쪽). 김수박 작가의 <사람 냄새>는 황상기씨를 주인공으로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한 그의 투쟁 과정을 담았다.
ⓒ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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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버지 제보를 들은 <말>지 기자가 유미씨 집으로 취재를 오게 됐다. 또한 <말>지 기자가 소개해준 산업재해 전문가의 도움으로 2007년 2월 유미씨는 산재신청을 간신히 하게 되었다. 그리고 3월 유미씨는 서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속초 집으로 돌아가던 중 아버지의 택시 뒷자리에서 세상을 떠난다.

만화 속 유미씨 어머니는 죽은 유미씨의 얼굴을 만지면서 울고 있다. 황상기씨는 눈물을 훔치면서 속초로 차를 몬다. 장례를 치르고 4월 1일 <말>지에 유미씨에 대한 기사가 났다. 유미씨가 죽기 전에 기사가 나왔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유미씨가 죽기 전에 취재를 했으니 다행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반올림 등의 시민사회단체 노력으로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가 세상에 드러난 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읽고 보니 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의 피나는 노력이 있어 세상에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재가 알려지고 반올림이란 단체도 만들어지게 된 것 같다. 책에 의하면 삼성은 10억이란 큰 돈으로 유미씨가 사망한 뒤에 황상기씨를 회유했단다. 하지만 황상기씨는 그런 회유를 물리친다. 유미씨 치료비로 큰 돈을 쓴 상황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으리라. 

유미씨부터 세상을 떠난 젊은 엄마, 이윤정씨까지 반올림에서 산재로 추정한 사망자 55명은 모두 한 집안에서는 세상 그 누구도 대신할 줄 수 없는 귀한 사람들이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고 부모님에게는 끔찍히 사랑하고 아끼던 딸이다. 하루 빨리 이들 죽음의 원인이 세상에 명명백백하게 밝혀졌으면 좋겠다. 더 이상은 이런 희생이 없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사람냄새>(김수박 저, 보리 펴냄, 2012.04.21, 1만2000원)



사람 냄새 :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김수박 지음, 보리(2012)


태그:#사람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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