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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이 사회적인 주요 이슈가 된지 근 반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학교 폭력 가해자 기록 남기기, 소위 '일진' 실태조사 및 공개, 초·중·고 학생들에 대한 정신건강 검사 등을 대책으로 내놨다. 또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에서는 교사들이 학교 폭력을 조사·해결할 수 있도록 특별사법경찰권(이하 준사법권)을 달라고 교과부에 요청했다.

이 대책들은 모두 현상만을 해결하기에 급급해 보인다. 학교 폭력은 현상을 억제한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학교 폭력이 발생하는 근원을 제거하지 않으면 결코 근절할 수 없다. 이는 여전히 학생들의 자살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학교는 학생들로 이뤄진 작은 사회다. 학교는 현 사회를 반영하며, 무한경쟁으로 인한 위계구조가 역시 존재한다. 성적순이란 사회에 순응한 학생들은 성적으로 높은 위계를 차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은 폭력이란 수단을 사용해 높은 위계를 차지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표출하려고 한다. 이런 근본적인 원인들을 알지 못하고 어른들의 입장에서 학교 폭력을 해결하려고 한다면 결코 학교 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교과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위험인자들을 색출해 내는 것에서 그친다. 위험인자들을 생산해 내는 현 구조를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학생 정신건강 검사를 예로 들어보자. 모든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검사한다는 것은 학생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규정한다. 또한 특정 정신을 옳은 것으로 설정해 학생들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이는 학교 폭력보다도 더 엄청난 폭력이다. 또한 준사법권을 요구한 교총 역시 학생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상정하는 것이다. 비전문적인 교사의 직접 수사는 어불성설이며, 각종 폐단만을 양산할 것이다. 교총의 요구는 학교 이미지 실추를 두려워한 교사들이 학교 폭력을 은폐하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만약 교사에게 수사권이 주어진다면 가해 학생들의 부모가 교사들에게 로비를 하는 기현상을 볼지도 모를 일이다.

현행 교육제도는 학생들에게 단지 지식만을 주입하고, 그것을 분별력 없이 수용하도록 만든다. 또한 성적순으로 위계를 세우는 무한경쟁은 학생들에게 가혹함만을 가져다준다. 교육은 학생들의 능력을 판단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동등한 학생들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교육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내팽개치는 것 또한 아니다. 작금의 교육제도는 대학진학을 위해 청소년기를 소비하는 시스템이다.

인생은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온다. 사춘기나 정체성 형성이라는 중요한 시기를 겪는 학생들에게 억압과 옥죔은 더 큰 반항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교과부나 교총이 학생들의 이런 현실을 해결해주지 않고 현상해결을 위해 학생들을 더 옥죈다면, 이는 학생들이 폭력을 비롯한 잘못된 형태로 억압과 옥죔을 분출하라고 부추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학교 폭력을 근절하려면 먼저 현행 교육제도의 개선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 근본적인 원인을 외면하고 현상만을 잡으려 하는 것은 아둔한 짓이다. 경쟁을 부추기고 학생들을 서열로 나누는 현행 교육제도는 계속해서 학교 폭력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학생들에게 경쟁이 아니라 서로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또한 성적순으로 학생들의 우열을 나누기 보다는 모든 학생들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 학업을 마치도록 하는 교육정책도 필요하다. 학생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하는 것이 옳다는 동반의식을 가질 수 있을 때, 학교 폭력은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병은 근원을 제거해야 비로소 완치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조선일보, 경향신문, 한겨레에도 송고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학교폭력, #정신건강검사, #특별사법경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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