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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스 암스트롱(49) 컬럼비아대학 역사학과 교수(한국학 연구소장)
찰스 암스트롱(49) 컬럼비아대학 역사학과 교수(한국학 연구소장) ⓒ 최경준


스스로 '386세대'라는 찰스 암스트롱 교수...어떤 동질감이 있을까  
찰스 암스트롱(49) 컬럼비아대학 역사학과 교수는 스스로를 '386세대'라고 말했다. 그것도 한국어로. 2시간 내내 영어로만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가 한국어를 사용한 것은 두 차례였다. 그 한 번이 '386세대'라는 말이었고, 나머지 한 번은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구식보수주의자'라고 말할 때였다. 1962년에 한국 대구에서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니, 그가 386세대라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2살 때 미국인 아버지를 따라 태평양을 건너간 뒤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에서 보낸 그가 한국의 386세대와 어떤 동질감을 갖고 있을까?

"1984~1986년에 연세대(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할 때 날마다 시위가 있는 것을 보고 정말 신기했다. '도대체 뭐하는 나라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운동의 열정과 조직은 인상적이었다. 386세대라는 개념은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모두가 같은 386세대라고 할 수 없다. 그 세대의 운동권에서 나온 정치적 특징은 비타협적이라는 것이다. 매우 자신감이 있다. 그게 문제인 것 같다. 지난번 4·11 총선에서조차 스스로가 옳다는 절대적 신념이 있었던 것 같다. 이게 타협을 어렵게 만들고, 광범위한 호소를 끌어내는 것을 어렵게 했다."

그는 한국의 386세대에 대한 이해는 물론 지난 4·11총선 과정에서 임종석 전 민주당 의원 등 '386세대 정치인'에게 제기된 비판론까지 꿰뚫고 있었다. 이제는 '486세대'로 불리는 그들에게 암스트롱 교수는 "거대한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순화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 뒤, "(내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386세대일까?

"나와 오바마는 X세대... '약자의 폭정' 조망하고 싶었다"

"자기인식이 강하고 정체성이 뚜렷하다는 점에서 386세대는 미국의 베이비붐세대와 유사하다. 물론 다른 점도 있는데, 일부 베이비부머들은 정치의식화 됐지만, 대부분 자기중심적이다. 나와 오바마 대통령의 세대는 베이비붐세대 이후의 세대이다. 말하자면 X세대라고 할 수 있다. 베이비부머라는 선배의 그늘에서 성장했다. 1970년대 말 서방세계 특히 미국에서는 학생들의 정치관과 일반정치에서 보수주의화가 진행됐었다."

암스트롱 교수가 예일대에 입학 할 즈음, 레이건 대통령과 대처 수상의 등장으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노동·학생운동이 뚜렷한 쇠퇴기를 맞았다. 1984년 대학 졸업 후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서울에 온 그가 한국의 노동.학생운동에 강한 인상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가 한국학, 특히 북한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서울이 아니라 중국 장춘에서였다.

"예일대 학부에서 중국근현대사를 전공했기 때문에 중국에 가고 싶었고, 어렵게 중국 장춘에 가서 영어를 가르치게 됐다. 그곳에서 두 종류의 한민족을 만났다. 먼저 조선족이었다. 내가 일하는 근교에는 2백만 명의 조선족이 있었다. 그들이 왜 거기에서 살게 됐는지, 삶이 어떤지, 문화는 무엇인지, 남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이 궁금해졌다.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내가 가르치던 대학교에서 북한 유학생을 만난 것이다. 그들의 관점은 내가 알고 있는 관점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왜 남북이 분단됐는지, 왜 중국에 한인들이 살게 됐는지 등에 관심을 갖게 된 암스트롱 교수는 시카고대 대학원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를 찾아가 그의 밑에서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대가 커밍스 교수는 그에게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획득한 북한자료들을 공부하게 했다.

 찰스 암스트롱(49) 컬럼비아대학 역사학과 교수(한국학 연구소장)
찰스 암스트롱(49) 컬럼비아대학 역사학과 교수(한국학 연구소장) ⓒ 최경준

북한 연구에 대한 그의 첫 성과는 박사논문으로 쓴 저서 <북한의 혁명>(2003년)을 통해 빛을 발했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50년까지 북한 정권의 탄생과정을 그린 그의 책은 기존의 냉전적 시각에서 벗어나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한 명서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미 국무부 고문을 지내기도 했으며 현재 컬럼비아대학 한국학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미국 및 여러 국제적인 유력 언론에서 남북한과 동아시아 문제에 대해 자문역을 해주고 있는 그는 미국 내에서 북한 연구의 차세대 선두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암스트롱 교수가 내년 발간을 목표로 집필 중인 신간은 북한체제의 기원부터 90년대 기근 문제까지 총 3부작으로 구성돼 있다. 그 중 2부는 한국전쟁의 발발과 냉전종결 시기(1950~1988년) 북한의 대외관계사를 다뤘는데, 제목이 다소 흥미롭다. '약자의 폭정'(the Tyranny of the Weak)이 그것이다.

"북한은 작은 나라이지만, 이 기간 동안 소련과 중국 사이를 교묘하게 다루면서 안전보장과 경제지원 등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얻어냈다. 그런 면에서 북한은 성공적이었다. 나올 책에서 내가 주장한 것은 북한이 강대국을 가장 잘 이용한 소국이라는 것이다. 남한 역시 어느 정도는 그러했다.  특히 이승만이 그랬다. 대부분의 미국 관료들은 이승만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이 자신을 지원하지 않으면, 남한이 북한에 의해 적화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김일성이 이런 일에는 더욱 능숙했는데, 그에게는 두 개의 강대국, 소련과 중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대립하게 하여 이익을 취했다."

신간은 이 외에도 이전에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을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1960~1970년대 북한이 서유럽과 국교관계를 설립하려고 시도했던 것, 아프리카에서 북한의 활동 등이 담겨있다. 이들은 대부분 사회주의 붕괴 후 공개된 소련과 동유럽의 자료에 근거한 것들이다.

"2부에서 다루고 있는 40여 년 동안의 북한의 외교관계는 여태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고 이를 조망하려는 게 내 목적이다. 이 기간의 역사는 오늘날 북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북한이 일관된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강대국을 이용하려 하고 있다. 과거에 소련과 중국을 대하듯 미국도 현재 그런 식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대북정책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수립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선결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워싱턴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과 달리 미국의 대북정책이 대화를 통한 온건노선을 걸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그가 특별한 계기 없이 한반도 문제에 있어 진보적 관점을 갖게 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우리 어머니가 대구출신이기 때문에 외가는 보수적이다.(웃음) 보수적으로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친북도 아니다. 나는 북한체제에 비판적이다. 나의 목표는 어떻게 북한은 이렇게 되었고, 남한은 이런 식인가를 규명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단일 국가였던 남북한이 1945년 이래 어떻게 달리 발전하는 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암스트롱 교수는 북한을 핵무기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진보 진영조차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인권, 식량부족, 보건피폐 등 인도주의적 문제를 갖고 있고, 이 문제는 실질적인 것이다. 북한을 핵무기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은 좋지 않다. 우리는 북한 주민을 돕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하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북한의 인도주의적 문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진보 진영이 이러한 문제를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우익이나 제기하는 문제로 치부하곤 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북한 주민의 고통을 해결하는데 나서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북한에 대한 미국 언론의 보도 행태는 사실적인 북한의 실상을 알리기보다는 터무니없이 왜곡되어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일반주민의 삶은 감춰진 채, 강제수용소나 기아 같은 극단적 이슈에만 한정되어 있고, 군인들의 행진이나 훈련 따위의 "무서운 장면"만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은 한쪽에는 강제수용소, 다른 한쪽에는 군사훈련만 있는 나라가 아니"라며 "북한은 많은 점에서 비판받아야 하지만, 북한주민들은 연민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북한이 로켓 발사를 공언하자 오바마 정부가 식량지원을 취소한 것은 매우 잘못됐다"며 "영양실조를 방지하기 위한 식량원조는 절대 정치이슈와 연결돼서는 안 된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남한 대선이 미국 대선보다 중요한 이유는?

 찰스 암스트롱(49) 컬럼비아대학 역사학과 교수(한국학 연구소장)
찰스 암스트롱(49) 컬럼비아대학 역사학과 교수(한국학 연구소장) ⓒ 최경준
지난 2008년 광우병 쇠고기 파동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을 비판한 미국 내 한국전문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당시 촛불시위에서 받았던 깊은 인상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촛불시위는 놀랍고 경이로운 현상이었고, 문제를 자각한 한국민들이 필요하다면 가두에 나선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런 시위가 어떻게 정치과정에 인입되는지가 문제이다. 그것이 정치권의 과제일 것이다. 남한 정치구조의 한계인데, 국민들의 관심사를 정책화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월가 점거 시위와 비교할 수 있겠다. 월가 점거가 촛불시위만큼 크지는 않지만, 공통점이 있다. 월가 점거 시위대가 미국에 광범위한 불평등과 부의 집중이 있다고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점거하고 철야하는 것만으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좀 더 나아가, 정치프로세스에 들어가 정책을 바꿔야 한다. 시위가 아닌 실제적 정치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위 자체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정치 과정으로 인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지난 4·11총선을 매우 흥미롭게 지켜봤다.

"한국 정치는 예상불가이다. 그래서 흥미롭다. 6개월 전 한국에 있는 내 정치학자 친구는 이번 4월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할 것이라고 확언했다. 지난 몇 달간 상황이 바뀐 것이다. 박근혜가 새누리당을 개혁한 것이 일부 주효했고, 민주통합당의 오류도 영향을 미쳤다. 민주통합당과 그 지지자들이 좀 오해를 했던 것 같다. 장차 승리하려면, 전략과 메시지를 다듬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4·11 총선을 통해 더욱 굳어진 '박근혜 대세론'은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미국에서 한국학을 전공하거나 한국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자 또는 정치인들을 만나면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지난 21일 <뉴욕타임즈>가 '소란스러운 민주주의에서 청결한 기운을 가진 독재자의 딸(In a Rowdy Democracy, a Dictator's Daughter With an Unsoiled Aura)'이라는 제목으로 박 위원장을 소개한 것도 눈길이 가는 대목이다. 그도 그 기사를 보았다고 한다.

"박근혜는 변해왔다. 그녀가 2007년 처음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을 때, 지나치게 박정희에게 의존한다고 생각했다. 박정희가 한국사회 일각에서는 인기가 있지만, 모두가 그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제 박근혜는 과거나 아버지가 아닌, 미래를 강조하는 것을 배운 것 같다. <뉴욕타임즈>는 박근혜의 과거와 아버지를 강조했던데, 그녀는 이미 박정희 딸만이 아닌, 독자적인 인물이 됐고, 독자적 인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녀가 구식보수주의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우익중도라고 본다. 물론 이 문제는 누가 그녀를 보좌할 지에도 달려있다. 그러나 그녀가 어떤 대통령이 될지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우선 그녀는 당내 경선에서 후보가 되어야 한다. 그녀가 대통령이 될지도 가늠키 어렵다. 남은 6~7개월이라는 시간은 한국 정치에서 보자면 상당히 긴 시간이다. 인물들의 부침이 한국 정치를 흥미롭게 한다. 나는 민주통합당이 합당한 전략과 후보로 대선에서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 현재로는 박근혜가 유리한 입장이지만…,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그가 민주통합당 후보의 대선 승리를 점친 것은 사실 기대감의 표출이다. 그가 한국 대선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향후 대선의 향방에 따라 대북정책의 골자가 180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2012년은 러시아, 중국, 일본, 그리고 미국 등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의 정부교체가 예고되어 있다. 그러나 암스트롱 교수는 인터뷰 내내 남한 대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대북정책 결정에 있어 남한 대선이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남한만이 (주변국의) 대북정책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미국 대선보다도 더 중요하다."


#찰스 암스트롱#광우병#김정은#이명박#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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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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