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위키리크스 홈페이지.
 위키리크스 홈페이지.
ⓒ 위키리크스

관련사진보기


2010년 여름,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와 같은 해커가 세상을 놀라게 했다. 미국의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전에서의 군사기밀을 폭로한 위키리크스의 줄리언 어산지가 주인공이다.

그는 내부 고발자들의 도움으로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에서 미군이 민간인을 이유없이 폭격한 사건을 폭로했다. 그 폭로에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창립자에 대해 노골적으로 살해 위협을 주문했다.

위키리크스의 목적은 단순하다. 정보에 대한 국가의 일방적 통제에 반대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대중에게 공개될 수 있을 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 믿는다. 민간인 폭격에 대한 진실이 세상에 제대로 공개됨으로써 전쟁의 참상에 대해 좀 더 냉철하게 직시하게 된다.

권력에 의해 포장된 전쟁의 명분이 제아무리 그럴듯한 것일지언정 전쟁 그 자체가 평화를 파괴하고 아무 죄가 없는 민간인에게 포탄을 퍼부을 만큼 잔인한 것이라는 사실에 눈뜨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심지어 민간인 살상에 태연한 모습을 보이는 군인들의 모습은 전쟁이 인간성을 상실케 할 만큼 선과 악의 경계선이 무너지는 것임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줄리언 어산지가 공개한 은폐된 정보에는 바로 그런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 민간인을 학살하면서 농담을 주고받는 미군들, 아무리 전쟁 중이었다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책임을 묻지 않고 당연하게 덮어지는 진실들.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면서 미국의 전쟁은 명분 그 자체를 의심받기 충분했다.

우리 일상 장악하고 있는 금융,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하기도

정보를 은폐하는 것은 대중에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 저항이 없는 사회를 만들 뿐 아니라 때로 검은 의도가 조작된 정보 하에서 세탁되어 버리면서 말 그대로 눈과귀가 먼 채로 악한 선택의 공모자가 되어버릴 수 있다. 위키리크스가 다루는 극단적인 정보 은폐 못지 않게 정보가 축소되거나 왜곡된 형태로 전달되는 것 또한 위험하다. 중동 전쟁과 같이 대형사건은 아니지만 우리 일상에서 사소해 보이나 빈번하게 일어나는 위험한 사건들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상 그 사소해 보이는 위험요소들 또한 정보가 왜곡되어 전달되는 과정에서 다수 대중의 삶에 전쟁만큼 위협적인 것일 수 있다. 그 위험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위험이 몰고올 결과를 개인화 시켜버림으로써 사소하다고 여겨지게 만든다. 그에 따라 종종 하찮게 치부되면서 어느 한순간 폭발하듯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는 위험의 본질이 은폐된다.

우리 일상을 장악하고 있는 금융이 바로 그런 작은 문제들이 왜곡되고 쌓여나가 결국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하기도 한다. 그리고 파괴의 속도가 빨라지고 대상도 점점 광범위 해지면서 금융위기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금융위기가 전쟁이나 다름없이 커다란 재앙으로 다가올 때까지 아무도 저항하지 않는다. 2008년 미국에서도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보통 사람들에게 행해지는 금융의 약탈이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었다.

'약탈적 대출',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노예의 삶으로 내몰아

서울 여의도의 한 시중은행 창구(자료사진).
 서울 여의도의 한 시중은행 창구(자료사진).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약탈적 금융'이란 이렇게 정의한다. 소득 수준을 뛰어넘는 신용을 제공하는 것이다. 갚을 수 없는 줄 알면서도 만약 갚지 못할 경우 담보로 제공한 자산을 채권 대신 회수하면 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담보자산 회수 가능성이 큰 줄 알면서도 소득 수준 이상의 돈을 빌려주는 것을 '약탈적 대출'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과도한 표현이 아니다.

담보 자산이 없이 과도하게 주어지는 신용 대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지독한 채권추심이 얼마든지 가능한 나라에서는 어떻게든 고리의 이자 뿐 아니라 원금이 회수 될 때까지 금융사들의 악착같은 빚 상환 압박에 노예처럼 빚 갚는 일상을 살게 되지 않는가. 담보 자산이 없는 약탈적 대출은 냉철하게 들여다 보면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노예와 같은 삶으로 내모는 잔인함을 가졌다.

저소득층의 저축을 돕기 위한 기부프로그램인 위드세이브(www.withsave.or.kr)에서도 이와 같이 약탈적 대출로 인해 취약계층으로 전락한 사례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참여자 중에는 소득이 낮고 불규칙한  미혼모가 생계비 때문에 전세자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가 전세금을 대부분 까먹은 사례도 있다. 어찌보면 당장 생계비가 급한 상황에서 전세금이라도 담보를 잡아 돈을 빌려준 것에 고마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미혼모의 경우 자립 자활을 돕는 지역 자활 센터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지방 정부의 긴급자금 지원이란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전세자금 담보 대출이 가져온 '약탈적 결말'

우리나라의 복지 시스템이 그늘진 사각지대가 상당한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여러 경로를 통해 최대한 찾아보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그러나 전세자금 담보 대출은 그런 집요한 노력을 지연시키게 만든다. 적절한 사회 안전망을 찾는 노력 대신 쉽게 이용한 전세자금 담보 대출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약탈적 결말로 막을 내린다.

소득이 늘어나거나 사회 안전망이라는 근본적인 처방이 없는 한 전세자금 담보 대출은 부족한 생계비에 이자 비용까지 더해 빠른 속도로 그녀를 채무 불이행자로 만든다. 연체가 시작되고 전세자금 담보 대출을 내주었던 금융사는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 전셋집에 강제 집행을 하게 된다. 그녀는 전세 집이라는 보금자리마저 잃게 되었고 현재는 월세까지 부담해야 하는 절실한 상황에 내몰렸다.

위드세이브(함께 저축 프로그램)에 참여한 그녀는 재기를 위해 각오를 다지지만 여전히 안전한 보금자리에 대한 희망을 힘겹게 그려가야 한다. 그녀가 일으킨 대출은 처음부터 그녀의 소득 수준으로는 상환이 불가능했고 그 사실을 대출 승인을 해준 금융사에서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세 집이라는 담보가 전제 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출 승인이 이뤄졌다. 한마디로 갚지 못할 경우 전세금을 회수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이뤄진 채권 채무 계약이다. 다행히 예상외로 잘 갚으면 이자 수입을 챙기면 되고 안 되면 집을 빼앗으면 그만이라는 잔인한 계약이라는 것이다.

채무자 상환능력 고려치 않는 대출, 국가경제에 심각한 위험 초래할 수도

서울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자료사진).
 서울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자료사진).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실제로 최근 어느 상담자는 자신의 부모가 10년간 꼬박 꼬박 대출 이자를 갚았음에도 결국 집을 은행의 경매처분에 빼앗긴 사례를 털어놓기도 했다. 상담자는 부모님의 상황에 대해 깊은 안타까움과 은행에 대한 분노로 이야기 도중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지난 10년간 어김없이 갖다 바친 이자는 평가 받지 못하고 자산 가치가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님이 하던 장사가 안 돼 폐업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순식간에 대출 원금 일부에 대해 회수 통보를 했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소득이 중단된 상황에서 원금 일부조차 상환이 불가능했으리란 것은 뻔한 일. 이런 과정을 냉정하게 풀어보면 소득 이상의 담보 대출, 혹은 소득 변동을 고려하지 않은 대출에 대해 약탈적이라 표현하는 것은 전혀 과하지 않다. 오히려 10년간의 성실한 이자 납입을 외면하는 은행의 모습, 전세금마저 회수하는 금융사의 모습에서 그 약탈적 속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채무자의 상환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대출은 가계의 파산과 주거의 불안정을 초래하고 궁극적으로는 국가경제 전체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미국도 HOEPA(Home Ownership and Equity Protection Act. 1994.)의 제정 및 최근 통과된 금융개혁법 등을 통하여 약탈적 대출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여전히 겉으로 달콤한 이야기들을 쏟아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황당할 정도의 이자를 챙기는 대출 상품까지 즐비한 상황이다. 소비자들은 일상적으로 금융상품의 왜곡된 정보에 노출되어 금융비용으로 빚의 그물에 빠져버린다.

금융정보가 왜곡되는 사이 어느 순간 자신이 쓴돈이 아니라 갚아야 할 이자 때문에 또 다른 빚을 내는 악순환에 빠지고 지독한 채무독촉에 내몰리게 된다. 이러한 약탈적 금융판매가 오늘도 멀쩡한 직장인들의 휴대폰과 이메일함을 장악하고 케이블 TV를 통해 유일한 친구인 것처럼 포장되어 실시간 우리의 뇌를 자극한다. 멀쩡한 민간인을 사살한 미군들의 행동이 전쟁의 부수적인 희생일 뿐이고 그 민간인이 방탄복을 입지 않았다고 비난을 들어야 하는 황당한 논리처럼, 결국 돈을 빌려 쓴 사람만 수치심을 갖는다. 그 사이 정보를 왜곡해서 부당이득을 챙기는 금융사는 모든 문제를 빌려쓴 사람에게 뒤집어 씌운다.

덧붙이는 글 | 위드세이브 홍보 자료에 홈페이지 주소가 바꼈습니다. www.withsave.or.kr입니다.



태그:#약탈적 대출, #가계부채, #취약계층, #위드세이브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