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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명문대생의 SAT 대리시험 스캔들 주인공이었던 샘 에셔고프가 <60 Minutes>에 출연했다.
 미국 명문대생의 SAT 대리시험 스캔들 주인공이었던 샘 에셔고프가 <60 Minutes>에 출연했다.
ⓒ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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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SAT 잘 보잖아. 나는 아니거든. 너도 알다시피 그건(대리시험)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야. 내 대신 시험 봐주면 2500달러 줄게."

19살 시험 달인의 비뚤어진 인생은 같은 학교 동급생의 은밀한 부탁에서 시작되었다. 10대 소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거금, 달콤한 유혹이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좋아서 믿기지 않을 정도였지요."

작년 9월에 발생한 미국 명문대생의 SAT 대리시험 스캔들 주인공인 샘 에셔고프가 다시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에셔고프는 지난 1일 방송된 CBS의 뉴스매거진 <60 minutes>에 출연하여 자신이 왜, 어떻게 대리시험을 치르게 되었는지를 상세히 소개했다.

퍼펙트 키드에서 전과자로 전락하다

샘 에셔고프는 완벽한 학생이었다.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수갑을 차고 경찰차에 오르기 전까지는. 그가 다녔던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그레이트 넥 노스 고교는 노벨상 수상자까지 배출했던 미국 내 손꼽히는 명문 고교였다.

그는 이 학교에서 탁월한 성적을 과시한 톱클래스 학생이었다. 공부뿐 아니라 스포츠에도 능했던 에셔고프는 학교 대표팀(varsity)의 풋볼선수로도 활약했고, 교내 <비즈니스 클럽>의 부회장을 맡아 리더십도 발휘했던 '퍼펙트 키드'였다. 

SAT와 ACT를 비교한 백분위표. 에셔고프는 지난 해 발각된 6번의 SAT 대리시험에서 최고 2220에서 최하 2140을 받았다. 최상위 등급에 속하는 점수다.
 SAT와 ACT를 비교한 백분위표. 에셔고프는 지난 해 발각된 6번의 SAT 대리시험에서 최고 2220에서 최하 2140을 받았다. 최상위 등급에 속하는 점수다.
ⓒ Omniac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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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보다 뛰어난 그의 재능은 '시험의 달인'이라는 점이었다. 한국의 수능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는 대학에 진학하려면 SAT나 ACT를 치러야 한다. 단 한 번만 치르는 수능과는 달리 SAT나 ACT는 횟수 제한이 없어 여러 번 치를 수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만족스러운 점수를 얻을 때까지 보통 2, 3번, 많게는 4, 5번까지도 치르는데 에셔고프는 바로 이 시험에서 언제나 고득점을 받았던 시험의 귀재였다. 나소 카운티 검찰의 케서린 라이스 검사는 지난 해 기자회견을 통해 에셔고프가 받은 6차례의 시험 점수를 모두 공개했다.

"2220, 2210, 2140, 2180, 2180, 2170."

2400점이 만점인 SAT에서 보통 2000점만 넘어도 명문대 진학이 가능한 만큼 그가 받은 고득점은 대단히 훌륭했다. 실제로 에셔고프가 친 대리시험 성적으로 이미 명문대에 입학한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의뢰인이 누구인지 그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SAT 주관사인 ETC는 대리시험을 통해 얻은 점수로 입학한 학생에 대해서도 그 신원을 해당 대학에 알리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셔고프는 시험의 귀재로서 탁월한 능력을 가졌지만 안타깝게도 그 재능이 그를 범죄자의 길로 이끌었다. 결국 에셔고프는 명문대생과 사기꾼이라는 이중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SAT 관리, 이렇게 허술할 수가

미국에서는 해마다 200만 명 가량의 학생들이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SAT를 치르고 있다. 비영리기관인 컬리지보드가 시행하는 이 시험은 국가고사는 아니지만 그런 정도의 철저한 관리가 요구되는 시험이다.

하지만 지난 해 SAT 스캔들이 발생했고 이 사건 관련자는 모두 7명이었다. 주동자인 에셔고프와 대리시험을 의뢰한 6명의 학생들은 모두 형사고발되었다. 당시 드러난 결과로만 본다면 에셔고프는 모두 6차례 부정한 방법으로 대리시험을 치른 셈이다. 과연 그게 전부였을까.

에셔코프가 <60 Minutes>에서 밝힌 내용은 충격적이다. 그는 모두 16차례 대리시험을 치렀다고 고백했다. 작년에 발각된 6건 외에 신분을 위조해 '성공적으로' 대리시험을 치렀던 게 10건 더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에셔고프가 밝힌 대리시험 성공담을 들어보면 이 시험이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한 라이스 검사도 NBC <투데이> 인터뷰에서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게 쉬워 보였다"고 탄식했다. 그만큼 시험 관리가 부실하고 신분 위조에 대한 안전 장치가 전무한 상태였다. 

SAT나 ACT를 치르는 학생들은 고사장에 입장할 때 반드시 지참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수험표와 신분증, 연필, 지우개, 계산기 등이다. 본인임을 증명하게 될 신분증은 해당 주에서 발행한 운전면허증, 비운전자 신분증, 정부 발행 신분증, 여권, 학생증으로 대체될 수 있다. 바로 이 가운데 위조가 가능했던 것은 학생증이었다. 에셔고프는 자신이 학생증을 어떻게 위조했는지 설명했다.

"학생증이 뭔가요? 이름과 사진만 붙여 색깔을 입힌 거잖아요. 저는 제 고등학교 학생증으로 일단 견본을 만든 뒤 제 사진을 붙이고 의뢰인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 넣었어요. 정말 쉬웠지요."

에셔고프는 대리시험 과정을 설명하면서 자신에게 대리시험을 요청한 학교 친구, 동급생, 후배들을 지칭할 때 의뢰인, 고객이라는 뜻을 가진 클라이언트(client)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의뢰인을 위해 신분 위조가 어려운 운전면허증이나 여권 대신 자신의 사진과 의뢰인의 이름, 생년월일을 적어 넣은 위조 학생증을 사용했다. 물론 불량한 양심을 가지고 시작한 사업이었다.

"고사장에 들어갈 때 고개를 숙이고 감독관에게 살짝 신분증만 보여주면 돼요. 그들은 신분증에 나온 이름과 자신들이 가진 명단의 이름이 같은가를 확인할 뿐이니까요. 그런 다음 제 자리로 가서 조용히, 문제만 일으키지 않고 시험을 치르고 나오면 돼요."

한 사람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요한 시험인 SAT가 이처럼 손쉽고 간단하게, 부정한 방법을 통해 저질러지고 있었다. 이렇게 허술한 관리이다 보니 에셔고프는 남녀 구분이 안 되는 중성적인 이름을 가진 여학생의 대리시험도 치렀고, 같은 주말에 두 번이나 시험을 치른 적도 있었다.

그가 밝힌 시험 감독관들 면면도 부실 투성이였다. 시험 감독을 해본 적이 없는 직원, 신참 교사, 식당 보조원들이 SAT 감독을 맡았다. 이런 부실한 시험 관리 탓에 그가 그렇게 오랫동안 들키지 않고 대리시험을 치를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에셔고프는 전국 6000개 고사장 가운데 본인이 마음대로 고사장을 선택할 수 있는 점도 악용했다. 즉, 대부분의 학생들은 재학 중인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에셔고프는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고사장을 일부러 선택해 시험을 치르는 등 대단히 주도면밀하게 행동했다.

에셔고프를 기소했던 뉴욕 주 나소 카운티 변호사는 에셔고프가 16번이나 SAT 대리시험을 치를 수 있었던 것과 관련해 SAT 관리의 공정성과 안전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SAT 주관사인 ETS의 회장인 커트 랜드그래프는 <60 Minutes> 인터뷰에서 작년에 적발된 신분위조 건수는 전체 200만 명 가운데 겨우 150명으로 99% 이상의 학생들은 정직하게 시험을 치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SAT 보안 문제를 강화하기 위해 매년 1100만 달러의 돈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수갑을 차고 끌려가는 에셔고프. 얼굴을 가린 학생은 대리시험을 부탁한 의뢰인.
 수갑을 차고 끌려가는 에셔고프. 얼굴을 가린 학생은 대리시험을 부탁한 의뢰인.
ⓒ PIX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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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장사꾼의 추잡한 뒷얘기

에셔고프가 처음 대리시험을 치렀을 때 그는 수학에서 만점을 받았다. 그때의 느낌을 에셔고프는 이렇게 표현했다.

"와, 그것 참 쉽군. 훌륭해. 난 시험에 소질이 있나 봐."

실제로 그는 과거 3년 동안 여러 차례 SAT를 치르면서 일관되게 97%, 또는 그 이상의 경이적인 백분위를 기록했다. 즉, 상위 3% 안에 드는 높은 성적을 자신에게 일을 맡긴 고객들에게 제공했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완벽하게 일을 해낸다면 정말 신뢰할 만한 서비스라고 할 수 있겠죠."

에셔고프가 거둔 완벽한 성공은 시험장사꾼으로서의 명성을 높였고 이런 사실은 입소문을 통해 퍼져 나갔다. 물론 고객도 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그가 대리시험을 치르고 받은 돈은 건당 최고 2500달러. 한 고객은 그가 거둔 시험 성적에 대단히 만족해 팁으로 1100달러를 준 일도 있었다. 이렇게 큰 돈을 벌게 돼 돈맛을 들인 에셔고프의 추잡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제게 대리시험을 의뢰한 두 명의 예비 고객 중 누가 더 많은 돈을 줄 것인지 여러 차례 싸움을 붙이기도 했어요. 즉, 입찰경쟁을 유도한 거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그의 사업은 계속되었다. 에셔고프는 뉴욕주에서 미시건주(미시건대)로, 다시 조지아주(에모리대)로 옮긴 뒤에도 시험의 달인인 자신을 찾는 의뢰인을 위해 비행기를 탔다. 물론 의뢰인에게는 원래 책정된 가격 외에 비행기값을 추가로 더 받았다.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이다. 이렇게 수천 달러의 큰 돈이 오간 뒷거래에서 의뢰인 학생의 부모는 정말 몰랐을까. 에셔고프의 말이다.

"그건 저도 몰라요. 고등학생이 알바를 해서 얻을 수 있는 돈은 아닐 거라고요. 저는 결코 그 돈이 어디서 나온 거냐고 묻지 않았어요. 그냥 그 부모로부터 나왔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죠."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SAT나 ACT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대부분 문제집을 풀어보며 시험에 대비하지만 SAT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는 아이들도 있다. 특히 한국이나 중국, 인도 등 아시아계 학생들이 많은 곳은 이런 학원도 성업중이다.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SAT나 ACT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대부분 문제집을 풀어보며 시험에 대비하지만 SAT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는 아이들도 있다. 특히 한국이나 중국, 인도 등 아시아계 학생들이 많은 곳은 이런 학원도 성업중이다.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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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생의 전도된 가치관

부정한 방법으로 큰 돈을 벌었던 에셔고프는 검찰 수사망이 자신을 향해 좁혀져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부모가 전화를 걸어 체포 영장이 발급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겁이 났죠. 부끄럽기도 했고요. 제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말한 것과는 달리 에셔고프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저지른 중범죄인 대리시험에 대해 "그 아이들의 인생을 구해준 것"이라는 황당한 변명을 늘어놔 충격을 주었다.

"내신 성적이 아주 안 좋은 애들이 있거든요. 그런 애들은 아무리 공부해도 SAT를 망칠 수밖에 없어요. 그 아이들에게 경이로운 점수를 받게 해 주고 새롭게 재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죠. 그러면 (본인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완전히 새로운 직장도 잡게 되고, 결국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거죠."

<뉴욕 포스트>는 에셔고프의 이런 발언에 대해 그가 자신의 범죄 행위를 '고상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에셔고프는 <60 Minutes> 인터뷰 말미에 자신의 범죄 행위를 후회하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다음은 인터뷰에 나왔던 1문1답이다.

- 대리시험을 치를 때 스스로 자신에게 이런 대화를 해본 적이 있는가. '샘, 나도 지금 내가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 속이는 거라고. 이건 옳지 않아. 그만 둬야 해.'
"물론 했었죠. 저도 제가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만 둬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요. 하지만 전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죠.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다. 딱 이번만이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참담한 기분일 것 같은데.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거예요."

돈의 유혹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재능을 팔아먹은 한 명문대생의 뒤늦은 후회가 안타깝기만 하다.

한편, 에셔고프 법률팀은 형량거래를 받아들여 그가 옥살이 대신 사회봉사 활동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는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SAT에서 고득점을 올릴 수 있는 과외를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는 현재 다시 대학으로 돌아갔다.


태그:#대리시험, #SAT, #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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