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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세상의 변화를 상징하는 말로 오래 그 생명력을 간직해왔습니다. 과거 정말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떠난 고향, 고등학교 재학 중 방학을 맞이해서 10년 만에 방문한 고향 농촌은 정말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나의 마음에 대로(大路)로 각인되어 있던 신작로는 자그마한 길로 변해 있었구요, 그 넓디 넓은 학교 운동장은 내 손바닥 안에 잡힐 정도였습니다. 우람하게 솟아 있던 앞뒤 산도 나지막한 야산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변화는 의식하지 못한 채 고향 강산의 변화에 눈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변하면 강산도 변하고 삶도 바뀌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시대는 인간의 삶에 편의를 제공하는 쪽으로 끊임없이 변합니다. 성탄절 분위기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사람 위주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을 가장 민감하게 맞이하는 곳이 정작 교회가 아닌 백화점 등 사람을 끌어야 생존하는 사업장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성탄절 분위기 중 카드를 보내고 받아보는 것도 아주 뜸해졌습니다. 정보화 시대의 결과일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는 오늘날, 성탄 카드를 보낸다는 것은 디지털의 삶을 거부하는 사람쯤으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아날로그에 미련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십상입니다. 딱 7년 전이네요. 그때까지 저도 성탄 카드를 100장 이상 구입해서 한 해 동안 도움을 받은 분, 사랑을 나눈 분, 기억하고 싶은 분들에게 일일이 감사 인사말을 써서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다량의 우편물이어서 우체국 직원이 '요금별납' 도장을 찍어 발송하라는 것을 마다하고 우표를 정성껏 붙여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일을 멈춘 지가 7년이 되었군요. 현실에 순응하는 나의 나약한 모습을 봅니다. 지금은 이메일로 또 더 많게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절기(명절) 인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손쉽고, 경제적 부담 없어 효율성은 뛰어난 것 같지만 인정과 사랑이 생각만큼 얹히지 않아 씁쓸합니다. 성탄절이 낀 연말연시가 되면 '성탄 카드' 혹은 '연하장' 상념으로 마음앓이를 하는 건 저만 겪는 것이 아니겠지요. 금년은 이미 놓쳤습니다. 내년 성탄절 즈음엔 카드를 손수 만들어 가까운 지기들에게 보내야겠다고 마음의 다짐을 미리 해 둡니다.

 

그런데 그런 전통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몇 분에게서 받은 성탄 카드는 그래서 더 광채를 발합니다. 이분들은 예스러움에서 아름다운 마음을 피우는 사람들입니다. 먼저 해성한의원 신재용 원장님으로부터 성탄 카드입니다. 아니 이건 엄격하게 따지만 성탄 카드가 아닙니다. 카드를 대신한 도록입니다. 신 원장님은 매년 연말이면 '마음으로 봐주세요'라는 제목의 도록을 제게 보내오고 있습니다. 이건 시각장애인들의 미술 작품 전시회 출품작을 실은 도록입니다. 여기에 성탄 인사말을 곱게 써서 카드 대용으로 보내옵니다.

 

또 조윤구 선생으로부터 받은 성탄 카드가 있습니다. 이것은 더 정확히 말하면 연하우편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성탄 카드 사업도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찾는 사람이 있어야, 즉 수요가 있어야 제작을 하고 공급을 하게 되는 것인데, 찾는 이들이 없으니 적자생존의 자본주의 논리에 입각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공공사업체인 우정사업본부에서 연하우편을 찍어 찾는 이들의 욕구를 채워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조윤구 선생은 독립운동가 유정 조동호 선생의 자제분으로 유정기념사업회 상임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저도 이사의 자리 말석에 앉아 있는 관계로 매년 동일한 카드, 연하우편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성탄카드도 있습니다. 사회복지법인 누리복지재단 채은희 대표로부터 온 성탄 카드입니다. 내가 이곳 김천으로 오고 나서 지역 사회 운동에 관심을 갖고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데, 채은희 대표도 그런 사람 중 한 분입니다. 그는 일찍이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쪽 일을 해온 사람입니다. 사회복지에 베테랑 일꾼인 셈이지요. 지금 한걸음어린이집, Onestep아동발달지원센터, 해피쿠키 등 여러 개의 복지 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벌써 몇 해째 되는 것 같습니다. 누리복지재단 달력과 함께 직접 만든 카드를 동봉해서 보내옵니다.

 

카드의 글귀도 친근감이 갑니다. 오색 칼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제목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고운 인사말을 넣고 있습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누군가에게 감사함을 전할 수 있음에 몹시도 따뜻해지는 겨울밤입니다. 늘 한결같은 믿음과 변치 않는 지지로 든든함이 되어주신 분께 마음을 전할 수 있어 더욱 행복합니다. 내년 한 해가 건강함과 행복함으로 매일 매일 빛나는 복된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그가 보낸 카드도 기분 좋지만, 누리복지재단 달력은 더 친근감이 갑니다. 달력 표지엔 이런 글귀들이 박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함께 해요 2012", "사회복지법인 누리복지재단". 그리고 여섯 컷의 그림들이 두 줄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 밑의 설명에 "이 달력은 한걸음어린이집과 Onestep아동발달지원센터 아동들의 작품으로 제작하였습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체 인력과 재정으로 자체 식구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제작한 달력이라는 것입니다.

 

나완 무관하더라도 아름다운 것을 억지로 끌어들여 제작한 기존의 달력들과는 생각부터 차별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누리복지재단 세 기관에서 하는 일들을 소개하고 있구요,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에 12달의 날짜와 누리복지재단 행사 일정이 자세하게 병기되어 있습니다. 매달 둘째 주 토요일엔 '더고운봉사단'이라고 기록되어 있군요. 제 마음이 좀 찔렸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 봉사단 단장으로 2년을 섬기다가 내려놓았거든요. 바쁘다는 핑계로….

 

'더고운봉사단'은 김천지역의 장애 비장애 학생들이 함께 만든 봉사단체입니다. 거리 청소, 장애인 노인 복지관 방문 봉사, 행사 도우미 등 다양한 봉사 활동으로 지역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더 많은 장애 비장애 중고등학생들이 참석하고 그 봉사단에 후원자가 많아져서 활동이 왕성해지기를 바라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봉사단체가 전국에서 몇 곳 안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만큼 소중한 봉사단체란 말이 되겠지요.

 

2011년이 열흘 정도 남았습니다. 그 사이 몇 장의 성탄카드 또는 연하장이 더 오겠지요. 우리 사람들은 옛것을 무조건 배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람직한 것은 옛것의 장점은 이어받고 단점을 시정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한자로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 합니다. 인류 생존 방식이기도 하지요. 몇 장의 성탄 카드를 받고, 내년에는 나도 꼭 카드 대열에 동참할 것을 다짐합니다. 모처럼 예스러움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 마음에 대해 상념에 젖어 봅니다.


태그:#성탄카드 , #온고지신, #누리복지재단,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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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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