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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큰 사건들이 많이 터져 잊고 지나갔습니다. 5일은 고 리영희 선생님 1주기였습니다. 리영희 선생이 살아왔던 삶을 짧게 정리하면, 1929년 평북 삭주에서 나서, 1957년부터 1964년까지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1964~1971년 <조선일보> <합동통신> 외신부장을 지내고 1972년부터 한양대 문리대 교수를 지내다 1976년 해직됐습니다. 1980년 3월 복직했다 그해 여름 다시 해직됐지만, 1984년에 다시 복직했습니다. <전환시대 논리> <8억인과의 대화> <우상과 이성> <분단을 넘어서> <自由人, 자유인>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대화> 등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그의 삶을 '반지성에 맞선 치열한 싸움의 역정'이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리 선생 책 중

<自由人, 자유인>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수록된 글은 몇 개를 제외하면 모두, 또 하나의 반문명적 군부독재체제가 사라져간 1987년에서 89년 말 사이에 발표된 것들이다. 이 시기는 여러 해 만에 다시 나에게 글을 발표할 수 있는 지적 사성적 활동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본문 4쪽)

 

대한민국 하늘 아래서는, 1987년 이전까지 사유하는 인간으로서 지적 사상적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끔찍하고, 숨 막히는 공기였습니다. 생각하는 자유와 사유하는 자유를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정권은 이토록 철저히 탄압했습니다.

 

그때 리 선생님은 군부독재가 반문명, 반지성, 반자유 행태를 비판하고, 사람들에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글들을 펜을 통해 끊임없이 발표했습니다. 그러기에 군부독재는 리영희를 '의식화의 교과서'로 찍어 옭아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고, 저항했으며, 글을 통하여 민주주의와 문명사회가 어떻게 가야할지를 제시했고, 자신이 '영어(囹圄)의 몸'이 될지라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구성하는 크고 작은 59편의 글은 허위(虛僞)의 장막을 벗겨서 진실을 드러내려는 역사적 책임감의 결실이다. 철학적으로 현실적으로, 거짓은 인간(성)의 억압이면서 부정(否定)이다. 부정된 인간(성)은 노예다. 자유는 인간존재의 전부며 그 본질이다. 본질을 부정했다거나 박탈당한 상태는 자유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가 아니다. 자유인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라 할 수 있다.(<自由人, 자유인> 본문 7쪽)

 

'박탈당한 상태는 자유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가 아니다'는 말은 섬뜩한 느낌마저 들게합니다. 불과 23~24년 전입니다. 아직 한 세대도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사유하는 인간만이 진정한 인간인데 그것을 박탈당했으니 이 땅에 살았던 그때 우리들은 사람답게 살지 못했던 것이지요. 리영희 선생은 이것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것입니다.

 

추호의 타협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곧 자칭 '지식인'들이 자유가 외쳐지고, 인간이 자유인으로 승화될 때 자유를 팔아 살았던 그들이 던진 화두는 '대화합, 타협, 관용, 용사(容赦)'였다고 할 때 리 선생은 "민주화는 시작조차 되지 않았는데 그들은 마치 민주화가 이루어지거나 한 듯이 정세를 호도하고 있다. 아! 지식인의 기회주의! 풍향계보다 더 재빠른 변신! 지금은 축할 때가 아니라 괴로워해야 할 때다. 지금은 준엄한 공리가 강조돼야 할 때지 얼버무릴 때가 아니다"라고 외쳤습니다.

 

틀리지 않았습니다. 딱 20년만에 등장한 이명박 정권은 반민주·반문명·반평화·반생명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너무 민주화에 취해버렸을 때, 리 선생은 축할 때가 아니라 괴로워할 때라가 울부짖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이 아닌 세상은 죽은 세상입니다. 2011년 대한민국이 얼마나 엄혹한 세상인지 경험하고 있습니다. 여당 국회의원 9급 비서관이 국가기관에 사이버 테러를 감행했습니다.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만약 집권당 개입이 사실이라면 그 충격파는 이루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근간이 뿌리째 흔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4년 동안 이명박 정권이 민주주의를 훼손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민주주의만 죽은 것이 아니라 4대강도 죽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최고 치적(?)인 4대강 보 9개에 물이 샙니다. 특히 낙동강 8개보는 다 물이 샙니다. 죽음이 이렇께 빨리 찾아올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걱정할 것 없다"고 변명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사악한 권력입니다. 리영희 선생은 임헌영 선생과 대담집인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럴수록 야만의 권력은 나에게 '의식화 원흉'이라는 이름의 굴레를 씌워 핍박의 고삐를 조였다. 이 시기, 거짓(허위)로 덮인 깜깜한 한국의 하늘에 희미하나마 한 줄기 진실과 이성의 빛을 비춰주려는 나의 글과 사상이 '야만의 지배'를 물리치려는 선령한 인간들의 눈물겨운 싸움에 힘이 되었는지, 또 이 시대 한국사의 전진에 얼마만큼의 기여를 했을지 아는 알지 못한다. 어쨌든 1990년대에 이르러 나라에 광명이 비치게 되었을 때, 나는 허약한 한 지식인으로서 미미하나마 나의 사회적 책임과 시대적 소임을 다한 것으로 자위했다.(본문 8쪽)

 

리 선생은 "나의 글과 사상이 '야만의 지배'를 물리치려는 선령한 인간들의 눈물겨운 싸움이 힘이 되었는지 겸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사유하는 자유를 향한 그 치열한 열정과 독재권력에 펜으로 저항하면서 몸으로 썼던 글을 통해 사상을 탄압하는 독재권력에 저항하는 법을 배웠고, 실천했습니다.

 

내가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만 하는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한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는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일 수 없는 없다.(<우상과 이성>)

 

진실에 대한 충성심, 이를 표현하기 위한 용기가 바로 기자정신이라고 했던 리 선생 말이 떠오릅니다. 과연 리 선생이 지금 살아계셨더라면 2011년 한 해가 저무는 12월을 어떻게 보고 계실지 궁금합니다. 이 땅에 민주주의가 죽었다고 통곡하실듯 합니다. 하지만 통곡은 하실지라도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정권에도 견디고 저항했던 그 필력으로 또 다시 저항의 글을 통해 우리에게 인간 해방과 진보를 향해 나아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가 참 그리운 날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리영희, #우상과 이성, #민주주의, #사상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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