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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과 여주 무관설'... 여주 문화계 '역사콘텐츠 또 딴 곳에 빼앗기나?' 우려

여주군에 남아있는 '단종'의 자취

어렸을 때 조선시대의 임금님들의 이름을 외우기 위해 흥얼거렸던 '태종태세문단세…'.
조선시대 초기인 1452년 5월 12세에 왕의 자리에 올라 15세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1457년 6월 17세의 소년왕 단종은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그 후 스스로 자결하기에 이르게 된다. 소년왕의 자리를 두고 벌어진 권력투쟁을 통해 숙부가 왕이 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비극과 이야기들은 영화나 TV드라마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졌다.

당시 단종대왕이 영월로 가는 유배길에 여주를 지나서 갔다는 것이 오래 전부터 여주에서는 정설이다. 대신면 상구리 어수정(御水井)은 광나루에서 뱃길로 금사면 이포에 도착하여 천서리(파사성 앞)→보통리(위안동)→무촌리(거치다리, 원통이)→옥촌리→상구리를 지나던 소년왕의 한 여름의 갈증을 달래준 우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의 지명에도 남아있는 대신면 보통리의 '위안동'은 어린 단종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 동네사람들이 위로하였다는 곳이고, 대신면 무촌리의 '거치다리'는 단종이 거쳐 지나갔다는 곳이며, '원통이'는 단종의 행차를 백성들이 원통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단종'은 여주를 지나가지 않았다

단종대왕이 죽음을 맞은 554년이 지난 지금 '왜 여주군민은 단종의 만나야 하는가'
여주문화원 조성문 국장에 따르면 지난 6월 18일자 중앙일보에 정진홍 논설위원의 '단종에 꽂혔다!'라는 칼럼이 실렸으며, 그 내용인 즉 단종이 영월로 유배를 갈 때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원주 흥원창까지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주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와 현재까지 남아있는 지명들을 들어 여주군에서는 '이포나루→상구리(어수정)→고달사지→섬강→흥원창'으로 이어지는 노정을 제시하며 의문을 표시했지만, 여러 가지 논리적인 이유를 들어 자신의 추론을 번복하지 않았다는 것.

조성문 국장은 '1457년 6월 22일 한양을 떠나 28일 영월 청령포에 도착하는 단종의 유배 경로를 정확하게 기록한 문헌은 없다'며 '그러나 단종의 유배길 중 여주구간의 경로는 충분히 추정할 논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조 국장은 '어찌되었든 정확한 근거에 터잡지 않은 주장은 위험하다'며 '나의 추정이나 정진홍 위원의 답변 또한 정확한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문서에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아도 어르신들을 통해 전해들은 집안의 내력이라든가 지명 속에 남아있는 유래와 곳곳에서 살아 숨쉬는 지역의 전설이 전혀 터무니없는 가짜 이야기가 아닐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을 읽은 여주 문화인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사실로 알고 있던 단종대왕의 이야기가 모두 가짜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여주문화원이 마련한 것이 '단종대왕 유배길 답사'라는 프로그램이다.

'단종대왕'의 유배길을 따라가 보자

이달 19일(토)과 26일(토) 두 차례에 진행되는 '단종대왕 유배길 답사'는 여주문화원이 주관하고 여주군이 후원하는 문화 프로그램이다. 또 다시 과거 고려시대 서희 선생의 사례처럼 수백 년을 여주 땅에 모시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학술연구나 문화활동이 없어 인근 이천시에서 문화역사교육 프로그램으로 성장시키는 것을 바라만 봐야하는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단종대왕의 유배길'은 여주군과 인접한 원주시가 함께 자료를 발굴하고, 스토리텔링을 개발하여 문화콘텐츠로 성장시킬 충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소년왕의 한 여름 갈증을 달래 준 대신면 상구리 '소년왕의 우물' 어수정(御水井), 단종대왕이 강봉되어 받은 이름인 노산군(魯山君)의 '노(魯)'에서 따왔을 법한 '노림(魯林)'과 단종대왕이 쉬어갔다는 넓은 바위와 느티나무가 단강초등학교 교정은 살아있는 훌륭한 학습과 문화콘텐츠가 될 것이다.

여주문화원의 '단종대왕 유배길 답사'는 오전 9시 여주군민회관 앞을 출발하여 이포보를 지나 대신면 보통리→무촌리→옥천리와 북내면 상구리→서원리, 강천면 삿갓봉→부평리를 걸으며 단종의 생애와 지나가신 길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된다.

명성황후 생가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후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노림리→흥원창→단강리→단강초등학교를 지난 오후 4시경 여주군민회관 도착에 도착하여 해산하는 여정이다. 이 가을 554년전 소년왕이 지나간 유배길을 따라 걸으며,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진지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단종'의 생애를 다시 생각해 보자

이번 여주문화원의 '단종대왕 유배길 답사' 프로그램은 개인적으로 '시간이 짧다'고 '인생이 짧다'고 하고 싶은 일을 못한다고 칭얼대는 후배녀석에게 꼭 권하고 싶다. 또 이런 마음을 가진 독자들도 꼭 신청하길 당부한다.

단종대왕의 생애가 짧았으니 뭐를 했겠냐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단종대왕은 짧은 재위기간중에도 1453년 양성지(梁誠之)에게 '조선도도(朝鮮都圖)', '팔도각도(八道各圖)'를 편찬하게 했다. 또 이듬해에는 '황극치평도(皇極治平圖)' 간행하게 했으며, 1454년 '고려사'를 인쇄·반포했으며, 그해 12월 각 도에 둔전(屯田)을 설치하도록 명령했다.

한편, 단종대왕은 죽은 지 241년이 지난 1698년(숙종24)에 이르러서야 복위되어 시호를 공의온문순정안장경순돈효대왕(恭懿溫文純定安莊景順敦孝大王), 묘호를 단종으로 추증하고, 능호를 장릉(莊陵)이라 하였으니, 그 생애가 참으로 애처로운 소년왕 이다.

※문의 ☎031-883-3450 여주문화원 ☎010-4024-3563 조성문 사무국장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남한강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여주군#단종#여주문화원#어수정#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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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에서 지역신문 일을 하는 시골기자 입니다. 지역의 사람과 역사, 문화에 대해 탐구하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이런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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