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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결혼식에 다녀왔는데 혼이 반은 나간 것 같다. 잠시 산만한 기운을 가라앉히느라 근처의 산사마당에 가서 앉아 추색을 감상하고 돌담의 기와위에도 자갈 몇 개를 올리고, 오래된 탑에도 두 손모아 합장을 하고 왔다.

 

얼마 전 서울의 명동과 강남에서 각각 치러진 조카 들의 결혼식에서는 정신이 없었다. 결혼식은 주례가 있는 식장과 별개로 하객이 음식을 먹는 곳은 모두 북새통이었다. 30분만에 식장의 신랑, 신부가 바뀌는 장소도 있었고, 1시간 만에 바뀌는 곳도 있었지만 음식먹는 장소는 그냥 풀로 열어놓고 그 날 결혼식 하는 하객들 모두 자유롭게 뷔페형식으로 먹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들이 앉는 자리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고,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정겨운 분위기는 아예 기대할 수가 없었다. 모두들 접시를 들고 줄을 서서 음식을 담아서 오거나, 아니면 떨어진 음식으로 해서 다른 음식을 가지러 돌아다니기 바빴다. 내 옆에 있는 사람과 뒤에 사람과 지나가는 사람들도 누구인지는 모르고, 의자 위에 핸드백도 은근히 신경쓰인다. 신랑신부가  음식먹는 곳에 인사하러 오는 풍경은 아예 기대할 수 없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사는 소도시인 이곳은 아직은 신랑 신부측이 모두 섞여 먹기는 하지만 그래도 결혼식 전후의 그 시간대는 우리 신랑 신부측만 먹기 때문에 사돈댁들과 눈인사도 하고 음식을 먹으면서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의 친지와도 인사를 했다. 신부도  드레스로 갈아입고 파인 가슴을 손으로 살며시 가리며 신랑과 함께 하객들에게 인사다니는 모습도 비록 북새통 결혼식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아는 사람의 결혼식이란 느낌이 들어서 덩달아 좋았다.

 

그러나 오늘 다녀온 결혼식에서 소도시에서 느끼던 이러한 정취도 거의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서울과 같은 그러한 북새통 분위기가 연출되었던 것이다. 결혼시즌이니깐 주차하기 어려운 인산인해는 당연한 것이다. 단지 아쉬운 것이 바로 음식을 먹는 그 장소에서 그 날 결혼식을 올리는 모든 하객들이 뒤섞여 버린 것이다.

 

몇 백명이 참석하는 아이의 돌잔치에서 서로 다른 잔치를 치르고 가운데 중앙홀에서 뷔페식으로 음식을 먹는 것은 익숙했다. 그러나 몇 천명이 그렇게 뒤섞여 밥을 먹는 현장은 북새통을 지나 아수라장 같았다. 아직 채 먹지 않았는데도 우리 자리에 앉으려고 서성이는 하객들도 있었고, 한창 먹고 있는데도 음식물 수레를 밀면서 쉴 새없이 수거해가는 그러한 풍경도 음식맛을 떨어뜨렸다. 

 

처음에 문 열때 음식맛이 좋고 격조있는 분위기로 소문난 이 컨벤션센터에서 서울도심지와 같은 이러한 아수라장 접대문화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참 애석하다. 그리고 이러한 아수라장 접대 풍경이 더 이상 확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직원의 결혼식에 참석한 우리 관장님이 점심을 안 먹고 그냥 가신다고 해서 우리는 뒤에서

'관장님은 까도남인가봐!' 하고 식성이 까다로운 까칠한 도시 남자라고 농담도 했지만, 이미 이러한 아수라장 분위기를 겪어봐서 그렇게 결혼식만 끝까지 지켜보고 먹는 것은 조용한 관사에서 조촐한 칼국수나 보리밥으로 드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혼식을 마치고 나온 주차장 양쪽에 인근 사람들이 가꾼 배추와 파와 무우밭과 진한 향내가 나는 가을국화가 이곳은 전원이 보이는 소도시라는 것을 알려주는데, 결혼식이 치러지는 건물 안은 서울도심지와 똑같은 장면이, 마치 결혼식의 프랜차이즈 같은 그러한 장면들이 연출되는 것이 아쉽다.

 

고운 색깔로 물들어 가는 이 가을, 또는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의 그러한 마음을 닮은 개성있는 결혼식이 많아지면 좋겠다. 결혼식 자리가 오랜만에 만나는 친지들이 정담을 나누는 자리가 되는 그런 우리만의 소박한 잔치문화를 되살려가면 좋겠다.


#결혼식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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