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E65 해변도로를 따라가는 길

아드리아해의 바닷가 마을
 아드리아해의 바닷가 마을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두브로브니크에서 스플리트로 가는 길은 아드리아 해안을 따라 이어진다. 거리는 230㎞로 4시간 30분쯤 소요될 예정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네움까지는 아침에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스톤을 지나면서 라구사 공화국 때 쌓은 산성을 볼 수 있다. 오푸젠에서 다시 네레트바강을 만나고 강변에 정말 그림 같은 집들을 볼 수 있다. 강을 건너 플로체에 이르자 다시 바다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라다치로부터 스플리트까지는 해안도로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도로 오른쪽으로는 석회암으로 이뤄진 회백색의 바위산이, 왼쪽으로는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중간 중간에 자리 잡은 빨간 지붕의 주택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광경을 보지 않고는 아드리아해의 진수를 봤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곳에서는 해안을 끼고, 어떤 곳에서는 절벽처럼 높은 곳으로 길이 나 있다.

대부분의 마을은 절벽과 해안을 끼고 발달해 있다. 옛날에는 정말 고기잡이나 하고 무역이나 해서 살았을 테고, 요즘은 관광으로나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또 네움에서 스플리트에 이르는 해안 쪽으로는 섬들이 있어선지 작은 마을들이 많은 편이다. 대표적인 섬으로는 흐바르 섬과 코르출라 섬이 있다. 흐바르 섬의 옛 마을인 스타리그라드(Starigrad)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과거와 현재

디아클레티아누스 궁전 성벽과 가로수길의 종려나무
 디아클레티아누스 궁전 성벽과 가로수길의 종려나무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오후 5시 50분쯤 우리는 스플리트 항구에 도착한다. 바닷가로 종려나무 가로수길(Riva)이 이어지고 그 안쪽으로 고색창연한 건물이 나타난다. 이 건물이 그 유명한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이다. 이 궁전은 기원후 295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명령으로 짓기 시작해 305년 28,900㎡의 규모로 완성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이곳에 궁전을 짓게 한 것은, 첫째 이곳이 자신의 고향이고 둘째 은퇴 후 이곳에서 여생을 보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이곳에서 311년까지 살았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을 지으면서 유명해진 스플리트의 그리스 식 지명은 스팔라토스였다. 이것이 로마시대 스팔라툼으로 바뀌었고, 중세 때는 스팔라트로 또는 스팔라토가 되었다. 그리고 이 지역을 슬라브족이 점령하면서 이름이 스플리에트, 스플리트로 정착되었다. 궁전은 황제의 사후 빈 채로 방치되어 있다가 7세기 경부터 주민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바다와 연한 좋은 입지 때문에 그 후 이곳은 사업과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한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궁전 안에는 호텔,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 등 상업시설들이 가득하다.

남북으로 이어지는 디아클레시아노바 길 좌우의 기념품점
 남북으로 이어지는 디아클레시아노바 길 좌우의 기념품점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궁전으로 들어가면 남북으로 디아클레시아노바라는 길이 이어진다. 길 좌우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하고, 내부가 조금은 어두운 편이다. 우리는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걸어간다. 이 길의 중간에 계단이 있어 이것을 올라가면, 외부로 나오면서 조금은 넓은 광장이 나타난다. 이 광장이 이 궁전의 중심지다. 동쪽으로 페리 스타일로 알려진 로마식 회랑이 나타나고 그 안으로 대성당과 우뚝한 종탑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수리를 위해 비개를 설치했는데, 원래의 회랑과 문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놓았다.

대성당은 스플리트의 수호성인인 성 돔니우스(크로아티아어: 두에)의 이름을 따라 성 돔니우스 성당으로 불린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해서 성당은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되었고, 종탑이 성 돔니우스에게 헌정되었다. 성인 돔니우스는 3세기 살로나(Salona: 로마시대 달마티아 지역의 수도)의 주교였으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를 받아 순교했다.

종탑과 대성당
 종탑과 대성당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광장 북쪽으로 이어지는 길 끝에는 북문인 골든게이트(Golden Gate)가 있다. 그리고 광장 끝에서 동서로 큰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이 크레쉬미로바로 양 끝에 동문과 서문이 있다. 동쪽 끝에는 옛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는 동문 실버게이트(Silver Gate)가 있다. 서쪽 끝에는 아이언게이트(Iron Gate)라 불리는 서문이 있고, 그 바깥에는 중심 광장이 있다. 이 광장이 현재 스플리트 구시가지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다.

궁전 내부 둘러보기

우리는 동문을 조금 멀리서 바라보고 궁전 내부를 보기 위해 계단을 통해 다시 1층으로 내려간다. 이처럼 계단이 생긴 것은 바다쪽으로 이어진 경사 때문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은 동서를 잇는 큰길과 남북을 잇는 큰길을 통해 네 부분으로 나눠진다. 궁전의 북쪽 지역은 궁전을 지키는 병사들의 병영으로 사용되었고, 남쪽 지역은 황제를 위한 거주지로 사용되었다. 남쪽 지역은 다시 동서로 나뉘는데, 동쪽은 집무공간과 영묘로, 서쪽은 주거 및 사원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원래 모습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원래 모습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궁전은 동서보다는 남북이 조금 더 긴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바다에 면한 남쪽 벽이 181.65m, 북쪽 벽이 174.74m, 동쪽과 서쪽 벽이 215m 정도다. 궁전의 높이는 10m가 넘으며, 성벽의 두께도  2.75m에 이른다. 궁전이 처음 만들어질 때 이곳에서 가장 높은 것은 영묘로 높이가 24m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후 영묘가 성당으로 바뀌고 종탑이 생겼으며, 현재는 60m의 종탑이 가장 높은 구조물이 되었다. 이중 우리가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곳은 궁전 남쪽의 황제 거주지다.

우리는 먼저 궁전 남서쪽에 있는 황제의 주거 및 생활공간을 찾아간다. 이곳은 다시 남쪽의 주거공간과 북쪽의 사원으로 나눠진다. 남쪽의 주거 및 생활공간에서 우리는 우물을 만난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치형 기둥이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는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또 벽으로 차단되고 작은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방도 나타난다. 이들 공간에는 당시 사용하던 석재와 조각품, 금세공품 그리고 나무 기둥이 전시되어 있다.

디아클레티아누스 황제
 디아클레티아누스 황제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얼굴을 조각한 원형의 금세공품이다. 얼굴의 오른쪽 모습이 선명하고 가장자리에는 DIOCLETIANUS AUGUSTUS라는 글자가 원형으로 새겨져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기둥 위에 세우는 대리석 두주가 눈에 띈다. 이오니아 양식을 변형한 당초문 형태가 새겨져 있어, 단순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는 또한 궁전 건축에 쓰였던 서까래 같은 기둥이 전시되어 있다.

이들 외에 인상적인 것은 깨어진 스핑크스와 석관이다. 스핑크스는 원래 사원이나 영묘 앞에 세워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잡귀를 막는 역할을 했다. 그것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전통에 따라 로마에서도 사원 앞에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가져다 세워놓곤 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의 영묘 앞에도 기원전 1500년경 투트모스왕 때 만든 두 개의 스핑크스가 있었다고 한다.

스핑크스
 스핑크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영묘 앞 페리 양식 벽체 위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최근 종탑에 벼락이 떨어지면서 벽체의 일부가 무너졌고, 그게 스핑크스에 떨어져 머리 부분이 깨지고 말았다. 그래서 깨진 스핑크스의 몸통 부분만이 이곳 방 한쪽에 전시되어 있다. 스핑크스는 검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같은 공간에 돌로 만든 관이 하나 전시되어 있는데, 새겨진 글자가 아주 선명하다. 그 외에 대리석으로 만든 건축 부재들도 보인다. 이들 모두 궁전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을 것이나 그들의 히스토리를 알 수 없어 유감이다.

궁전의 동남쪽 바다를 면한 부분은 은퇴한 황제의 집무실로 쓰였으나 현재는 민속박물관과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박물관을 볼 시간은 없어 남북으로 이어진 통로에서 기념품들을 살펴본다. 이곳의 기념품 가게 주인들은 기념품을 팔기 위해 그렇게 노력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진열대 안에 앉아 그냥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계단을 통해 다시 대성당과 종탑 앞 광장으로 올라간다.

여자 높이뛰기 선수 블라쉬치 이야기

여자 높이뛰기 시상식 장면: 왼쪽 은메달을 입에 문 키 큰 선수가 스플리트 출신의 블랑카 블라쉬치다.
 여자 높이뛰기 시상식 장면: 왼쪽 은메달을 입에 문 키 큰 선수가 스플리트 출신의 블랑카 블라쉬치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지난 8월 27일부터 9월 4일까지 대구에서 열린 세계 육상선수권대회에서 주목받은 크로아티아 선수가 있었다. 그녀는 높이뛰기 선수인 블랑카 블라쉬치다. 여자 높이뛰기 결승경기가 열린 것은 9월 3일(토) 오후 7시다. 바의 높이가 2m가 넘으면서 마지막으로 세 사람이 남았다. 러시아의 안나 치체로바, 크로아티아의 블랑카 블라쉬치, 이탈리아의 안토니에타 디 마르티노.

여기서 가장 주목받은 선수가 블랑카 블라쉬치였다. 그것은 그녀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고,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인데다, 2010년 바르셀로나 유럽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이기 때문이다. 또 그녀는 2.08m라는 최고기록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는 2.03m를 2차시기에 넘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러시아의 안나 치체로바 역시 2.03m를 넘었지만, 1차시기에 넘었기 때문이다.

블랑카 블라쉬치가 크로아티아의 스플리트 출신이다. 그녀는 1983년 11월 8일 스플리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크로아티아 10종 경기 대표선수였고, 어머니는 농구와 스키 크로스 컨트리 등에 능한 운동선수였다. 블랑카라는 이름은 아버지 요쉬코가 1983년 카사블랑카에서 열린 지중해 연안 국가대항 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것을 기념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그녀는 처음 육상 트랙선수로 활동하다가 높이뛰기에 천부적인 소질을 발견, 높이뛰기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그녀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특유의 춤 세리모니로 관중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태그:#스플리트,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대성당, #스핑크스, #블라쉬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