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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원장과 박원순 상임이사(이하 직함 생략)의 동시 출마, 염려할 일 아니라고 봅니다. 한나라당에게 '어부지리'를 갖다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 충분히 할 만 합니다. 기존 정치공학적 셈법으로 따졌을 때는, 타당합니다. 그러나, 새 판이 열린다는 점에서, 일단 우려를 접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앞날, 아니 두 사람의 정치참여로 인한 우리들의 앞날은 과연 좋기만 한 건가? 결론적으로, 좋습니다. 단,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두 사람이 "꼭 나여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린다면 말입니다.

 

두 사람의 동시출마를 전제로, 그들의 정치권 진입이 갖는 의미와 효과를 살펴보지요.

 

양인이 각각 갖고 있는 상징성과 대중흡인력, 기존 정치틀을 일거에 뒤흔들(고 있는) 파괴력을 감안하면, 반보수진영의 분열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정치공간의 확보 계기가 될 것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입니다.

 

두 사람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동시 출마한다면, 그들은 기존 제도 정치권으로 '편입'되는 게 아니라, 제3의 정치공간을 열어젖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존 선거구도-투표행위와는 전혀 다른,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장이 열릴 것 입니다. 그러므로 기존의 정치공학적 셈법은 무의미합니다. 새 판에는 새로운 셈법이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두 사람은, 그들의 지나온 20~30년의 삶을 통해,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공적 헌신성과 합리성, 당위성을 대중으로부터 이미 승인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기존 정치인들과는 '유전자' 자체가 다릅니다.

 

국회의원 배지나 지자체장 자리를 '공인받은 토호(土豪) 허가증' 정도로 여기고, 정치 신인들을 '오야붕-꼬붕' 정도로 인식하는 기성 정치세력들의 현재 위세와 권력은, 봄기운에 눈 녹듯, 급속히 퇴조할 것입니다. 새로운 관점과 가치가 출현하게 될 것이란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반드시 같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승수효과가 극대화됩니다.

 

각종 선거에서 강력한 양대 축인 20~40대에서 차지하는 두 사람의 영향력과 신망을 감안하면, 새로운 정치공간이 열리는 것에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입니다. 장강(長江)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는 정도가 아니라, 1급수 신선 쓰나미가 거세게 몰아닥치는 것입니다.

 

지금은 인기가 좀 시들해졌지만, 씨름에 한번 비유해볼까요?
새로운 차원의 기술과 내공을 갖춘 두 선수가 백두장사급(서울시장)에 홀연히 등장했습니다. 다른 한켠에는,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짜증나는 샅바싸움에 되치기나 잡치기 정도만 몸에 익은 기존 천하장사급(대선 후보군) 선수들이 있습니다. 천하장사전(대선)에 앞서 열리는 백두장사전(서울시장 보선)에서 두 걸출한 선수의 선전을 경험한 관중들은 더 이상 천하장사군의 구태의연한 경기에 절대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족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야유와 함께 선수진 교체를 요구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야권후보단일화를 통한 1:1구도'나, '비 오세훈표 후보로 박근혜의 선거지원 유도' 식의 기존 한나라-민주 프레임과는 질적으로 다른 양상이 펼쳐질 것이란 얘기이지요. 그 첫 단추가 바로 대선을 14개월 앞두고 이번 서울시장 보선에서 꿰지는 것이겠고요.

 

기존 정치인들과는 정치적 유전자가 다른 두 후보의 동시출마는 그 자체로 기존 정치권을 일거에 약화시키는 쇼크효과를 불러올 것입니다. 길게 보아 이들의 출마 및 현실정치 참여는 10.26 서울시장 선거뿐 아니라 앞으로의 정치판에 거대한 변혁의 소용돌이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그러면, 그 신호탄의 앞날은 밝은가? 당연히 변수가 많습니다.
두 사람에게는 공히 주어진 숙제가 있습니다. 시대적 요구라는 엄중한 역사적 소명 앞에 중대선택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양인의 동시출마가, 결과적으로 '한나라당 어부지리'를 낳는다면, 합리와 상식을 희구하는 대중에게 씻을 수 없는 배반일 것입니다.

 

두 사람의 정치참여로 인한 변화의 태풍이 비단 이번 서울시장 보선에만 국한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만, 우선 목전의 서울시장 보선을 따져보지요. 서울유권자의 30% 가량이 '무당파'라는 통계는 의미심장한 대목입니다. 투표불참자나 무관심층이 아닌 무당파가 30%...

 

오세훈 사퇴 이후 보수세력의 결집 조짐이 보이고 있는 데다, 10.26까지 두 달이 채 남지 않아 정치적 이합집산이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몇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한나라-민주-진보정당-안철수-박원순 구도>입니다. 5파전입니다. 한나라 어부지리 가능성 대단히 높습니다.
둘째, <한나라-기존 야당 단일후보-안철수-박원순 구도>입니다. 첫번째 시나리오와 비슷한 결과가 예측됩니다.
셋째, <한나라-두 사람 중 한 사람 범 야권 단일후보-나머지 한 사람 독자출마 구도>입니다. 변화희구층이 보수파를 고립시키는 형국으로, 반보수진영에는 희망적 시나리오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범 야권 단일후보로 옹립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망을 유보하겠습니다.
넷째, <한나라-기존 야권 단일후보-두 사람 중 후보단일화 구도>입니다. 선거전의 양상과 형국은 세번째 시나리오와 같겠지만, 실현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선거의 목표는, 두 말 할 필요 없이 승리입니다. 당선해서 집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어떠한 시나리오이건 간에, 이른바 변화희구층의 목표달성이 쉬워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동시출마가 우려할 일이 아니냐"는 반문이 제기되겠지요. 맞습니다.

 

제가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은, 두 사람의 동시출마가 가져올 질적 변화의 양상입니다. 두 사람의 등장은 투표행위에 많은 변화를 초래할 것입니다. 기존 민주-빈민주, 진보-보수의 이분법은 상당 부분 퇴조가 불가피할 것입니다. 그 대신, 합리와 상식, 양심, 공적 헌신성 등의 가치와 개념이 기존의 가치들을 대체할 것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정치공간과 가치가 확장되면, 이른바 한나라로 대변되는 보수진영의 획득 가능한 표는 20%대 초반(22% 선)에 묶일 것으로 전망합니다. 아직 우리의 보수세력은 스스로 변화를 주도할 내적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대권을 놓고 전국적으로 맞붙는 대통령선거와 이번 서울시장 보선의 예상득표율 셈법은 다릅니다).

 

박원순의 공적 헌신성이나 안철수의 겸손과 성공신화-세속적 의미의 성공이 아닌 사회적 성취-는 '제2의 노무현 신화'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고 보여집니다. 2002년의 노무현 신화와는 '버전'을 달리한 신화가 되겠지요. 무엇보다도, 그 두 사람에게는,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드는 '힘'이 있지 않습니까?

 

그럼, 두 사람의 앞날은, 아니 두 사람의 출마를 계기로 펼쳐질 우리의 앞날은 밝은가?
양인의 전혀 다른 유전적 형질이 기존 정치판의 관행이나 악습에 젖지 않도록 '관리'해나가는 것이 관건입니다.

 

두 사람 간 후보단일화나 역할분담 등의 얘기가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달도 채 안 남은 촉박한 일정을 감안할 때, 미리 단일화에 연연해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두 분이 선거캠페인 과정에서 새 기운을 충분히 진작시켜 구태를 뒤흔드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선거전 분위기를 바꿔놓는 데는 성공했으나, 표 분산으로 인한 보수세력의 당선으로 귀결되어서야 두 사람이 진흙탕에 몸을 던진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일이지요. 터놓고 말해, 두 사람이 1,2위를 하고, 나머지 기존 정치세력이 그들 뒤에 있다면, 꽃놀이 패입니다.

 

그러나, 기존 여야 세력과 두 사람 중 앞선 사람 사이의 판세가 박빙이라면,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이 기성 정치세력을 이길 수 있는 쪽으로 복무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건 그 한 사람의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물결의 승리로 기록될 것입니다.

 

여론조사 공표금지시한을 3~4일 남겨놓은 상황에서,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당선을 위해 아름답게 퇴장하는 문제는, 그동안 두 사람이 보여준 행적으로 미뤄보건대, 저는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본인의 지지층을 다른 한 쪽에 최대한 이탈 없이 이관시키는 데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이전 체제로 돌아가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선 가능한 사람을 위해 나머지 한 사람이 아름답게 중도사퇴함으로써, 70년 묵은 구각을 '함께' 해체시키는 것이 두 사람 동시출마의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은, 그런 의미로, 일단은 동시출마해야 합니다. 두 분이 함께 나서 기존 구도를 깨트리는 게 중요합니다. 두 분 중 누가 되어도 최소한 지금보다는 나을 것임을 확신하는 사람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기에, 두 사람의 동시출마를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러고도 문제는 일부 남습니다. 통합된 진보정당(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스탠스입니다. 통합 진보정당이 이번 서울시장 보선 국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는, 우리 사회의 변혁 희구세력에게 중장기적으로 던져진 숙제입니다. 그러나 결전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유권자들은 무섭습니다. 매번의 선거가 끝날 때 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내린 결정에 스스로들 놀라곤 했습니다. 그게 지난 20여 년간 우리가 이뤄낸 성과이자, 발전입니다.

안철수와 박원순. 우리 시대의 상징이자 표상인 두 사람이, 동시에, 몸에 흙탕 튈 것을 각오하고, 현실정치라는 진흙구덩이 속으로 뛰어든 점에 경의를 표합니다.


태그:#안철수, #박원순, #동시출마, #천하장사능가하는백두장사, #한나라어부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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