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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가 전체회의를 열어 박경신 고려대 교수가 개인 블로그에 올린 두 건의 게시물을 심의했다. 방통심의위는 제재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으나, 여당 추천 위원들 6명은 박 교수에 대한 '경고 성명서'를 채택했다고 한다.

 

방통심의위 야당 추천 위원인 박 교수는 그동안 방통심의위의 인터넷 심의 행태에 대해 누구보다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온 인물이다. 박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방통심의위원회 일기' 코너를 만들어 방통심의위가 '자의적 검열'을 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를 해왔다.

 

지난달 20일 박 교수는 방통심의위 전체회의가 '음란물'로 판정해 삭제조치 한 남성의 성기 사진 등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면서 과연 이런 게시물들이 "사회질서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고, 누구의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것"인지를 반문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논란이 일자 27일에는 해당 게시물들을 내리거나 블라인드 처리하고, 여성의 성기를 그린 귀스타브 쿠르베의 명화 <세상의 기원>을 올려 방통심의위의 심의 행태에 대한 문제제기를 이어갔다. 

 

논란이 된 게시물들이 사회 질서를 현저히 해치거나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섣불리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박 교수의 문제 제기 방식에 대해서도 찬반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를 놓고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따져봐야 할 핵심은 '현행 방통심의위 심의의 타당성'이라는 사실이다. 많은 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은 방통심의위의 심의 행태가 사실상 '검열'이나 다름없고, 그 기준 또한 '자의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심의가 아니라 검열을 일삼는 방통심의위의 월권 

 

법원은 방통심의위의 심의를 '행정심의'로 판단한다. 즉, 방통심의위는 시정요구와 같은 행정처분을 내리는 기관이지 게시물을 마음대로 삭제하거나 법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그동안 방통심의위는 최소한의 절차도 지키지 않으면서 월권을 행사해왔다. 행정처분의 대상자들에게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게시물들을 멋대로 삭제해온 것이다.

 

'어떤 게시물은 올릴 수 있고 어떤 게시물은 올릴 수 없는지'를 방통심의위가 좌우하는 사실상의 검열 상황이 벌어지고 있으니 '행정기관의 판단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이 훼손된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애매한 심의 기준도 비판의 대상이다. 예를 들어 지난 5월 방통심의위는 '2MB18noma'라는 트위터 계정을 차단했다. 욕설을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게시물이 아닌 트위터 계정도 방통심의위의 심의 대상인지,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포털사이트 아이디 중에는 이보다 더한 욕설을 연상시키는 것들도 많은데 왜 트위터 계정만 문제가 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성표현물에 대한 심의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방통심의위는 병원 사이트에 게재된 성기 사진에 대해서는 병원 측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여 삭제조치 하지 않았다. '의학적 정보이고 사진의 폭이 좁다'는 게 근거였다고 한다. 같은 사진을 병원 사이트가 아닌 개인 블로그 등에 올렸다면 방통심의위가 어떤 판단을 했을지 궁금하다.

 

다른 한편으로 성표현물의 심의는 '아동 포르노물'같이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형법상 범죄행위냐, 아니면 청소년에게는 금지하고 있지만 성인들에게는 허용하는 '청소년 유해매체'냐를 구분해야 한다. '청소년 유해매체'의 경우에는 청소년들에게 접근을 차단시키는 조치를 취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방통심의위는 '청소년 유해매체물'에도 삭제조치를 남발하고 있다.

 

국제적·법적으로도 문제 되는 방통심의위, 왜 있어야 하나

 

방통심의위의 이 같은 심의 행태는 학계와 시민사회의 비판만 불러온 것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방통심의위가 일방적으로 게시글을 삭제하는 것은 "사실상 검열"이라고 지적하고 '인터넷 심의를 민간 자율기구에 이양하라'고 권고했다. 프랭크 라뤼 UN 의사표현의자유 보좌관도 '정부기구의 자의적이고 과도한 규제로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을 소지가 있다'며 방통심의위의 폐지를 권고했다.

 

지난 2월 법원에서도 방통심의위의 인터넷 심의 근거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4호'의 '건전한 통신윤리'라는 개념이 불명확해 명확성과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상황이다.

 

이처럼 제도권, 법조계, 국제사회에서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방통심의위의 인터넷 심의는 더 이상 그대로 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방통심의위의 심의 문제는 인터넷심의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방통심의위는 방송심의에 있어서도 '정권 비판적인 프로그램 벌주기'로 방송통제의 첨병 노릇을 해왔다. 이미 방통위는 존재할 이유가 없는 기관이 된 지 오래다.

 

우리는 방통심의위의 존폐와 합리적인 심의제도의 구축을 공론의 장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다. 아울러 이 정권 들어서 훼손될 때로 훼손된 '표현의 자유'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회복시켜 나갈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방통심의위원의 '도발적' 문제 제기를 소모적 논란이 아닌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심의제도 개선의 기회로 삼는 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오늘 박 교수에 대한 '경고 성명서'를 채택한 방통심의위원들에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박 교수가 "위원회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심의위원들의 품위에 많은 손상을 가져왔다"며 "향후 동일하거나 유사한 사안이 발생할 경우 단호히 조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당 추천위원들은 방통심의위를 'MB정권 청부심의' 기관으로 전락시켜 방송을 통제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 장본인들로, 언론계와 시민사회로부터 퇴진 요구를 받아온 사람들이다. 적어도 이들에게는 박 교수를 '명예', '품위' 운운하며 비난할 자격이 없다. 여당 추천위원들은 박 교수를 비난하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되돌아보라. 지켜보는 우리가 낯 뜨겁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언련 홈페이지(www.ccdm.or.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박경신, #방송통신심의위, #검열, #기본권, #청부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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