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와 나라 사이, 나라 쪽에 있는 이카루가(斑鳩)에 호류지(法隆寺)가 있습니다. 호류지절은 소설가 정한숙 선생의 '금당벽화'(1955년 7월 「사상계」 24호에 발표한 단편 소설) 로 유명한 절입니다. 소설 금당벽화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금당벽화를 그린 고구려 사람 담징(曇徵, 579 - 631년)은 승려이자 화가로 일본에 종이와 먹의 제조법을 일본에 전파(610)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호류지는 1993년 12월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호류지는 서원과 동원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모두 18만7000 ㎡(5만6500 평)로 상당히 넓습니다.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600m 정도가 됩니다.
호류지는 607년 건립되어 670년 4월 30일 불이 나기도 했지만 다시 복원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호류지의 오랜 역사가 말해주는 것처럼 호류지에는 많은 국보급 유물과 건축물들이 남아있습니다. 호류지에 남아있는 많은 유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백제관음상이 아닌가 합니다. 녹나무로 만들어진 이 불상은 제목에서 말해 주는 것처럼 백제와 깊은 관련이 있는 유물입니다. 녹나무는 한반도 남부나 아열대 지방에서 나는 상록 키큰 나무로 일본에도 많이 자라고 있습니다. 녹나무는 독특한 향이 있어서 벌레가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귀한 나무입니다.
백제관음상은 왼손에 물병을 가볍게 들고 서있는데, 8등신의 멋진 몸매입니다.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허리로 이어지고 가볍게 몸을 휘감고 있는 천의는 걸친 듯, 벗은 듯 날아가려는 관음을 붙잡아 두고 있습니다. 관음은 관세음보살의 준말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왕생의 길로 인도하는 보살입니다.
백제관음상은 연꽃 열매 위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고, 머리 뒤에는 광배가 있습니다. 불상 키는 211 cm입니다. 머리에 쓴 보관이나 몇 군데 사용된 청동 투조(속이 보이도록 뚫어서 새기는 기법) 장식은 오래 전부터 백제 장식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8년, 프랑스 시라크 대통령의 요구를 백제 관음이 처음으로 해외 전시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프랑스 사람들은 백제관음상을 일본의 비너스라고 격찬하면서 한 달간 30만 명 이상이 관람을 한 적이 있습니다.
호류지에는 백제관음상을 비롯하여 많은 보물급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금당은 1949 년 불이 나서 벽화 역시 소실되었습니다. 그러나 불이 나기 전 모사해 둔 그림들을 이용하여 다시 재연해 두었습니다. 금당 네 벽에는 벽화가 있고, 한 가운데는 약사여래좌상이 있습니다. 이 약사여래좌상이나 백제관음상이나 모두 광배 모양은 보주형, 즉 여의주형으로 서산마애 삼존상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백제 지역에서 일반적인 광배입니다.
호류지 절에 가면 백제 문화의 정수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문화재를 우리 땅이 아닌 일본에서 보아야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우리 땅에도 많은 보물들을 남겨두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제대로 보존하지 못해서 이미 없어져 버렸습니다. 일본에서라도 볼 수 있는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참고 사이트
서정록, 백제금동향로, 학고재, 2001.
걸작 불상 사진,
http://kajipon.sakura.ne.jp/kt/butuzou2.htm, 2011.8.1
호류지,
http://www.horyuji.or.jp/ 2011.8.1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류코쿠(Ryukoku, 龍谷) 대학에서 주로 한국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