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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이 6월부터 새롭게 시작합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맛집, 관광지 등은 물론이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낱낱이 보여드립니다. 6월 지역투어 첫 행선지는 제주도였습니다. 바람 부는 제주는 돌도 많고 여자도 많다는데, 진짜일까요? 여러분이 몰랐던 진짜 제주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편집자말>

"여기 왜 있느냐고요? 서귀포 주상절리부터 강정포구까지 꼭 한 번 걸어보세요. 그 길을 걸으면 '왜 강정에 있으세요?'라는 질문을 하지 않게 될 거예요. 제 주변에 '날라리' 친구들도 많이 왔다 갔는데, 한 번 걸어보고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더라고요."

 

어느덧 3개월째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사는 날라리 외부세력이 있다. 스스로 '유익한' 외부세력이라고 말하는 김세리씨. 평범한 무용수이자 영화 조감독이던 그녀는 왜 갑자기 서귀포 강정마을에 눌러앉게 됐을까?
 

그녀를 찾아간 지난 25일, 태풍 메아리가 제주를 할퀴고 있었다. 강정마을에도 비바람이 몰아쳤다. 강정마을을 지키려는 사람도, 해군기지를 지으려는 사람도 모두 숨죽인 채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우산도 소용없었다. 비를 흠뻑 맞고, 젖은 몸을 이끌고 그녀가 있다는 강정마을 의례회관으로 향했다.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탁자 한 귀퉁이에 김씨가 앉아 있었다. 기자와 마주 앉았을 때, 그녀는 울분을 토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럴 만했다.

 

"사실 저는 기자들한테 섭섭한 게 많아요. 강정마을이 알려지고 이슈화되니까 찾아왔잖아요. 제가 강정마을에 처음 온 게 4월인데, 그때는 얼마나 마을이 허하던지.... 기자들, 방송국 다 외면한 상태였고, 무슨 사건이 벌어져도 누구 하나 달려오는 사람이 없었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녹음하고 사진 찍으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자발적으로 했죠. 저는 트위터를 했기 때문에 (외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작은 숨구멍 역할 정도를 한 거죠."

 

'날라리' 외부세력의 힘... 강정마을이 달라졌네

 

제주에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는 뉴스가 나온 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외부 사람들의 관심은 뜸했다. 서귀포시 강정마을로 부지가 확정된 후에 마을 사람들끼리 분열과 갈등으로 몸살을 앓았지만 섬 안의 문제일 뿐이었다.

 

김씨가 트위터로 활동하면서부터 일반인들도 조금씩 강정마을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녀는 강정마을을 지키면서 '강정당'이라는 인터넷 모임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강정당'은 '강정은 살아있당'의 줄임말인데, 현재 280여 명의 당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가수, 연주자, 영화감독, 의사, 회계사, 간호사, 직장인, 대학생, 미술교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다. 서울 강정당, 전라도 강정당, 경상도 강정당 등 각 '지역당'까지 생길 정도로 이들은 열심이다.

 

김씨의 고향은 부산이다.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에서 주로 살았다. 그녀가 제주를 찾은 것은 애초 강정마을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녀의 남편은 제주 4.3사건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레드헌트>를 만든 조성봉 감독이다. 이들 부부는 지난 4월, 4.3을 맞아 이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 제주를 찾았다.

 

"맨 처음 제주에 온 것은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서였어요. '생명평화결사'가 제주4.3을 맞아 4월 매주 토요일에 강정마을에서 행사를 하더라고요. 강정마을에서 <레드헌트>를 상영하겠다고 연락이 왔었죠. 저와 신랑은 <레드헌트> 1, 2편을 들고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왔어요. 저는 치마 입고,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말이죠. 하하하. 그러다 이렇게 눌러앉게 됐어요. '자발적 발목 잡힘'이라고나 할까요."

 

김씨가 처음 강정마을을 찾았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강정 앞바다의 구럼비 해안과 넓은 바위였다. 범섬이 보이는 아름다운 해안은 절대보존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넓은 바위는 누워서 쉬고, 명상하기에 좋아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올레7코스가 지나는 길이기도 하다. 해군기지는 바로 이곳에 들어선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구럼비가 무척 아름다웠어요. 그 아름다움이 (해군기지 건설로) 부서진다는 게, 저에게 많은 의문을 갖게 했어요. 4월 6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던 양윤모(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 선생이 공권력에 의해 끌려가는 것을 보게 됐어요. 제가 그동안 기사나 사진으로 보던 것과 다른 것들이 이곳 강정마을에 있다는 것을 감지했죠. 그래서 마을사람들에게 묻고, 자료를 찾아보면서 해군기지 건설 문제에 대해 알게 됐어요. 여기서 지내면서 강정마을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반하게 됐고, 그런 여러 가지가 저를 여기에 남게 했죠."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의 매혹... 자발적으로 발목 잡혔네

 

김씨가 '강정당'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강정마을을 외부에 알리기 시작한 것은 5월 1일부터다. 그는 트위터에 사진을 올리고 기사를 썼다. 신문과 방송이 하지 못한 역할을 한 셈이다. '강정마을 통신원'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저는 트위터에 사건·사고 말고도, 강정마을의 바위·물·섬·꽃 등의 사진도 올렸어요. 이런 사진에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어요. 사람들이 '여기 어디야?'라고 물으면, '바로 그곳이 시멘트로 덮이게 돼'라고 답했죠. 그러면 사람들이 또 '여기에 왜 해군기지를 만들어?'라고 물으면서 의견을 주고받았어요. 그렇게 강정마을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 조금씩 늘어났죠. (하지만) '강정당'은 전혀 조직적이지는 않아요. 그냥 날라리예요. 하하하···."

 

김씨가 처음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녀는 춤꾼이자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7년째 남편 조성봉 감독과 다큐멘터리 <진달래 산천>을 제작중이다. <진달래 산천>은 지리산 빨치산에 관한 이야기다. 김씨는 영화를 만들면서 역사에 휩쓸린 사람들의 상처를 조금씩 알게 됐다.

 

"저는 '아웃사이더'나 소외된 사람들, 그리고 약자들에게 손길, 눈길이 가는 것 같아요. 저도 아웃사이더니까. 저 역시 중하층을 살아온 약자니까 그런 사람이 눈에 보이는 거죠.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를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 '꼬락서니'를 알고, 주제 파악을 잘하자는 게 화두예요. 하하하."

 

김씨는 예술과 작품만 파고들었다면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 현상을 이곳에서 경험하고 있다. 그녀는 강정마을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있다고 했다.

 

"세상에는 돈만을 벌려고 사는 사람도 있고, 물질로 보상받지 못하더라도 세상의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도 있잖아요. 후자의 사람들을 통해 '이런 맛에 사는구나'하고 깨닫고 있어요. 여기서 그런 맛을 조금은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김씨의 집은 전남 구례에 있다. 지리산이 보이고 섬진강도 가까운 곳이다. 그 거처를 비운 지도 벌써 100일이 다 됐다. 기르던 개 두 마리는 옆집에 맡겼다. 가끔, 구례의 집이 걱정되긴 하지만 아직 돌아갈 생각이 없다.   

 

"강정마을 주민이 저를 걱정해서 '(구례) 집에 들어갑써'라고 말하는데, 아직 저는 집 생각이 없어요. 저랑 신랑은 사실 지리산과 섬진강에 거의 미친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참 신기해요. 구럼비 해안에 있으면 아무것도 그립거나 생각나는 게 없어요. 그만큼 저 바다와 해안과 강정마을 사람들은 매력적이에요. 여기는 인간 삶의 많은 것들을 응축한 곳인 것 같아요. 제주 바다와 구럼비 바위가 주는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최고예요. 지금도 구럼비에 막 가고 싶어요. 진짜 미친 것 같아요. 하하하."

 

그는 외부사람이 강정마을에서 한 번 자고 나면 열성파가 된다고 했다. 강정마을에는 활동가들이 자주 오지만 문화예술인들도 많이 찾는다.

 

"저는 '외부세력'이라는 말이 좋아요. 제가 말하는 외부세력에는 '외부이면서 충분히 내부와 교감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아둔 거예요. 저들(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안과 밖은 다르다고 하지만 저는 하나라고 생각해요."

 

강정마을로 오라, 여기 아름다움이 있다

 

김씨의 노력에도 아직 많은 이들은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에 거부감을 느낀다. 해군기지 건설과 국가 안보를 직결시키기 때문이다. 한국 땅에서 '안보'는 예민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김씨는 안보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딱딱한 논리로 반박하거나 명쾌한 해답을 주려 하지 안는다.  

 

"저희는 답을 주거나, 같이 반대하자는 게 아니에요. 여기 구럼비 해안에 꽃이 있다, 붉은발말똥게가 있으며, 아름다운 연산호 군락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에요. 그래서 사진을 올리는 거예요. 그런 아름다움이 무엇보다도 가장 큰 힘인 것 같아요. 강정마을이 원래 갖고 있던 힘이죠.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의 가치가 지금은 너무 얕게 평가된 것 같아요. 이곳의 가치만 부각돼도 '이곳에 해군기지를 꼭 건설해야 하느냐'고 묻게 될 거예요. 그러면 해군기지 건설 명분이 부족하다는 것도 알게 될 거고요. 그러면 사람들이 스스로 답을 얻게 될 거라고 봐요."

 

김씨의 남편 조성봉은 제주4.3을 다룬 <레드 헌트>를 만들었다. 김씨와 남편 조성봉 7년째 지리산 빨치산을 다룬 다큐 <진달래 산천>을 만들고 있다. 지리산 빨치산은 제주4.3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지리산과 제주는 둘이 아니다. '외부세력' 김세리와 조성봉이 제주 강정마을에 머무는 건, 어쩌면 운명이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봄이 와, 지리산과 한라산이 '진달래 산천'으로 바뀔 즈음이면 김세리와 조성봉은 구례로 돌아가 있을까?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태풍이 몰아치는 구럼비 해안에는 사나운 파도가 끝없이 일렁였다.

 


태그:#강정마을, #김세리, #강정, #제주해군기지, #구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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