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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활대가 마을회관에 건 현수막
 농활대가 마을회관에 건 현수막
ⓒ 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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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인생에서 마지막 농활이야. 언제 또 농활을 가겠어. 같이 가자."

같은 학번이자 한 살 위인 동아리 친구의 권유였다. 친구로 지낸 지 햇수로 4년째, 매년 여름이 되면 자연스레 농활에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마다 나는 시큰둥했다. 땀 흘리는 게 싫었다. 살이 타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농사일도 감당이 안 됐다. 그렇게 매년 사양만 하다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말에 마음이 동했다. 내년이면 졸업반이다. 농활에 갈 기회는 정말 마지막이었다. 잠시 망설인 뒤에 참가자 명단에 이름을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강원도 양구군 남면 대월리였다. 행정구역 이름은 죽리인데,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대월리라고 불렀다. 이장님께 여쭤봐도 지명의 유래를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대월(大月)이 아닐까 짐작했다. '큰 달'의 마을. 날이 맑으면 은하수를 볼 수 있는 마을에서 달은 마을의 애칭이 될 만큼 밝고 선명할 터였다.

마을회관에 도착해서 일정표를 확인했다. 8박 9일이 쉴 틈 없이 돌아간다. 일과는 오전 5시 30분에 시작해서, 밤 10시 30분이나 11시에 끝난다. 눈에 띄는 부분은 하루에 정해진 시간 외에는 핸드폰 사용 금지였다. 핸드폰을 제출했다가, 잠자기 전 30분 동안 사용하고, 다시 반납하는 방식이었다.

처음 핸드폰을 걷어갈 땐 한숨을 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하루 만에, 이곳에선 핸드폰이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걸 알았다. 매일 겪던 '유령진동증후군'도 사라졌다.

숙소에 짐을 풀고 주변을 둘러봤다. 도시와 다른 풍경에 감탄한다. 길가 물 고인 곳에 우렁이가 있다. 바로 옆 축사에선 소가 풀을 먹고 있다. 풀벌레 소리, 개구리 소리가 깨끗했다. 사람과 기계 소리만 듣던 귀가 모처럼 정화됐다. 공기마저 남달랐다.

대월리의 풍경
 대월리의 풍경
ⓒ 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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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전 5시 30분, 마을회관] 밥가(歌)

일과의 시작. 3인 1조로 번갈아가며 미리 짜놓은 식단에 맞춰 요리한다. 6시 10분에 전체 식사가 이루어진다. 식사 전엔 숟가락으로 밥상을 두드리며 '밥가(歌)'를 부른다.

"밥! 밥! 밥! 밥!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서 못 가리듯, 이밥은 서로서로 나누어 먹는 것."

유치원 이후로 식전 노래를 부른 건 처음이다. 설거지를 줄이기 위해 밥그릇, 반찬 그릇도 최대한 줄였다. 노래처럼 우리는 밥을 나누어먹었다.

[#2. 오전 7시 30분, 비닐하우스] 농사도 할 만하네

아직까진 몸뻬바지가 어색하다. 우비에 밀짚모자까지 챙겨 비닐하우스로 갔다. 날이 흐려 밀짚모자는 불필요했다. 방울토마토 밭에서 줄 치는 작업을 배웠다. 작업 난이도 하. 모두 웃으며 일을 시작했다.

더위를 걱정했다. 하지만 문제는 추위였다.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쏟아졌다. 하우스 안이라 비를 직접 맞지 않았지만, 추위를 달래려 우비를 껴입었다. 말없이 일만 하려니까 좀이 쑤셨다. 토마토 밭에 서식하는 온갖 종류의 곤충을 관찰했다. 이때까진 일하는 것도 할 만했다.

"심심한데, 연애 얘기나 할까요?"

아침 식사하며 안면을 튼 사람이 불쑥 말을 걸었다. 같은 하우스에 있던 셋은 절친이 되었다.

[#3. 정오, 비닐하우스 주인댁] 고봉밥

지쳐갈 때쯤 점심시간이 왔다. 주인댁 안으로 흙투성이가 된 발을 닦고 들어가니, 어르신께서 차려주신 식탁에 말로만 듣던 고봉밥이 있었다. 밥가도 생략하고 먹는 데 열중했다. 간소한 시골 밥상에 시장이 반찬이었다. 고봉밥이 금세 바닥을 보였다. 밥을 다 먹고 나서야 다들 한마디씩 건넸다.

"주변에 귀농한다는 사람 있으면 농활부터 권해야겠어요."

4시간 30분을 꼬박 서서 일했다. 일은 쉬웠지만,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사용하고, 장시간 서 있던 여파는 컸다. 선뜻 먼저 일어나려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의 반이 남은 시점에서 우리는 지쳐 버렸다.

내게 농활을 소개해 준 농활 4년차 숙달된 조교. 조가 달라 다른 일을 했다.
 내게 농활을 소개해 준 농활 4년차 숙달된 조교. 조가 달라 다른 일을 했다.
ⓒ 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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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후 4시, 여전히 비닐하우스] 커피타임

일하는 시간이 8시간을 향하던 무렵 커피가 나왔다. 커피를 핑계 삼아 쉬는 시간을 가지며 비닐하우스 주인 이동욱(36)씨와 일문일답.

- 나이가 상당히 젊어 보이는데 귀농한 건가. 만약 그렇다면 귀농은 어떻게 결심했나.
"2009년 10월에 귀농했다. 집과 농사지을 터를 마련하기 위해 사전에 준비한 시간까지 합치면 4년 됐다. 귀농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대학에서 농업관련 과를 나왔는데 농사가 재밌고 적성에 맞았다. 대학 졸업하고 바로는 못하고 꾸준히 준비를 해오다가 귀농했다."  

- 일과는 어떻게 되는가.
"요즘 같은 여름이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늦어도 5시에는 밭으로 나온다. 해가 길어서 저녁 8시까지는 밭에 있다가 집에 들어간다."

- 방울토마토와 오이만 농사지으시는 건가.
"작년까지 배추도 농사를 지었다가 망해서 갈아엎었다. 지금은 배추는 완전히 접고 방울토마토와 오이에 올인했다. 그런데 오이 가격이 15kg 한 박스당 5천 원 선에서 거래된다. 박스비, 운송료를 빼면 1500원이 남는다. 마트에 납품하기도 어렵지만, 큰 체인 마트에 직접 납품을 하면 마트에서 25%를 떼어간다. 역시 운송료, 박스비가 들어간다. 농사짓기 어려운 구조다. 그래도 올해만 잘 넘기면 내년에는 더 재밌어질 것 같다."

역으로 질문이 들어왔다.

"그런데 학생들은 이런 농활에 오면 가산점을 받나?"

가산점은 없고 그냥 재밌어서 온다고 대답했다.

[#5. 오후 10시, 숙소] 핸드폰

핸드폰이 없으니 해로 시간을 가늠했다. 해가 뜨는 시간에 활동을 시작하고 해가 질 때쯤 숙소에 들어왔다. 농사꾼의 삶도 이러했다. 24시간 만에 켠 핸드폰에는 카카오톡이 1개 와 있었다. 역시 핸드폰이 없어도 무리가 없는 삶이다. 핸드폰을 받은 30분 동안 할 게 없어 결국 전원을 다시 껐다.

총 9일의 농촌활동 중 이틀이 지났다. 대월리에 오지 않았다면 농활이 '연민으로 하는 봉사활동'이라고 오해했을 것이다. 농활은 봉사활동이 아닌 농촌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경험하는 활동이다. 농활에 오면 농부가 자식과도 같은 작물을 갈아엎어야 하는 심정을 이해하게 되고, 도시의 삶보다 더 치열하고 열정적인 삶을 경험할 수 있다.

8박 9일 여행하는 데 총비용이 3만 원이면 가격도 저렴하다. 해외여행도 좋고 스펙도 좋지만, 농활도 못지않은 경험을 제공한다. 대학엔 학교마다 농활이 준비되어 있다. 여름농활은 이미 진행 중이니 가을농활이나 봄농활을 가보는 것은 어떨까.


태그:#농활, #농촌활동, #대학생 농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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