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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미황사로 돌아오니 1시가 조금 넘었다. 이미 점심시간이 지난 셈이다. 우리는 점심을 달마선다원에서 먹기로 하고, 다시 한번 미황사 전각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아까는 스님들이 예불을 드리고 있어 전각 안으로 들어가질 못했는데, 이제는 여유 있게 전각 내부를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대웅전 안으로 들어간다. 정면 가운데 목조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측면 벽에는 삼세불도와 신중도가 그려져 있다.

 

이곳 대웅전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천불도와 범자문(산스크리트 문자)이다. 그림과 문자가 대들보와 천정에 그려져 있는데, 그 양식이 상당히 서역적이다. 여기서 서역적이란, 부처님들을 무리지어 표현하고 벽에다 직접 그림을 그린다는 점이다. 범자문은 읽을 수가 없어 그 뜻을 알 수가 없지만, 사방 벽과 대들보에 그려진 천불도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건한 마음이 들게 한다.

 

안내문에 보니 미황사 대웅전에서 세 번만 절을 올리면 부처님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고 한다. 그것은 한 번에 천불 부처님께 절을 하는 게 되는 것이니, 삼배가 자연스럽게 삼천배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부처님께 세 번 절을 올리며 모든 일이 잘 되기를 기원한다. 절을 하고 대웅전 가운데 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영산홍과 괘불대, 넓은 마당과 만세루, 그 너머로 서해안이 한가하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한낮에 느낄 수 있는 여유다.

 

대웅보전은 또한 미황사 창건설화에 나오는 배를 상징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 배를 타면 중생의 세계에서 부처님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대웅전 주춧돌에는 바다에 사는 거북이와 게가 조각되어 있다. 이들 조각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조금 마모되기는 했지만, 연화장 세계로 기어오르는 모습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제 대웅전을 나와 16나한이 모셔진 응진당으로 향한다.       

 

 

응진당 안에 그려진 수묵화

 

응진당도 이제는 예불이 끝나 비어 있다. 종교적인 측면보다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절을 찾는 나는 전각 내에 스님이 없는 때가 더 좋다. 전각 안과 문화유산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응진당 안으로 들어가니 가운데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 가섭과 아난존자가 모셔져 있다. 그리고 좌우에 여덟 분씩 열여섯 분의 나한이 각기 다른 자세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응진당이나 나한전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건데, 나한이 항상 해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나한들은 부처님들처럼 근엄하지도 않고, 퉁퉁하지도 않으며, 금칠이 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친근하다. 이곳 응진당의 나한들도 표정이 참 재미있다. 동글동글한 상호에 약간의 미소를 띠고 있다.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아 나한의 이름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이들 나한의 이름은 인도어에서 왔고, 그것이 중국어를 거쳐 우리말로 정착되었다. 이들 나한은 기도하고 명상하고 책을 읽고 선정에 드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내부 벽에 그려진 수묵화다. 인왕상이 양쪽 끝에서 호위하고 있고, 그 안쪽으로 나한들이 두 명씩 대화하거나 수행하는 모습이다. 이들 선묵화(禪墨畵)는 조소상보다 훨씬 더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리 모양도 울퉁불퉁하고 코와 눈도 커서 이국적인 모습이다. 나한들의 나이가 훨씬 들어 보이고, 배와 가슴이 드러난 그림도 있다. 어떤 면에서는 나한도가 아니라 신선도처럼 느껴진다.

 

이들 수묵화를 보고 나서 가운데 문을 통해 절을 내려다본다. 응진당은 미황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당우 중 전망이 가장 좋은 편이다. 특히 해질 녘 서쪽으로 펼쳐지는 진도 쪽 다도해의 모습이 일품이라 하는데, 아직 일러서 그런지 그런 멋진 모습은 볼 수가 없다. 그렇지만 당우 아래 영산홍, 마당 건너 만세루, 그 너머 송지면 산자락이 근경, 중경, 원경으로 펼쳐진다.  

 

 

명부전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응진당을 나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명부전이다. 명부전이라면 지장보살을 주존불로 시왕이 모셔져 있는 전각이다. 이들 시왕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왕은 다섯 번째 왕인 염라대왕이다. 염라대왕은 업경대를 통해 죽은 자에게 과거 그가 저지른 선행과 악행을 보여준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자에 대한 심판은 일곱 번째 왕인 태산대왕에서 끝난다. 하나의 왕으로부터 7일씩 심문을 받기 때문에 49일 만에 사자에 심판이 끝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우리 장례에 49재가 있는 것이다. 물론 100일, 1년, 3년이 지날 때 세 명의 왕으로부터 더 심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런데 이곳 명부전엘 들어가니 지장보살도 없고, 시왕도 없다. 아마 보수를 위해 외지로 나간 모양이다.

 

자료에 의하면 이곳 명부전 시왕을 조성한 사람이 공재 윤두서라고 한다. 그에게 아들이 없어 절 근처 은행나무를 베어 시왕을 조성했더니, 아들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10명씩이나. 그렇지만 네 번째 왕인 오관대왕의 눈을 짝짝이로 잘못 만들게 되었는데, 그 때문인지, 공재의 넷째 아들도 눈이 짝짝이었다고 한다.

 

이제 대흥사에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는 보물 제1342호인 괘불이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문양과 고려불화의 아름다움과 조선불화의 단순미를 고루 간직한 괘불이라고 한다. 영조 3년(1727) 탁행스님 등 여러 명이 참여해 그린 괘불로 높이가 12m, 폭이 5m나 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괘불은 볼 수가 없다. 괘불이 야외법회 때만 나오기 때문이다.

 

올해 이 괘불을 보려면 10월 8일(토) 오후 1시에 열리는 '괘불재(掛佛齋) 그리고 미황사 음악회'에 참여하면 된다. 불교음악 연주와 설법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깨달음과 명상의 시간을 갖도록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 행사는 괘불이운, 만물공양, 통천, 법어, 두레상 한솥밥의 순서로 진행된다. 여기서 통천(通天)이란 하늘과 교감하는 기도와 염불 수행을 말한다. 그리고 두레상 한솥밥은 햅쌀과 떡을 나누는 자리다. 

 

 

달마산다원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절을 다 보았으니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아직 점심을 해결하지 못했으니 문제다. 나는 올라오면서 절 안에 있는 달마선다원에서 삼색떡국을 한다는 안내문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곳에서 떡국을 먹고 가기로 한다. 달마선다원은 대흥사 일주문과 자하루 사이에 있다. 그곳에는 절에 공양할 물건, 차, 책, 기념품 등이 판매되고 있다.

 

아내와 나는 삼색떡국을 시키고 창가에 앉아 미황사의 봄 풍경을 완상한다. 신록이 붉은 꽃들과 어우러져 신선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거기다 어린 애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의 모습도 보인다. 대웅전에서 만나 삼배를 하던 다섯 살짜리 어린애도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우리는 시간이 남아 이것저것을 구경하다 작설차를 하나 샀다. 이곳 해남과 보성지역이 차의 본향이니 품질이 좋을 것 같아서다.

 

사실 차를 사게 된 것은 이곳에서 얻어먹게 된 메밀차 때문이다. 메밀차가 어찌나 부드럽고 맛이 있던지 모든 차가 다 맛있을 것 같아서다. 조금 이따 삼색떡국이 나오는데 이름 그대로 세 가지 색의 떡으로 만들어졌다. 떡국의 맛을 내기 위해 표고버섯을 넣은 것 외엔 별다르지 않은데, 맛이 있다. 뭔가 비법이 있는 모양이다.

 

더욱이 떡국과 함께 나온 김치가 어찌나 맛이 있던지 떡국을 정말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요즘 절음식이 웰빙이라는 이름으로 대중화되고 있는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밥과 국에 채소와 나물이 더해진 간단한 식사, 그것으로는 탈이 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색떡국도 정말 떡국과 김치밖에는 없었다.

 

오늘도 절에 가서 즐겁게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우리는 미황사 일주문을 나와 정말 기분 좋게 땅끝마을로 향한다. 이제 땅끝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노화도의 산양진항으로 가면 된다. 그러면 해남 땅을 떠나 완도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30분만 가면 땅끝에 도착한다.


태그:#천불도, #선묵화, #명부전, #괘불탱, #달마선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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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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