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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노조가 지난 4월 29일 민주노총 탈퇴를 선언했다. 서울지하철노조는 민주노총 핵심 조직 중 하나여서 큰 충격을 줬다. '민주노총 탈퇴'와 '새 상급단체 설립 및 가맹'을 연계해 이뤄진 조합원 총투표에서 투표에 참여한 조합원 53%가 찬성표를 던졌다. 일부 조합원들이 반발하고 있지만 민주노총도 탈퇴를 인정하는 등 서울지하철노조의 탈퇴는 사실상 확정됐다고 볼 수 있다.

 

"싸우지 않고도 얻을 수 있다"는 '배일도 길'을 따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첫째, 지난 2006년 당선된 정연수 위원장의 고집이 결국 구현됐다는 점이다. 양대 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계를 비판하며 '새로운 노동운동의 패러다임'을 내세웠던 정 위원장은 '민주노총 탈퇴'를 '새로운 운동'의 출발점으로 삼아왔다. 2009년 재임에 성공한 정 위원장은 이를 위해 그해 연말 탈퇴 투표를 실시했으나 54%의 조합원이 반대해 무산됐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결국 그 뜻을 관철했다. 

 

이러한 정 위원장의 행보는 1999년 서울지하철 노조 위원장을 지낸 배일도의 행보와 매우 닮았다. 배 전 위원장은 당시 김대중 정부의 가혹한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에서 노조가 큰 타격을 입자 "동종 업계 최고 대우를 싸우지 않고도 얻을 수 있다"며 "기존 집행부가 조합원들을 투쟁의 장으로만 동원해 피해를 줬다"고 비판했다. 그는 '무쟁의'를 선언해 그해 위원장에 당선했다.

 

"싸우지 않고도 더 얻을 수 있다"는 배 전 위원장의 말은 오랜 투쟁에 지친 조합원들에게 아주 달콤했다. 배 전 위원장은 '상생 경영'과 '노사 협조주의'를 외치며 세 번이나 연임에 성공했고, 네 번째 연임에 실패한 후에는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 당선됐다.

 

그러나 그가 위원장에 있는 동안 서울지하철노조의 노동 조건은 4조3교대에서 3조2교대로 나빠졌다. 정년은 3년 단축됐고 직원들에 대한 복지도 축소됐다. "없을 것"이라던 구조조정도 단행돼 1621명이 회사를 떠났다.

 

정연수 현 위원장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주장하는 '새로운 노동운동' 역시 '상생 경영'과 '노사 협조주의'를 토대로 하고 있으며 싸움과 투쟁 없는 승리를 이야기한다. 정 위원장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공개 지지했고 각종 행사를 통해 한나라당 의원들과도 지속적으로 접촉해 왔다.

 

서울지하철노조 집행부 출신의 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정 위원장은 정치적 욕심이 있다"며 "이명박 정부와 보수 진영의 논리와 맥을 같이하며 처음 위원장을 할 때부터 신지호 의원 등 뉴라이트 계열과 관계를 맺어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조합원들도 정 위원장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바라보고 있지만, 좀 더 안정된 생활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작용해 그 같은 결과가 나왔다"라며 "결국 친정부적인 노총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제3노총이 과연 비정규직을 끌어안을 수 있을까

 

서울지하철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는 새로운 노총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제3노총은 지난해 3월 정연수 위원장과 오정세 현대중공업노조위원장 등이 주축으로 결성된 '새희망노동연대'가 모태다. 오는 6월 출범을 목표로 하는 이들은 현대중공업노조, 현대미포조선노조, KT 노조, 전국지방공기업노조연맹, 전국교육청공무원노조 연맹 등 40개 노조로 구성돼 있다. 당장이라도 10만~15만의 조합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이들은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조합 건설'을 노선으로 내걸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노동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했다. 우선 양 노총이 반대하고 있는 타임오프제(노조활동 근무시간 면제)와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등을 수용하며 양 노총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새로운 노동운동'이라는 제3노총의 등장은 보수정권이 들어선 이후 기존 노동운동이 힘을 잃어 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정부와 계속 대립해온 민주노총은 조직 장악력이 약해졌고, 싸우기는 하지만 성과는 없는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돼 조합원들의 실망도 커져 있다. 한국노총 또한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과 맺은 정책연대를 최근 파기하며 정부와 맞서고 있다. 이에 기존 친정부 성향의 세력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오랜 경기침체와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불안을 염려하는 노동자들은 투쟁보다 타협을 지향하는 조직을 찾게 됐고, 그 바람에 제3노총이 힘을 받고 있다는 것이 다수 노동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새로운 노동운동이 그들의 의지대로 "국민을 섬기는" 운동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우동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오마이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노동자들은 보수정권에서 더 나은 사회로 가는 길이 막히고 고용불안으로 압박받으니 당장은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 부소장은 "그런 분위기는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며 "제3노총 운동이 지금까지 안 됐던 이유가 있고, 그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우 부소장은 이를 "집을 짓겠다고 하는데 설계도는 없는 상황"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임금단체협상 이외에도 사회정책변화를 요구하며 교육, 의료 등 사회 전체 노동자와 국민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시도를 하는데 제3노총에게 그것을 기대할 수 없다"며 "당장은 일부 세력으로 노총을 만들 수 있겠지만 비정규직이 800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 그들을 끌어안지 못하는 세력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우 부소장은 이어 "그런 차원에서 제3노총이 '국민을 섬기겠다'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결국 이명박 정부가 한국노총을 길들이고 민주노총을 약화시키는 데 이용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조합원 평균나이 49세, 보수화됐다"

 

하지만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서울지하철노조는 제3노총을 향해 뚜벅뚜벅 가는 중이다. 조직 내외에서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하지만 조합원 과반수가 그 길을 지지했다. 많은 언론은 이런 조합원들의 선택을 '실리주의'라 평가했다.

 

하지만 이들의 실리주의는 "국민을 섬기겠다"는 제3노총 취지와 모순되는 측면이 많아 보인다. 소수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라는 지적도 있다. <오마이뉴스>와 접촉한 서울지하철노조의 한 관계자는 그 분위기를 가감없이 전해 주었다.

 

"조합원이 80명 정도 되는 한 기술파트는 민주노총 탈퇴 투표에서 찬성률이 95%가 넘었다. 단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찬성한 거다. 그 부서에서는 7월 1일에 있을 조직개편에서 득을 보자는 논의가 있었다. 인사고과에서 나은 평가를 받고 자기 분야가 조직개편에서 살아남기 위해 찬성표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종의 조직투표가 이뤄졌다."

 

이 관계자는 "조합원 평균 나이가 49세이고, 50대 이상이 절반 가까이 되는 상황에서 성향자체가 보수적이 됐다"며 "사회가 바뀌어야 우리도 좋아 질 수 있다는 진취적인 생각보다는 당장의 안정이 중요하다는 게 찬성한 조합원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민주노총 탈퇴 찬반 투표에서 '반대'를 선택했다는 한 조합원은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투쟁하지 않아도 더 좋아질 수 있다는 말을 이제는 믿지 않는다"며 "민주노총이 잘하지는 못하지만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에는 공감한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탈퇴하게 됐지만 우리가 어려움을 겪게 되면 (민주노총과 우리의) 차이는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제3노총이 "국민을 섬기겠다"는 뜻을 지킬 수 있을까? 어쨌든 지켜볼 일이다.


태그:#제3노총, #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 #배일도,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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