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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가에 심상치 않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예기치 않은 춘투(春鬪)의 열풍이 대학가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마치 8,90년대 학생운동의 전성기를 보는 듯하다. 왜 갑자기 대학생들은 투쟁에 떨쳐나선 것일까? 지금 대학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다시 불붙은 등록금투쟁

지난 3월30일 서강대에는 1000여 명의 재학생들이 참여해 22년 만에 학생총회가 성사됐다. 학생운동의 호시절에도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이러한 진풍경(?)은 비단 서강대만의 일이 아니다.

우석대는 19년 만에, 경희대는 서울과 수원 교정에서 각각 2000여 명이 참석해 6년 만에 학생총회가 성사됐다. 인하대도 3천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3년 만에 총회를 열었다. 영남대에서는 비운동권 총학생회임에도 불구하고 4000여명의 학생들이 총회 참가했고 동아대는 총학생회가 참여를 거부한 가운데 1900여명의 학생들이 학원 민주화를 요구하면 총회를 개최했다. 이화여대는 역대 최고인 2000여 명이 참석한 학생총회에서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며 필수과목인 종교(chapel)수업거부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이화여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전국적으로 수 만 여 명의 학생들이 등록금 투쟁에 동참했으며 지금도 삭발과 단식, 점거농성, 수업거부 등 더 격렬한 방식으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대학가에 예년에 볼 수 없었던 대규모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물론 직접적인 원인은 고액의 등록금이다.

4월6일 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공개한 '학생 1인당 등록금 변동 추이'를 보면, 2001년 국립대와 사립대의 1년 등록금은 각각 243만1100원, 479만7100원이었다. 반면 2010년 등록금은 국립대가 444만3800원, 사립대가 753만8600원이었다. 10년 사이에 국립대는 82.8%, 사립대는 57.1%가 오른 것이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는 31.5% 올랐다. 다른 물가보다 대학 등록금이 두 배 이상 뛴 셈이다.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취업률은 등록금 인상율과 반대로 바닥을 모르고 곤두박질치고 있다. 요즘 대학생들은 10년 전 선배들보다 두 배나 많은 돈을 내고 훨씬 더 적은 혜택을 받고 있다. 대학생들이 뿔 날만도 하다.

여기에 비정규직 문제와 경기침체도 한 몫 거들고 있다. 요즘 대학생들은 강의실이 아니라 편의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부모의 벌이만으로는 도저히 등록금과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졸업을 해도 편의점을 벗어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청년실업률은 등록금 인상률보다 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 같은 답답한 현실이 대학생들을 투쟁으로 내몰고 있다. 하지만 고액 등록금만으로는 최근 대학가의 변화를 설명하기 힘들다. 등록금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차원에서의 의미 있는 변화의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대학가에 다시 부는 진보의 바람

지난 4월2일 고려대에서는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이하 한대련) 주최로 '새내기 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 수도권 지역에서만 2,500여 명의 대학생들이 참가했다. 같은 날 대학로에서 열린 등록금대회에도 1,000여명의 대학생이 참가하였다. 물론 많은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최근 대학가 분위기를 고려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지난해 한대련이 주최한 전국 행사에 참여하는 대학생은 1천 여 명에 불과했다. 그 전년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해가 갈수록 전국 규모의 진보적 대학생 행사에 참여하는 학생 수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 학생운동은 가파르게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 때문에 "대학 사회의 보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진보의 성역 있었던 대학가에 보수세력들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신보수'(new right)를 표방하는 총학생회들이, 마치 지난 2008년 총선 '새마을'(new town)열풍처럼, 학생회 선거를 휩쓸었다. 현재 진보적인 총학생회는 전국에서 수 십 개에 불과하다. 지난해 선거에서는 전통적으로 운동권이 강세였던 전남대에서조차 비운동권 바람이 거셌다.

이런 추세에서 마치 "느닷없이 휴화산이 분출하듯" 진보적인 행사에 대학생들이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단지 고액 등록금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그 저류에 더 큰 흐름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현상도 있다. 최근 대학가에 불고 있는 사회과학 열풍도 심상치 않다. 8,90년대 학생운동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른바 이념동아리, 사회과학동아리들은 2000년 이후 대학가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한때 대학가를 점령했던 이념동아리와 사회과학동아리는 이른바 '스팩동아리'와 '힙합동아리'에 자리를 내줬다.

그런데 최근 사회과학 동아리들이 우후죽순처럼 다시 생겨나고 있다. 사회과학 동아리를 찾는 대학생들의 숫자도 만만치 않다. 새내기부터 예비역, 4학년에 이르기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전국적으로 수 백 명의 회원을 자랑하는 대형(?) 사회과학 동아리도 등장하고 있다.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이나 우석훈의 '88만원 세대'와 같은 진보적 사회과학서적들은 요즘 "개념 있는 대학생"들의 필독서다. 마치 8, 90년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나 '철학에세이'와 같은 책들이 새내기들의 필독서였던 것과 같다. 최근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는 사회과학, 인문학 열풍도 이 같은 대학생들의 의식 변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여전히 대학생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은 집단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대학생들은 갑자기 진보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일까?

이게 다 MB때문?

학생운동의 퇴조는 97년 환란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학생운동의 하강기는 대체로 97년 이후 시작됐다.

90년 대 말, 2000년 초 한국 사회를 강타한 신자유주의의 파상공세는 많은 대학생들을 속물적인 욕망과 일상의 공포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한때 거리를 누볐던 '행동하는 지성인'들은 냉혹한 현실 앞에 무릎을 꿇고 대부분 도서관으로 퇴각했다. 더 이상 "먹고 대학생"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치열한 생존경쟁에 내몰린 대학생들은 오히려 현실세계로부터 멀어져 갔다. 어떻게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그들의 사회적 의식을 도서관에 묻어 버렸다. 대학 도서관은 더 이상 지성의 요람이 아니라 거대한 지성의 무덤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변화는 이명박 정권과 함께 시작됐다.

2008년 한국 사회를 강타한 광우병 소고기사태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 즉 촛불세대의 출현을 알렸다. 그리고 2008년 금융공황으로 시작된 세계경제위기는 다시 20대를 현실로 끌어냈다. 2009년 장자연과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은 '스펙'으로 결코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계급의 장벽, 거대한 기득권연합의 실체를 깨닫도록 했다. 2010년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불안과 직면하도록 만들었다.

민주개혁정부 10년 동안 상대적으로 안정된 조건 - 이 기간에도 20대의 삶은 상대적으로 완만하지만 지속적으로 파괴되고 있었다 - 에서 성장한 20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이 같은 급격한 사회적 퇴행을 더 수용하기 어려웠다. 사회적 퇴행은 그들의 정치의식을 급진적으로 변화시켰고 사회와 정치에 무관심하던 20대들을 다시 거리로, 다시 사회과학으로 이끌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의 20대를 역사상 가장 역동적이며 진취적인 세대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나타나고 있는 대학가의 변화는 한마디로 'MB효과'라 할 수 있다. 20대의 변화, 대학가의 변화를 이끌어낸 일등공신은 역설적으로 MB였다. 21세기의 가장 보수적인 대통령이 가장 저항적인 세대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2012년 20대를 주목하라

지난 해 지방선거의 최대 쟁점은 무상급식 문제였다. 이후 복지가 정치권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2012년 총선의 최대 쟁점은 아마도 등록금과 비정규직, 청년실업 문제가 될 듯하다. 총선을 앞두고 대학가 춘투가 최절정에 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등록금 문제는 더 이상 인상률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절대액이 금도(red line)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강제적으로 등록금을 끌어 내리지 않는 한 내년 대학가 춘투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반값 등록금' 공약이 공명을 일으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물론 '반값 등록금'은 다른 모든 공약과 마찬가지로 백지화되었다.

내년 총선은 4월이다. 전통적으로 등록금투쟁은 3, 4월 절정에 이룬다. 내년엔 대학생들이 교문을 박차고 거리로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 등록금 인상을 저지하는 것은 학내투쟁으로도 가능하지만 등록금을 인하하는 것은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값 등록금'과 같은 정책적 대안이 없는 한 등록금 인하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때문에 내년 등록금투쟁은 총선을 앞두고 대국회투쟁, 대정치권투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대학생들의 움직임은 총선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12년 양 대 선거의 승패는 결국 20대에서 갈릴 것이기 때문이다.

2,30대 유권자는 전체 유권자의 60%이상을 차지한다. 30대는 한총련세대(이하 H세대)로 현재까지 가장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다.

지난 3월30일 분당(을) 보궐선거 관련, 동아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30대 지지율은 민주당 손학규 후보 72.6%,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 9.8%였다. 전체 지지율은 강재섭 후보가 44.3%, 손학규 후보가 42.7%로 강재섭 후보가 오히려 1.6% 앞섰다. H세대의 급진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조사다.

어느덧 40대가 된 386세대는 87년 6월 항쟁을 주도했던 학생운동의 1세대로 개혁적이며 전통적으로 야성(野性)이 강하다. 386과 H세대는 큰 맥락에서는 대체로 비슷한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유시민과 이정희,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정도의 차이이다. 

여기에 촛불세대까지 가세하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세대정치연합이 형성될 수 있다. 이 진보적 세대정치연합은 다음 선거에서 그 어떤 지역연합, 기득권연합보다 압도적인 정치력을 발휘할 것이다. 거대진보세대연합이 형성되면 두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한국의 정치질서가 근본적으로 요동칠 수도 있다. 즉 내년 총선과 대선 이후 정치판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는 뜻이다.

5,60대와 3,40대의 정치성향이 어느 정도 고착된 상황에서 각 당은 20대의 표심을 잡는데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특히 한나라당의 경우에는 20대 잡기에 사력을 다 할 것이다. 비교적 보수적인 5,60대 유권자의 절대수가 3,40대에 크게 뒤지기 때문이다. 요즘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대학주변을 기웃거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20대의 마음잡으려면 무엇보다 등록금과 비정규직,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특히 등록금 문제는 4,50대 부모세대와도 직결이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2010년 지방선거의 무상급식보다 더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진보개혁세력은 지금부터 무상급식, 반값등록금보다 더 호소력 있고 실현가능한 정책적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대학교육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12년 봄 대학생과 20대의 마음을 얻는 자가 국회를 얻을 것이다.


태그:#등록금투쟁, #진보, #2012년 총선, #진보세대연합, #MB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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