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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짜장면'이 좋다. 이유가 뭐냐고? 그냥 좋다. 머리로 생각해서 이유를 만들어내는 건 구질구질한 뱀발 같다. 어쨌든 공항에 내려서 내가 제일 먼저 달려가는 곳은 중국집이고, 외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도 짜장면이다.

 

언제부턴가 세상에서 짜장면을 자장면이라고 쓰잔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양보 못한다. 자장면은 짜장면이 아니다. 자장면 속에는 짜장면의 기억이 없다. 맛은 기억이다. 그 어떤 고급스런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도 그 옛날 내가 먹었던 짜장면 맛은 살려낼 수 없고, 아무리 맛있는 된장찌개도 추운 한겨울 어머니가 뭉근하게 끓인 구수한 된장찌개 맛은 살려내지 못한다. 자, 이제 그 기억의 한 토막을 소개해볼까 한다.

 

때는 바야흐로 1984년 1월, 나는 논산 훈련을 마치고 경기도 양주의 한 포대에 '빵빵'으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빵빵이란 주특기가 없는 병사로서 부대에서 필요한 대로 알아서 쓰라는, 좋게 말해서 자투리요, 나쁘게 말하면 뱀발 병력이다. 몹시 추웠던 겨울로 기억된다.

 

군대에 갔다 온 사람이라면 이등병 시절을 눈물과 한숨 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중에서도 나는 유독 모양이 빠지는 이등병이었다(이 역시 감정이입의 소산이겠지만 이 정도는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헐렁한 야전점퍼에 땟국물이 흐르는 얼굴, 아침저녁으로 밥 먹듯이 받는 얼차려, 창고 뒤 어둠 속의 집합, 그 유명한 화장실 초코파이, 주머니 속의 건빵… 뭐, 그런 시절이었다.

 

나는 아직 부서를 배정받지 못해 내무반에 대기 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신병은 원래 일주일 동안은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내무반에서 쉬게 한다. 사실 말이 쉬는 것이지, 하루 종일 내무반에 차렷 자세로 앉아 있으면서 이놈저놈 찝적거리고 시킬 일 있으면 다 시켜먹는, 한마디로 누구나 갖고 노는 장난감이요, 누구나 부려먹을 수 있는 봉이다. 여하튼 난 그날도 그렇게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의 본분을 지키며 침상에 차렷 자세로 앉아 있었다. 곁눈질도 하지 않고서 말이다.

 

그때 내무반에 들어선 인사계 선임하사 왈, "어, 벌써 다 올라갔어? 이거 야단인데. 이렇게 추운 날씨에 나 혼자 고생하게 생겼군." 대대 본부의 재봉틀이 고장 났는데, 그걸 고치려면 동두천까지 나가야 했던 것이다. 부대에서 신산리까지 걸어나가, 거기서 다시 차를 타고 동두천까지 갔다 오려면 거리도 거리지만, 칼바람 부는 날씨에 무거운 재봉틀까지 들고 가려면 아마 아찔한 생각이 들었을지 모른다. 순간 나를 본 인사계가 홀연 반색을 한다.

 

"어, 넌 뭐야?"

 

순간 바짝 군기가 든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나는 벌떡 일어나 외쳤다.

 

"예, 이병 000!"

"야, 너 신병이구나, 잘됐다. 나랑 같이 가자."

 

순간 나는 영문도 모르고 인사계를 따라 나섰다. 지금껏 민간 세상이라면 훈련을 받던 도중에 담장 너머로 보이던 들판, 그리고 부대 배치를 받기 위해 기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차창으로 훔쳐보던 풍경이 전부였는데, 이제 이렇게 산목숨으로 직접 사람 사는 세상을 활보하게 되다니, 그 북받치던 감개무량을 인사계는 절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딱 5분 만에 온 세상이 신기하고 그립고 따스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세상은 내 마음의 그림자'라는 말이 오롯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고 할까?

 

어쨌든 동두천에 내리니 점심시간이었다. 인사계가 밥부터 먹자고 하는 순간, 아 그 긴장된 떨림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역시 예상대로였다. 그가 나를 인도한 곳은 짜장면 집이었다(내게 이 행위는 빛으로의 인도였다). 삐걱거리는 2층 계단을 올라가는 순간 벌써 익숙한 냄새가 진동했다. '회가 동한다는 것'이 이럴 때 쓰는 말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중국집 특유의 기름 볶는 냄새에 후각뿐 아니라 온몸의 세포가 벌떡 일어나고, 창자는 꼬이고 뒤집히고 요동쳤다.

 

의자에 앉자 인사계가 형식적으로 내게 무얼 먹겠느냐고 물어보는가 싶더니,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곧장 "짜장 둘"을 외친다. 안 돼, 난 곱빼기, 만두까지 추가, 이 소리가 목구멍에서 솟구쳤지만 나는 간신히 그 목소리를 눌렀다. 익숙한 그릇에 담긴 검은 짜장면을 보는 순간 눈이 돌아갔다. 한올 한올 음미하듯 먹겠다는 생각은 소스와 면을 비비는 순간 완전히 깨어졌다. 세 젓가락이었다. 딱 젓가락질 세 번에 짜장면 한 그릇이 완전히 비어졌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양이 너무 적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입이 커도 세 젓가락에 짜장면 한 그릇을 비울 수는 없다. 짜장 소스까지 싹싹 긁었는데도 인사계는 이제 반도 못 먹고 있었다.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속이 안 좋니, 입맛이 없니 하면서 말이다. 배부른 돼지의 모습이 저럴까? 결국 인사계는 그릇을 다 비우지 못하고 면을 남겼다. 동시에 이등병의 내면에서는 잔인한 갈등이 시작된다. 저걸 달라고 해? 그래도 남이 먹던 건데? 뭐, 어때, 먹는 건데. 안 돼! 돼! 안 돼! 돼! …

 

차라리 내가 맛있는 짬뽕을 사드린다고 할까? 돈은 내가 낼 테니 짜장면 곱빼기 한 그릇 어떻게 안 되겠느냐고 물어볼까? 지금 내 속옷 비상금 주머니에는 만 원짜리 세 장이 들어 있었다. 군대에서 무슨 돈이 필요하냐며 계속 뿌리치는 아들에게, 세상일은 모르는 거라며 어머니가 굳이 손에 쥐어주셨던 돈이다. 현명하신 어머니(역시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아니 짜장면도 얻어먹을 수 있다^^)!! 만원이면 짜장면 스무 그릇을 먹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만원만 뿌리면 짜장면에 만두에, 운 좋으면 탕수육까지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군기가 빠졌다고 하면 어떡하지? 인상으로 봐서는 그리 독해 보이지는 않는데. 어쩐다, 해? 말아?

 

그사이 인사계가 벌떡 일어나더니 계산을 치르고는 벌써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결국 나는 인사계가 남긴 짜장면도 먹지 못했고, 속옷 주머니 속의 비상금도 꺼내지 못하고 중국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은 짜장면에 발걸음이 어찌도 무겁던지…

 

중국집을 나선 우리는 재봉틀을 고치러 갔다. 그런데 주인양반 왈, 시간이 좀 걸리겠단다. 인사계가 머리를 굴리더니 다시 신산리로 돌아가잖다. 신산리에서 개인적인 볼일을 보고 나중에 시간돼서 재봉틀을 찾아오겠다는 심산이었다. 신산리에서 볼일을 마친 인사계, 갑자기 동두천까지 다시 나가는 게 귀찮아졌는지 내게 혼자 갔다올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에헤라 디야,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벌써부터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졌다. 버스가 40분 만에 한 대씩 있으니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짜장면 곱빼기를 때린 다음 총알같이 날아가 재봉틀을 찾아오면 버스 시간을 놓치지 않을 것 같았다. 난 인사계에서 "할 수 있습니다"라고 크게 외쳤고, 그 길로 곧장 터미널로 달려갔다. 동두천에 내리는 즉시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짜장면 집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짜장 곱빼기를 시켰고, 평소의 허기에다 좀전의 아쉬움까지 더해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이어 재봉틀집으로 쏜살같이 달렸다. 시간은 충분했다. 그런데 이런 낭패가! 주인이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렸지만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주위의 가게 문들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한 가게에 그 양반이 능청스레 앉아 있었다. 나는 성화를 부려 재봉틀을 재빨리 넘겨받은 뒤 터미널로 뛰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버스는 막 터미널을 빠져나가 길모퉁이를 돌고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이내 긍정적으로 마음먹기로 했다. 재봉틀집 주인 핑계를 대면 되겠지! 생각을 이리 먹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길이 다시 스르르 짜장면 집으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내 발도 당연히 그리로 이끌려갔다. 의자에 앉으면서 또다시 짜장면 곱빼기를 시키는 나를 중국집 주인이 이상하게 바라보는 듯했다. 하지만 그게 대순가? 이번에는 정말 느긋하게 짜장면 맛을 음미했다. 짜장 보통 하나에 곱빼기 둘이면 물릴 법도 한데, 무슨 조화인지 여전히 꿀맛이었다.

 

신산리 버스 터미널에 내리는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린 인사계가 내 등판을 후려쳤다. "이 녀석아, 어디 갔다 온 거야?"그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탈영한 줄 알았잖아! 이번 차로 안 오면 부대에 탈영병 처리하려고 했어!" 하긴 부대 전입온 지 일주일도 안 된 신병을 혼자 민간세계에 내보내놓고, 그 애가 정해진 시간에 돌아오지 않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간댕이 퉁퉁 부은 선임하사가 뜨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사계는 모른다. 내 입가에 묻은 거뭇거뭇한 흔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후 내 사전에 '짜장 보통'은 없다. 요즘도 중국집에 가면 내 입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짜장 곱빼기 하나요!"


태그:#짜장면, #짜장면 데이, #군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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