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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는 다섯 개의 궁궐이 있다. 조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경운궁), 경희궁, 창덕궁이다. 그중 창덕궁은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 흔히 동궐이라고 부르며 제2의 조선시대 궁궐로 우리나라 궁궐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덕궁 가는 길
▲ 창덕궁 가는 길 창덕궁 가는 길
ⓒ 김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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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구중궁궐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임금이 거쳐하였던 곳으로 원형이 잘 보존된 곳이어서 조선의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왜일까?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면 이유가 있겠지만 가능한 지형을 그대로 실린 채 평지를 활용해서 건물들을 배치했고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점도 하나의 영향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들 조선 궁궐 가운데 최고 평가를 주고 가장 아름다운 궁궐로 손꼽는다.

창덕궁 가는 문
▲ 창덕궁 들어가는 인정문 창덕궁 가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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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돌다리인 금천교를 지나는데 이 다리는 서울에 있는 석교 중에는 오래된 것으로 벽사적인 의미로 해치가 앉아있고 거북이가 또 조각되어 있다. 다리 중간에는 잡귀를 쫓는 귀면(鬼面)이 조각되어 벽사의 의미를 더욱 더 하고 있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이나 신하들의 하례, 외국에서 온 중요 사신들이 만나던 곳으로 공식적인 행사는 모두 이곳에서 열렸다. 정전 바닥에는 수많은 품계석이 놓여 있는데 이는 신하들의 벼슬에 따라서 정1품부터 시작되는 18품계의 위치를 정해 놓은 돌 표지석으로 사극에서 많이들 나오는 장면으로 동쪽에는 문관이, 서쪽에는 무관이 중앙을 향해 도열했다.

품계석
▲ 품계석 품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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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은 역사적으로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광해군 때 다시 지어진 건물이다. 사실 고종 때 경복궁이 다시 지어기전까지는 정궁 역할도 담당하였다. 중앙 계단 가운데 부분에 커다란 네모난 돌이 있는데 답도라고 하며 이는 가마를 탄 임금이 오를 때 지나가는 길로 마멸이 심하지만 봉황이 새겨져 있다. 계단 양 옆으로는 짐승 모양의 서수가 놓여져 있다.

인정전 계단
▲ 인정전 계단 인정전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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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 계단
▲ 인정전 계단 인정전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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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궁궐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일본인들에 의해 일부 모습들이 많이 변형이 이루어졌다. 안타까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순종황제 때부터 건물 내부에 새롭게 커튼박스, 전등 시설 등이 서양식으로 장식되고 서양식 가구들이 들어오면서 실내 장식도 변화가 생겼다.

인정전 내부
▲ 인정전 내부 인정전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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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전은 편전으로 인정전 월대 동북쪽에 있는데 주위에 행각들로 둘러져 있고 동북쪽으로왕과 왕후 및 왕가 일족이 거처하는 희정당이 그 뒤로는 왕과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 등의 침전공간과 이외에 연회, 산책, 학문을 할 수 있는 매우 넓은 공간을 후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일품이다.

대조전은 왕비의 침전이다.
▲ 대조전 대조전은 왕비의 침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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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마다 다 특징이 있겠지만 대조전의 비중 용마루에는 무엇인가 특이한 것이 있다. 바로 용마루가 없다. 이는 통명전과 경복궁에 교태전에도 없다고 한다. 용마루가 없는데 이유로 용으로 비유되는 임금이 잠자는 곳에 또 다른 용을 나타내는 용마루가 있으면 두 용이 충돌한다 하여 설치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1917년 불에 타서 1920년 경복궁의 교태전(交泰殿)을 옮겨다 지었으며 마지막 임금인 순종이 이곳에서 승하한 역사적 장소이다. 임금의 침실이 딸려 있는 회정전, 세자가 공부 하였다는 성정각등의 건물이 있다.

여러 건물들 가운데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마치 비밀의 장소가 있는데 신선원전(新璿源殿)이다. 1921년에 건립된 이 건물은 태조부터 순종에 이르는 조선 국왕 열두 명의 초상화를 모신 진전(眞殿)이다.

연경당 장락문
▲ 연경당 장락문 연경당 장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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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당(演慶堂)은 <궁궐지>에 의하면 순조 28년(1828) 왕세자였던 효명세자가 사대부 집을 모방하여 궁궐 안에 지은 120여 칸 민가 형식의 집으로 순조임금이 자주 휴식을 취하던 곳이라 한다. 솟을대문인 장락문(長樂門)은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섰다고 한다. 달에 있는 신선의 궁궐인 장락궁에서 가져온 이름으로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따라 주인대감의 일상거처인 사랑채와 안주인 등 여성들의 공간인 안채로 나뉘어져 있다.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하는 담장 밑에는 기암괴석들이 줄 지어 있다.

선양재
▲ 선양재 선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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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는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가 하나의 일곽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통칭하여 낙선재라 부른다.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고 헌종의 뜻에 따라서 단청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낙선재 현판은 청나라의 대가 섭지선의 글씨이며 대청 앞 주련에는 추사 김정희의 스승인 옹방강의 글씨가 있다. 순종 임금이 돌아가신 후에 마지막 황후인 윤황후(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덕혜옹주와 왕친왕의 부인 이방자 여사 등이 1963년부터 1989년까지 거처하던 곳으로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선향재는 조선 후기 중국풍의 건물로 정면에 햇빛을 차단하는 차양이 있어 특이하다. 뒤쪽으로는 농수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다.

창덕궁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자연과 건물이 마치 하나로 잘 조화된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잘 나타내는 바로 후원이다.

후원
▲ 후원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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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는 비원으로 불렸고 아직도 그렇게 소개된 것도 많으며 나이 드신 분들은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꽃과 나무들이 우거져 주변은 계절마다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여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른다.

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특이한 네모난 돌문 틀이 있는데 불로문으로 임금님의 무병장수를 기원하여 지은 것이라고 한다.

불로문
▲ 불로문 불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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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지(芙蓉池)는 네모난 연못 속에 둥근 섬을 만들었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에 의해서 조성되었다. 연못의 동남쪽 모서리 돌에는 물고기 한 마리가 새겨져 있다.

부용정에 잉어 한마리
▲ 부용정 잉어 한마리 부용정에 잉어 한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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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정(芙蓉亭)은 十자형을 기본으로 하며, 남쪽으로 양쪽에 한 칸씩 보태어 다각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정자 건물이다. 숙종 때 만들어져 택수재라 하였으나 정조가 부용정으로 바꾼 것이다. 정조는 1795년 사도세자와 혜경궁의 회갑을 기념하여 화성에 다녀온 뒤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부용정에서 규장각 신하들과 낚시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부용정
▲ 부용정 부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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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정 맞은편에 주합루로 오르는 어수문이 있으며 서책을 보관하였다는 서향각은 주합루 옆에 있다. 어수문 옆 작은 문은 신하들이 다니던 문이라 한다.

영화당
▲ 영화당 영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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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당(暎花堂)은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현재 건물은 숙종 18년(1692)에 재건한 것으로 왕족의 휴식공간이자 이 건물의 앞마당인 춘당대에서는 친히 임금이 참석한 가운데 인재 등용을 위한 과거를 실시하였다고 하며 현판은 영조의 어필이라 한다.

주합루
▲ 주합루 주합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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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합루(宙合樓)는 정조 즉위년(1776)에 지은 2층 누각으로 아래층은 도서관인 규장각 서고이고 위층은 열람실이다. 주합루라는 현판은 정조의 친필이다. 주합루의 정문은 어수문(魚水門)으로 후원에 있는 독특한 형태의 문인데 이는 임금을 물에, 신하들을 물고기에 비유하여 군신의 융화 관계를 함축한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그 옛날에는 과거에 급제하며 그때부터 주합루에 올라 책을 읽고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도 한다.

어수문
▲ 어수문 어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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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문은 등용문으로 임금이, 그 옆의 작은 문으로는 신하들이 출입했다. 즉 어수문은 왕과 왕비만이 출입하던 문이다. 올라가는 계단 양끝 소맷돌에는 삼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고 궁궐에 있는 문으로는 유일하게 용이 조각되어 있다고 한다.

의두각(倚斗閣)과 기오헌(寄傲軒)은 효명세자가 지은 건물로 단청을 칠하지 않은 소박한 건물로 앞쪽에 애련지와 마주하고 있다.

기오헌과 의두각
▲ 기오헌과 의두각 기오헌과 의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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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서쪽은 음행오행에 따르면 금(金)이고 동물로 볼 때는 호랑이(虎)이므로 금호문이라 칭하였고 승정원의 승지나 홍문관 등 궁내 관서에 근무하는 벼슬아치들이 출입했던 문이다.

관람정
▲ 관람정 관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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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정(觀纜亭)은 평면이 부채꼴 모양으로 되어 있어 특이한 형태로 관람정 앞 연못은 대한제국 말기에 현재와 같이 변형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관람은 닻줄 즉 배 띄움을 구경한다는 뜻이다. 관람정 맞은편 서쪽에는 단촐한 규모의 승재정이 있다.

승재정은 반도지가 보이는 곳에 있다.
▲ 승재정 승재정은 반도지가 보이는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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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덕정(尊德亭)은 1644년 건립된 정자로 육각정자 형태로 겹지붕이 특이하다. 내부에는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千明月主人翁自序)라는 정조의 글이 새겨진 현판이 걸려있다. 옛날에는 다리 남쪽에 일영대(日影臺)를 설치하여 시각을 측정했다고도 한다.

폄우사(貶愚謝)는 순조의 세자 효명세자가 독서하던 곳으로 폄우(貶愚)란 뜻은 어리석음을 경계하여 고쳐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옥류천
▲ 옥류천 옥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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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천은 창덕궁 후원 북쪽 깊숙한 곳에 흐르는 개울로 인조 14년(1636)에 커다란 바위인 소요암을 깎아 둥근 홈을 만들어 옥과 같이 맑은 물이 바위 둘레를 돌아서 폭포처럼 떨어지게 만든 것이다. 근처에 있는 소요정, 태극정, 청의정 등과 함께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간직하여 많은 임금들에게서 특히 사랑받았던 곳이다.

태극정
▲ 태극정 태극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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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암에는 인조의 옥류천(玉流川)이라는 어필 위에 숙종의 오언절구시가 새겨져 있다.

遙落九天來 멀리 구천에서 내리네
看是白虹起 보고 있으면 흰 무지개 일고
飜成萬壑雷 골짜기마다 천둥 번개소리 가득 퍼지네

창덕궁은 사적 제122호로 돈화문(보물 제383호), 인정문(보물 제813호), 인정전(국보 제225호), 대조전(보물 제816호), 구선원전(보물 제817호), 선정전(보물 제814호), 희정당(보물 제815호), 향나무(천연기념물 제194호), 다래나무(천연기념물 제251호)등 많은 문화재들이 지정되어 있는 궁궐 중에 보배이다. 나무들이 울창한 뜰, 후원, 여유로운 공간 그곳에 가면 궁궐의 비밀이 있을 것만 같다.


태그:#창덕궁, #승재정, #연경당, #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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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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