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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박사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정치철학 특강' 2부 강의를 하고 있다.
 강신주 박사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정치철학 특강' 2부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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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에서 수영하는 사람을 상상해봅시다. 분명 그에게는 어떤 방향으로 일정하게 흐르는 물이 존재합니다. 물이 흐르는 힘에 사람은 수동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지요. 하지만 그 사람은 물의 흐름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능동적으로 수영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인간이란 수동적이면서 능동적인 존재'라는 얘기지요. 마르크스 철학의 특징이 바로 이것입니다."

지난 천 년 동안 가장 위대한 사상가는 누구일까? 지난 1999년, 영국의 BBC 방송에서는 밀레니엄을 맞아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위를 차지한 것은 <자본론>의 저자인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였다. 그는 자신의 저작들을 통해 19세기 자본주의를 분석했고,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예리하게 비판했다. 마르크스가 세상에 내놓았던 '마르크스주의'는 다양한 해석들과 수많은 추종자들을 낳으며 현대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철학 VS 철학>의 저자 강신주 박사는 '마르크스의 실천적 철학'을 주제로 지난 9일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정치철학 특강 시즌2' 첫 강의를 열었다. 강 박사는 마르크스의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를 교재로 열린 이날 강의에서 "마르크스의 철학은 마르크스주의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마르크스를 "관념론과 유물론이라는 서양철학사계의 양대 정신을 규합해낸 철학자"라고 설명했다. 

마르크스 "인간은 능동적이면서 수동적인 존재"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는 마르크스가 1845년에 쓴 글로 그의 사후인 1888년에야 독일의 경제학자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의해 출간됐다. 글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마르크스는 이 글에서 독일의 철학자인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의 사상과 이론에 대해 그가 가졌던 생각들을 11개의 주장들로 정리했다.

"'테제'란 '주장'이라는 뜻입니다. '포이에르바하'라는 사람에 대해 마르크스가 자기 주장을 편 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의 특징은 마르크스의 저작들 가운데 가장 철학적인 내용이 담겨있는 글이라는 점이지요. 이 글을 잘 읽어보면 마르크스가 내놓았던 마르크스주의가 어떤 철학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지, 그가 인간을 어떤 존재로 생각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포이에르바하는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에 의해 집대성된 근대 관념론 철학을 인간 중심의 유물론으로 흔들어 놓은 철학자다. 관념론(Idealism)이란 실제의 일을 고려하지 않고 머릿속에서만 생각하여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마음과 정신이 세계를 형성하는 기초가 되는 관념론에 반해 유물론(Materialism)은 모든 정신 현상이 물질의 작용이나 그 산물이라고 이해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헤겔의 관념론을 포이에르바하가 유물론으로 비판했고, 마르크스는 그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다시 비판한 셈이다.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는 이런 구도로 쓰여진 책이다.

강 박사는 "마르크스는 책에서 '포이에르바하는 사유 대상들과는 현실적으로 분리된 물질적 대상들을 원했지만 인간의 활동 자체를 '대상적 활동'(Gegenständliche Tätigkeit, objective activity)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고 말했다. 사물이나 현실, 물질성을 대상이나 관조의 형식으로만 생각하는 유물론적 시각 아래서는 인간은 한없이 수동적일 뿐 주체성을 가진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마르크스 이전의 낡은 유물론들은 인간을 무언가 할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로 여기지 않았어요. 그저 세계의 일부분으로만 간주했지요. 여기에 마이크가 있죠? '이 마이크가 여기보다는 저쪽에 놓이는 것이 예쁘겠다'고 하는 것이 관념론입니다. 관념론은 우리 정신의 능동적인 부분이죠. 그래서 마르크스는 유물론적 사고에 관념론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인간이 가진 능동성이 필요하니까요. 인간은 수동적이면서 동시에 능동적인 존재잖아요? 마르크스가 '대상적 활동'이라는 개념을 얘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마르크스의 실천철학 핵심은 '대상적 활동'

강신주 박사가 '정치철학 특강' 2부 강의를 하고 있다.
 강신주 박사가 '정치철학 특강' 2부 강의를 하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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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에 담긴 11개의 주장 중 '대상적 활동'은 가장 먼저 등장한다. 강 박사는 "이 1번 테제가 가장 중요하다"며 "사실 2번, 3번, 4번으로 이어지는 뒷테제들은 1번 테제를 오해하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상적 활동'에서 '대상'은 영어로는 object입니다. 'object'란 어원적으로 '내 앞(ob)'에 '던저져(ject)'서 나의 활동을 막는 것을 의미하죠. 내가 나를 둘러싼 환경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대상'인 셈입니다. '대상'이 나를 둘러싼 현실적인 제약이나 조건이라면 '활동'은 내가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합니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모든 활동이 자신에게 저항적인 현실조건에 대해 행동하는 '대상적 활동'이라고 보았습니다."

강 박사는 "주어진 조건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의 생각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지만 주어진 조건을 변화시키려고 한다는 점에서 실천적이고 참여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마르크스의 실천적 철학은 '물질적인 것이 인간의 정신을 지배한다'는 식의 유물론을 넘어선다는 얘기다. 강 박사는 "마르크스를 보통 유물론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가 포이에르바하를 공격한 것은 포이에르바하가 완벽한 유물론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을 수동적 존재로 만들고 '이건 객관적 현실이야. 여기 적응해야 돼'라고 얘기를 해버리면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잖아요. 마르크스는 이게 답답했던 겁니다. 부르주아 사회에서 부르주아들에게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이 사회에 적응을 하는 상황이 말이죠. '현실적이다'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는 역사가 이뤄지지 않지요."

강 박사는 "물론 마르크스는 물질적 조건이 가지는 우월성을 포기하지는 않았다"고 전제하며 "하지만 그의 철학은 '유물론적 관념론' 내지는 '관념론적 유물론'이라는 복잡한 성격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강생들이 강신주 박사의 '정치철학 특강' 2부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수강생들이 강신주 박사의 '정치철학 특강' 2부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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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러한 마르크스의 철학은 왜 정작 주류 마르크스주의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을까. 그는 "마르크스주의자였던 프랑스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도입했던 중층결정(surdétermination)이란 개념에서 이러한 마르크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층결정이란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제약하고 규정한다는 속류 마르크스주의의 논리를 전복시킨 것으로 때때로 상부구조에서의 결정적인 개입이 결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는 개념이다. 강 박사는 "중국의 마르크스주의자 모택동 역시 알튀세르와 비슷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강 박사는 끝으로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기만 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라는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11번을 소개했다. 그는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인간의 상상력과 능동성을 긍정하던 마르크스의 태도는 이 11번째 테제에 잘 나타나 있다"고 말하며 강의를 마쳤다.


태그:#강신주, #정치철학특강, #마르크스, #유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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