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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본능적으로>라는 노래가 인기다. "처음 너를 본 순간 찰나의 전율이 느껴졌어…내 생애 최고의 사랑일지 미친 사랑의 시작일지 해봐야 아는 게 사랑이지~" 노래는 아무 이유 없이 본능적으로 이끌린 사랑을 일단 시작해 보자고 얘기한다. 여기 사랑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에서도 '본능'의 힘을 강조한 학자가 있다.

버트런드 러셀은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에서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욕구가 아닌 본능, 즉 충동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에 의하면 본능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소유에의 충동과 창조적인 충동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둘 중에 어느 충동을, 어떻게 표출하느냐에 따라 행동의 결과는 달라진다. 어떤 사회제도 아래 살고 있느냐에 따라 이를 표출할 수 있는 방법도 다르다. 최고의 사회제도는 인간의 충동이 폭력과 타인에 대한 억압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제어하면서, 창조성을 최대한 발산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의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버트런드 러셀의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 비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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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은 현대의 거의 모든 사상과 사회제도들이 오직 경제적인 욕구를 달성하는 것만을 중요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 국가들은 전쟁, 권력, 자본과 같은 소유에의 충동을 자극하고 이를 달성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 되도록 사람들을 유도한다. 무의미해 보이는 전쟁과 경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인간성과 창조에의 충동은 등한시된다. 결국 수동적으로 사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은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한 채 오로지 소유에의 본능에 따라 살아간다.

그는 설사 경제적인 풍요를 누린다 해도 이를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러셀이 볼 때 인간은 크건 작건 자신의 창조적 충동을 자유롭게 발산하며 능동적으로 살 수 있을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 이에 근거하여 그는 노동정책에 대해 노동 시간 단축과 임금인상 등의 사후적인 제도 외에 노동 자체를 만족스럽게 만들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인상적인 주장을 펼친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노동의 고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가를 얻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창의적 충동을 발산하며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는 현대의 교육제도 역시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요구하는 방향에 길들여진 획일적인 인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에 개인의 창조적 본능에 대한 존중은 담겨 있지 않다.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는 일정한 틀에 한 인간을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는 제도를 보장해야 한다. 이는 창조의 본능을 발산할 수 있는 자유와 기회, 다른 사람과의 연대가 증대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닌 다른 목적에 복종해야 하는 의무가 줄어들 때 가능하다. 나아가 이를 보전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스스로 그 소중함을 인식하고 지키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러셀은 이성의 역할 역시 간과하지 않는다. 이성은 본능이 가지는 무모함을 조절하여 우발적인 행동을 제어한다. 본능이 행동하게 하는 힘을 제공한다면, 이성은 그 힘에 바람직한 목표를 제시하고 이끈다. 하지만 열정이 사그라지면 아무리 의미 있는 행동도 계속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며, 열정을 만들어 내는 창조적 본능의 힘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러셀은 육체적인 억압만큼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생명력이 고갈된 채로 여생을 무덤을 향해 가는 지루한 여정으로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해 지금 당장 되돌아보기를 촉구한다.

책은 1916년 저자가 강연했던 내용을 엮어 출간되었다.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한국에서는 러셀이 개선하기 위해 그토록 분투했던 일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를 보면 과연 '창조에의 충동'이 보장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우리가 계속해서 소유에의 충동에만 집착한다면 얼마안가 이런 상황마저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창조의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나날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민주언론시민연합 소식지 '날자꾸나 민언련' 1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 행복한 사회 재건의 원칙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비아북(2010)


태그:#버트런드 러셀,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본능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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