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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기행 여섯째 날(8월17일)은 하얼빈에서 보냈다. 오전에 '731부대 기념관'과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둘러보고 나니까 12시45분이었다. 점심을 먹기 무섭게 버스에 올라 오후 2시쯤 송화강(松花江) 북쪽 끝에 위치한 섬 '태양도(太陽島) 공원'에 도착했다.

 

송화강을 사이에 두고 '스탈린 공원'(斯大林公園)과 마주 보고 있는 태양도 공원에는 용과 봉황 등 각종 형상물과 누각, 연못, 아기자기한 집들이 자신의 미를 뽐내고 있었다. 아늑하게 펼쳐지는 녹색 정원을 겁도 없이 돌아다니는 다람쥐를 보니까 어렸을 때 상상했던 꿈의 나라가 떠올랐다. 

 

태양도는 하늘의 해처럼 둥글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제정러시아 시대에 섬 전체가 휴양지로 개발된 곳으로 러시아 상류층들이 휴양을 목적으로 조성했단다. 그래서인지 연길, 용정, 화룡, 훈춘 등 항일유적이 많은 도시의 공원들과 느낌이 사뭇 달랐다.

 

   

태양도 공원에도 윗도리를 벗어 던지고 거리를 활보하거나 기념사진을 찍는 일명 '붉은 돼지'들이 많았다. 공원에 설치한 시설물보다 다양한 모습의 그들이 더 시선을 끌었는데, 인상을 찌푸리거나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없었다.   

 

하얼빈은 한국의 서울과 공통점이 많았다. 인구도 1천만으로 서울과 비슷했다. 청와대가 한강 이북에 있는 것처럼 하얼빈도 시 정부가 송화강(1960km) 위쪽에 있고, 한강 이남에 부자가 많은 서울처럼 하얼빈도 송화강 남쪽에 부자가 많다고 했다.

 

'송화강', '스탈린 공원'에서

 

장백산에서 발원해서 길림시를 거치는 송화강은 흑룡강성(헤이룽장성) 최대의 하천이며 중국에서 장강(長江), 황하(黃河)에 이어 세 번째로 길고, 원시림이 무성한 강 유역은 토지가 비옥하여 농사가 잘되고 여름보다 겨울이 더 아름답다고 한다.

 

 

태양도와 스탈린 공원 주변은 거대 휴양지이자 관광지였다. 송화강의 높고 푸른 하늘에는 케이블카들이 겨울 스키장의 리프트처럼 오르내리고, 잔잔하게 흐르는 강에는 유람선이 평화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겨울에 눈 전시회가 열린다는 설명이 귀를 솔깃하게 했다. 하얀 눈꽃세상으로 변해있을 하얼빈의 겨울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특히 태양도 공원과 조린공원, 송화강 등에서 빙등제와 빙설제가 이듬해 2월까지 열린다는 설명은 안타까움만 더했다. 마음이야 겨울탐사 때 또 오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후 3시 50분 태양도 공원에서 유람선을 타고 송화강을 건너 스탈린 공원으로 건너왔다. 스탈린 공원은 하얼빈시 각 예술단체 회원들이 일본군을 쫓아내는데 공이 큰 스탈린을 치하하는 다양한 공연을 매일 개최한다고 했다.  

 

최저 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겨울이 되면 송화강 강수면에 얼음이 형성되는데 집집마다 얼음으로 다양한 모양의 투명한 갓을 만들어 입구에 얼음 초롱을 내건 모습이 장관이라는 가이드 설명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조린공원'에서 다시 만난 안중근

 

만주족 언어로 '그물을 말리는 곳'을 뜻한다는 하얼빈은 소규모 어민 가정이 모여 사는 한가로운 어촌마을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19세기 말 제정 러시아가 철도를 건설하면서 외국인 거주자가 생겨났고, 이후 유례없는 경제·문화 발전을 이루면서 상업, 교통의 요충지로 발돋움했단다.

 

가이드는 조선인이 처음 하얼빈에 정착한 시기도 19세기 말이었다며 전국적으로 200만이 넘는 조선족 가운데 40만 가량이 하얼빈에 거주하고 있으며 국제관광도시라고 설명했으나 우리에게는 안중근 의사가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던 도시로 더 알려졌다.

 

 

박영희 시인을 따라 송화강변 북쪽 끝에 위치한 '조린(兆麟)공원'을 찾았다. 공원은 잔디와 숲이 잘 어우러져 공기가 맑고 시원했다. 박 시인은 조린공원의 유래와 안중근 의사 글이 새겨진 비석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이 공원은 1900년에 조성한 하얼빈 최초 공원으로 명칭은 '도리(道里)공원', '하얼빈공원'이었어요. 당시 사람들은 혁명열사 이조린(李兆麟)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그분의 유해를 이곳에 안장하고 장례식을 치렀으며 1946년 정식으로 '조린공원'으로 바꾸었습니다." 

 

공원 잔디에 세워진 비석 앞과 뒤에는 안중근 의사의 붓글씨 '연지'(硯池)와 '청초당'(靑草塘)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는데, 약지가 잘려나간 붉은색 손바닥 도장은 잠시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박 시인은 "안중근 의사의 글이 새겨진 돌비석은 8년 전 어렵게 세워졌고, 앞과 뒤에 음각으로 새겨진 '硯池'와 '靑草塘'은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벼루의 앞쪽 움푹 팬 부분을 '못'으로 표현한 연지는 '검은 연못'을, 청초당은 '푸른 연못'을 의미한다"며 "음과 양으로, 어둠과 밝음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설명이 끝나는 순간 '조국의 독립'과 '일제 억압'이라는 상반된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소피아 성당'과 이색적인 거리

 

 

1907년 러시아 사람이 지었다는 소피아 성당(높이 53,35m)의 뾰쪽한 지붕들은 그림으로만 봐오던 이란의 왕궁과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전을 떠오르게 했다. 성당 건물은 극동지역에서 최대 규모이며 '소피아'는 순결, 청결을 의미한다고.

 

1996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보호되고, 1997년 성당의 내부까지 예전 모습으로 복원하여 '하얼빈 건축 예술관'으로 바꿔 하얼빈의 역사가 담긴 흑백사진을 전시하고 있다고 하는데 시간이 없어 관람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오후 4시부터는 선물도 사고 쇼핑도 하는 자유 시간이었다. 인솔자는 쇼핑할 때는 소매치기를 조심하고, 에누리는 무엇이든 빠뜨리지 말고 해야 하며, 가격이 결정됐을 때 지갑을 열라고 당부했다. 특별히 구입할 선물은 없었지만, 혹시 몰라서 메모해두었다.

 

자유 시간을 이용해 사우나를 했는데 요금이 28위안으로 우리와 비슷했으나 시설은 엉망이었다. 특히 냉탕이 없으니까 땀을 식힐 수 없어 불편했는데, 왜 냉탕이 없는지 물으니까 물이 귀해서 그런다고 했다. 물이 귀해도 그렇지, 관광객을 상대하면서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뜨거운 물에 담그고 나오니까 안 한 것보다는 개운했다.

 

 

사우나에서 땀을 빼고 밖으로 나와 가이드와 함께 1450m의 보행자 전용도로를 거니는데 거리의 화가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하고 의자에 앉아 있는 젊은이가 무척 자유스럽게 보였고, 도로 거리 양쪽으로 우뚝우뚝 서 있는 건물들의 다양한 건축미와 식당, 바, 상가의 화려한 간판들은 국제도시를 방불케 했다.

 

이국적인 거리로 알려진 '중앙대로(中央大街)'는 도심지에서 송화강까지 이어지는 메인스트리트였다. 길 양쪽으로는 러시아와 유럽풍 건축물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각자 독특한 매력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하얼빈은 '중국 속의 모스크바', '중국 속의 유럽'으로 불리는 모양이었다.

 

오후 6시가 넘어가니까 일행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곧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오후 8시40분발 단둥행 야간열차를 타야 하기 때문이었다. 며칠을 돌아다녀도 다 둘러보지 못할 하얼빈을 몇 시간에 걸쳐 구경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맛만 살짝 보고 떠나는 아쉬움도 좋은 추억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덧붙이는 글 | 중국 관련 내용은 현지 가이드와 박영희 시인의 설명, ‘2010만주기행’ 자료집을 참고했습니다. 


태그:#하얼빈, #태양도공원, #안중근, #송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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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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