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미 FTA 재협상 기조를 '전략상의 이유'로 국민에게 숨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가 대통령 훈령을 어기고 한·EU FTA 협상을 사실상 단독으로 진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주선 민주당 의원은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외교통상부에서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EU와의 3년여에 걸친 협상과정에서 FTA 추진위원회는 협상 출범을 전후로 단 두 차례 밖에 열리지 않았고 FTA 민간자문회의 역시 가서명 이후 열렸던 회의를 제외하면 단 두 차례 밖에 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외교부가 'FTA 추진위원회나 대외경제장관회의는 별도 회의록이 없다'면서 회의록을 제출하지 않았다"고 정부의 '밀실 행정'을 꼬집고 나섰다.

 

박 의원은 이와 관련 "국가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한·EU FTA 협상과 국내 보완 대책을 수립하는 회의에서 회의록조차 작성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후 책임 회피를 위한 밀실 행정의 전형"이라며 "한·EU FTA 특위를 조속히 구성해 국회가 검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이 지적한 FTA 추진위원회와 민간자문회의는 대통령 훈령 제224호인 자유무역협정 체결절차 규정에 명시된 사항이다.

 

지난 2004년 6월 제정, 지난 2008년 8월 일부 개정된 이 규정은 FTA 협상 과정에서 "FTA 협정 체결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국민의 이해와 참여를 제고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FTA 협상에서 이 규정을 지켜 협상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겠단 의도다.

 

하지만 통상교섭본부의 한·EU FTA 협상은 이 같은 훈령을 거의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민간자문위원회, 협상 출범 이후 단 세 번 열려

 

 

우선 협상 절차를 설명한 제4장 제19조(협상안의 심의 등)에 따르면 '(FTA 추진)위원장은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개시가 결정되면 추진위원회 회의를 소집하여 중요 협상안에 대하여 심의하고,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대외경제장관회의에 심의·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아울러, 같은 장 제21조를 통해 '위원장은 협상의 중요 진행상황을 국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위원장은 관련 이해당사자 및 국민에게 적절한 방법으로 협상의 중요 진행상황을 수시로 설명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박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FTA 추진위원회는 2007년 4월과 7월 단 두 차례 밖에 열리지 않았다. 또 회의 횟수만이 아니라 규정으로 명시된 국회 보고 의무도 사실상 방치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한·EU FTA는 지난 10월 서명 직후 야당로부터 '밀실 협상'이라고 강한 지탄을 받았다.

 

"위원장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추진위원회의 심의 전에 민간자문회의를 개최하여 협상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자문을 요청할 수 있다(제4장 19조 2항)"고 명시된 민간자문회의도 마찬가지다.

 

민간자문회의는 한·EU FTA 출범 이전 1회(2006.12.6), 출범 이후 3회(2007.6.29, 2008.11.7, 2009.10.23) 밖에 열리지 않았다. 지난 10월 15일 양측 협상대표의 한·EU FTA 서명이 이뤄진 점을 감안할 때 출범 이후 열린 회의는 단 두 차례에 불과하다.

 

통상교섭본부의 협상안을 심의·감독하고 자문할 수 있는 기구가 3년 동안 각각 두 차례 밖에 열리지 않은 것은 이들 기구가 사실상 협상과정에서 '있으나 마나'한 기구로 치부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박 의원은 이에 대해 "세계 최대 경제권인 EU와의 FTA 협상에 있어 협상 막바지에 위원회나 자문위원회 등 회의체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통상교섭본부가 독단적으로 협상을 체결했다는 단적인 증거"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또 "한·미 FTA는 2006년 1차 협상 직후 특위를 구성해 1년 6개월 간 국회 차원의 검증절차를 거친 반면 한·EU FTA는 특위 구성안이 제출된 지 18개월째지만 국회 운영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며 한·EU FTA 특위 구성을 강하게 촉구했다.

 

회의록도 없고 참여인사는 직함만 공개... "책임 회피 위한 밀실 행정"

 

FTA 추진위원회와 대외경제장관회의의 '밀실 회의'도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박 의원 측의 관련 기구 회의록 요청에 대해 "FTA 추진위원회는 별도의 회의록이 없다", "외교부는 한·EU FTA 국내보완대책 관련 대외경제장관회의(2010. 9. 1) 회의자료나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FTA 추진위원회와 민간자문회의의 참여인사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외교부는 박 의원의 명단 요청에 각 회의기구의 참여 인사 직함만 공개했다. 예를 들어 민간자문회의에 참여하는 학계 인사로 "서울대(3)·이화여대(2)·연세대·고려대·경북대·부경대 교수"라고 소개한 것.

 

이와 관련, 박 의원 측 관계자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명단 요청에 직함만 보내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한·EU FTA에 대한 학계와 시민사회, 야당의 대응이 늦었던 것은 이처럼 협상이 철저히 밀실에서 진행됐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FTA 추진위원회는 2010년 현재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위원장으로 15명의 각 정부 부처 인사로 구성돼 있다. 민간자문회의는 의장인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경제계 및 업계인사 12명, 학계 및 연구기관 인사 15명 등 총 28명으로 구성돼 있다.  


태그:#한 EU FTA, #박주선, #김종훈, #통상교섭본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