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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투사부일체>의 한 장면.
 영화 <투사부일체>의 한 장면.
ⓒ (주)시네마 제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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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가 군대 신병훈련소에 온 건가?'

'떡메 체벌', 그리고 학생들에게 일명 '신체포기각서'라 불리는 순응 서약서를 받아 물의를 일으킨 수원 A고 정문에 들어서자 갑자기 이 느낌이 들었다. 

똑같은 머리 스타일, 금단의 2cm

22일 정오께, 학교 점심시간. 여러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축구와 농구 등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 얼굴은 모두 달랐다. 하지만 머리 스타일은 같은 날 같은 이발사가 자른 것처럼 똑같았다. 두피에서 2cm. 이 길이를 넘어선 학생들은 찾기 어려웠다.

학생들은 그 2cm를 '죽음의 저지선' '금단의 2cm'로 표현했다. 운동장 한켠에서 쉬는 학생에게 다가가 슬쩍 물었다.

"이야, 아직도 이런 학교가 다 있네요. 군대에 온 것 같아요!"
"학교 규정이 너무 '빡세서요'"

학생은 내 얼굴을 살핀 뒤 머뭇거리며 말했다. 내가 "수원에 있는 고교 중 머리가 제일 짧은 것 같다"고 말을 받았다. 학생은 "아마도"라며 멋쩍게 웃었다. 왼손으로는 짧은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시 정적.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내가 혼잣말로 "완전히 군대구만… 군대" 말했다. 그러자 학생이 말했다.

"군대요? 요즘 군대는 때리지 않잖아요. 여기는 '떡메' 소리가 끊이지 않아요"

맞다. 요즘 군대 안 때린다. 제도적으로 사라졌다. 혹시 폭행 사건이 벌어져도 "교육적 차원에서 때렸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원 A고는 일명 '떡메'로 불리는 몽둥이로 학생들을 때리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 구타가 '뉴스'가 아니었던 것이다.

수원 A고교에서 몽둥이로 매질을 당한 B군의 엉덩이와 종아리에 시퍼런 멍이 들었다.
 수원 A고교에서 몽둥이로 매질을 당한 B군의 엉덩이와 종아리에 시퍼런 멍이 들었다.
ⓒ 학부모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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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군대는 때리지라도 않죠"

<오마이뉴스>가 21일 저녁, 수원 A고 체벌 사건을 다룬 기사 "학생에게 '각서' 받고, 졸았다고 몽둥이 47대 '찜질'"를 보도하자 한 누리꾼이 이런 댓글을 달았다.

"졸업생인데, 한 번에 40~50대 체벌은 우습답니다. 손발로 맞기도 하고 마대자루 이건 아무 것도 아니랍니다. 학교에서 쓰이는 체벌 도구 아직도 '무자비'라고 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축제 때 한 번 가보세요. 제가 다닐 때까지만 해도 무슨 체벌이 자랑이라도 되는 것 마냥 '사랑의 매'를 전시까지 했었지요.(중략) 뭐 동창들 몇 명은 '야, 너 OO고 다시 갈래, 아니면 군대 다시 갈래?' 하면 군대 간다고 한답니다." - 크크대마왕

이뿐만이 아니다. 트위터에서도 A학교 졸업생들이 "그 학교 원래 체벌로 유명하다" "나 때도 심했는데, 아직도 그렇군요" "수원에서 체벌이 제일 강하다" 등등의 말이 쏟아졌다. 졸업생들이 밝힌 '떡메의 추억'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22일 점심시간에 만난 한 학생은 "이 학교에 입할 때부터 체벌이 심하다는 걸 알고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가끔은 모멸감이 느껴질 정도"라며 "학교에는 '맞아야 대학에 간다'는 말이 하나의 상식이나 전설로 굳어져 있다"고 토로했다.

또다른 학생은 "이번에 심한 매질을 한 선생님은 학교에서 오래 근무하지 않은 기간제 젊은 선생님이었다"며 "그 선생님이 원래 폭력적이어서 그랬겠나, 이 학교의 억압적 문화가 선생님에게 폭력을 강요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수원 A고교는 두발 규제, 야간자율학습 강제, 교사 매질 등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금지하는 모든 걸 실시하고 있다. 재학생들과 졸업생들 말대로 수원에서도 체벌로 유명한 학교가 바로 수원 A고교다.

전국 최초로 학생인권조례를 추진한 경기도교육청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22일 날이 밝자마자 감사팀을 A고교에 급파했다. 도교육청은 "A고교가 체벌로 유명한 학교인 만큼 철저한 조사를 해서 문제를 바로 잡겠다"며 사태 해결에 굳은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상곤 교육감이 5일 오전 경기도 수원 청명고에서 열린 '경기도 학생인권 조례 공포식 및 학생인권의 날 선포식'에서 학생대표들과 함께 '경기도 학생인권 조례' 공포를 선언하고 있다.
 김상곤 교육감이 5일 오전 경기도 수원 청명고에서 열린 '경기도 학생인권 조례 공포식 및 학생인권의 날 선포식'에서 학생대표들과 함께 '경기도 학생인권 조례' 공포를 선언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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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로 유명한 수원 A고... 졸업생 "차라리 군대를 다시 가겠다"

평등학부모회의 한 관계자는 "A고교에서 과연 학생인권조례가 제대로 시행되는지 똑똑히 지켜볼 예정이다"며 "경기도에서는 'A고교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안착되면, 다른 학교는 볼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도교육청의 감사를 기다리는 교사들과 학교 관리자들의 표정은 어떨까. J교장의 집무실에 들어가려면 행정실을 거쳐야 했다. 행정실장은 "감사 준비로 학교가 정신이 없다"며 교장 면담 불가를 밝혔다. J교장은 21일부터 전화를 받지 않는 등 입을 닫았다. 대신 B교감이 나왔다.

B교감은 "감사가 진행되는 만큼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없다"며 "궁금한 사항은 교육청 감사팀에게 문의하라"고 말했다. 다른 교사들 역시 굳게 입을 닫았다. 한 교사는 "학교마다 전통이라는 게 있고, 이 학교는 그렇게 체벌을 하며 명문으로 성장했다"며 "유감스런 일이긴 하지만, 늘 있던 체벌이 왜 이제 와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야간 자율학습이 시작되기 직전. 다시 학교 주변에서 학생들을 만났다. 3학년 B학생은 "나는 곧 이 학교를 졸업하지만, 과연 이 학교에 학생인권조례가 실시될지 의문이다"며 "지각하면 맞고, 졸면 맞고, 머리 길면 맞고… 고교 3년은 구타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학교의 문화를 이해하는 학생들도 있다. 2학년의 C학생은 "학교의 체벌은 결국 우리를 위한 일이다"며 "교사들과 학교의 문화에 대해 큰 불만이 없다, 체벌이 없으면 학교가 제대로 운영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 A고 교문 넘나

A고교의 역사는 50년이 넘는다. 80년대 수원에서 명문으로 통했다. 물론 여기서 명문은 서울·연세·고려대에 많은 학생을 보냈다는 의미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신도시 개발로  고교가 늘어나고 학교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명문 A고'의 이름값은 과거에 비해 많이 퇴색한 것도 사실이다.  

A고교 한 관계자는 "강한 체벌로 명문의 지위를 유지하려 했던 측면이 있다"며 "이제는 체벌하지 않고도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둑어둑 저녁이 찾아올 무렵. 교문을 나서는 1학년 K군은 "어젯밤 생활인성부장(옛 학생부장) 선생님이, 구타로 논란이 됐던 두 학생을 불러 진술서를 쓰게 했다"며 "학교 문화가 과연 바뀔지 의문이다"고 쓰게 웃었다.

학생인권조례는 교문을 넘어 A고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도교육청은 "진실이 밝혀지면 이번에는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태그:#체벌, #매질, #떡메, #학생인권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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