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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사람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 말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처음엔 좀 의외라고 생각했다. 다른 도를 책임지고 있는 도지사가 충북의 한 군인 옥천의 작은 행사 강연에 연사로 온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10월 15일부터 17일까지 충북 옥천에서 지역 문화제 행사가 있었다. 올해가 8회째라고 하니 그 연륜이 결코 짧은 것이 아닌 문화제이다. 이름은 '옥천언론문화제.' 여기에 광역단체장으로는 처음일 김두관 경남 지사가 언론문화제의 한 프로그램인 강연회 연사로 초청된 것이다.

충북 옥천과 김두관 지사는 양쪽 다 나와는 인연이 깊다. 먼저 옥천은 내가 이곳 김천의 교회에 부임하기 전 목회한 곳이다. 8년 동안 그곳 사람들과 깊은 사랑을 나누어서 나에겐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나는 농촌 목회의 외연을 넓힌다는 생각으로 지역 시민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옥천 발전을 밑으로부터 추동하려고 애썼었다.

김두관 지사는 과거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한 사람으로 나와는 동지적 관계에 있다. 많은 사회 활동가들이 자신의 운동 노선을 바꾸어서 극우에서 극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김 지사는 시종일관 민중과 함께 하는 처음 마음을 잃지 않고 있어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나는 이번 옥천언론문화제의 김 지사 강연에는 꼭 참석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다. 김 지사는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경남도시사로 당선된 직후 나와 통화하면서 취임식 끝나고 시간을 내서 한 번 창원으로 모시겠다는 말을 했었다. 그리고 얼마 전(10월 12일)이었다. 아마 그는 이런 내용을 말하려고 했던 것 같다. 옥천 행사에 참석하는 길에 김천에 들려 식사를 함께 하자는. 하지만 내가 선수를 쳤다. 나도 강연에 참석하려고 하는데, 옥천에서 만나 식사를 하되 몇 사람 동석시키자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옥천언론문화제 추진 주체들이 있고 김 지사는 그 일정의 하나인 강연회 연사로 참석하는데, 그들과 무관하게 자라를 만든다는 것은 나 개인적으로 마음 편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옥천군 김영만 군수와 박찬웅 의장 그리고 나와 가깝게 지내는 이창수씨와 정철종 원장이 참석 대상자로 정해졌다. 옥천신문 이안재 대표와 식당 소재지 안터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오한흥씨가 식당을 예약하는 등의 실무를 맡아주었다. 이곳의 정확한 행정구역 명칭은 충북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이다. 흔히 안터마을로 불리는데 이곳은 여름의 반딧불, 겨울의 눈썰매 등 자체 마을 축제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마을인 만큼 '리(里)'지만 생활 조건이 그렇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갖춰져 있는 농촌 모범 마을이다. 수퍼도 있고 이발관도 있으며 농기구 수리 센터도 눈에 띄었다. 여기에 우리가 예약한 칼국수 집도 빼놓을 수 없다.

식당 이름이 '군동칼국수'이다. 이곳은 특별히 김 지사가 한 번 이용한 일이 있는데, 그의 제안으로 이 식당을 우리의 모임 장소로 정했다고 한다. 이창수씨를 관성회관 앞에서 만나 정철종 원장 차를 타고 우리는 약속 장소로 갔다. 시간이 좀 여유가 있는 것 같기에 우리는 단장을 해서 개방하고 있는 육영수 생가를 들렸다. 육영수씨가 기거했던 방이며 안채와 사랑방 등 당시로서 부잣집의 위용을 엿볼 수 있는 한옥이었다. 차고와 사진 영상 시설이 있었던 방 등에서 육씨의 부친 육종관의 부(富)에 기초한 취미벽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옥천에 있을 때 육영수 생가 복원에 대해 찬반 토론회가 옥천신문 주최로 있었는데, 나는 반대 토론자로 나서서 생가 복원을 반대하는 주장을 펼쳤던 적이 있어 쓴 웃음이 나왔다.

안터 식당에 닿으니 김영만 군수와 이안재 대표가 먼저 와 있었다. 김영만 군수는 옥천군의 크고 작은 행사로 몹시 바쁜 시간이지만 미리 와서 기다리는 성의를 보여 주었다. 잠바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늘 움직이는 군수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후 박찬웅 군의회 의장이 도착했고 이어 김두관 지사가 수행원들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나는 김두관 지사를 보면서 언뜻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가 군대의 야전 사령관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 말이다. 아무리 지방자치를 외치고 지역 언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도지사라고 해도 그는 310만 도민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권위 의식을 즐기는 도지사라면 맘껏 힘을 과시할 수도 있는 자리에 그는 앉아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의전과 형식은 아예 찾아볼 수도 없다. 수행원 두 명과 타고 온 차도 고급 세단이 아니다. 밴 승용차는 전시에 산 넘고 물 건너 명령이 떨어지면 어느 곳이라도 갈 것 같은 비상 차와도 같이 여겨졌다. 탁상 행정은 그가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어느 곳이든 문제가 발생하면 직접 현장에 가서 눈으로 확인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행정가이다.

그가 마을 이장에서 시작해서 군수와 참여정부의 초대 행자부장관을 지내면서 늘 강조한 것이 현장 확인 행정이었다. 그는 다른 자치단체에서 부러워하는 경남도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정치 1번지' 모토를 여러 자치단체에서 유행처럼 내 걸고 있을 때, 그는 도정(道政)을 펼치면서 '번영 1번지'라는 한 발 앞 선 구호를 외칠 수 있는 것도 이런 현장 감각에서 오는 것일 것이다.

음식이 나왔다. 면 소재지도 못 되는 농촌의 한 '리'에 위치안 식당도 도백을 맞이하느라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았다. 예약한 식탁엔 사람 숫자대로 수저와 물 컵 그리고 물수건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우리가 주문한 메뉴는 버섯전골이었다. 오한흥 이장이 음식에 대해 부연 설명을 했다. 버섯은 인근 산에서 직접 채취한 것이며 조미료를 쓰지 않고 만든 담백한 영양식이라는 내용이었다.

김 지사는 공식적으로 옥천을 다섯 번 방문했다고 한다. 주로 옥천신문과 관계된 방문이었다. 그만큼 지역 언론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좌로 보였다. 노무현 참여정부 출범 직후 행자부 장관일 때 옥천신문 주민강좌 강사로 왔던 것도 그 하나이다. 힘 있는 부처의 장관이 지방 군 단위 신문사 주최 주민강좌에 강사로 왔다고 해서 모두들 의아해 했던 것이 엊그제 같다.

강연 장소인 관성회관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4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강당에 보이는 숫자는 손을 꼽을 정도였다. 강연이 시작될 땐 100여명 남짓한 사람들이 앞자리를 중심으로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강단에 오른 김 지사는 숫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술 더 떴다.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 주말에 산으로 들로 놀러 나가고 싶지 이런 딱딱한 강연회 오고 싶겠느냐면서 오늘 강연을 듣기 위해 온 분들이 비정상이라는 말로 강연 분위기를 한층 누그러뜨렸다. 그의 강연 내용은 몇 가지로 나누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지금까지 걸어온 그의 정치 역정을 잔잔히 회고 했고, 그 과정에서 국가의 진정한 발전과 그 발전의 열매를 지역이 골고루 나눌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늘 생각하며 정치를 해왔다고 했다. 그리고 강력한 중앙의 권력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것에 많은 비중을 두고 일해 왔다고 했다. 중앙의 메이저 신문에 대항할 진정한 세력은 지역 언론이라는 강조도 잊지 않았다.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코드가 맞은 부분도 바로 이것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중앙의존도가 높은 나라도 없다는 것이다. 중앙은 점점 비대해지고 지방은 상대적으로 더 쇠퇴해 가는 이런 현상은 국가 장래에 암운(暗雲)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행정 수도 이전 문제를 제기했고 중앙부처에서 하던 일을 지방 자치단체로 이양하는 작업을 추진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다시 원상 회복의 길을 걷고 있어 마음 아프다고 했다. 지난 정부의 치적을 몽땅 무화시켜버리는 정책을 현 정부는 수립 집행하고 있다며 서운한 마음을 피력했다. 이것은 그가 한 일이 중단되었다는 개인적인 서운함이라기보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낭비에 대한 안타까움일 것이다.

그가 소개한 경남도에서 준비하고 있는 몇 가지 정책은 선진적인 것 같았다. 그 중 하나가 '지역 언론 지원조례'이다. 우선 연 10억의 예산을 책정해서 열악하기 그지 없는 지역 신문들을 지원해 주겠다는 것이다. 강연이 끝나고 한 사람이 질문했다. 지역 언론을 재정으로 지원한다면 거기에 대한 반대급부도 도(道)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과거 독재 정권들이 즐겨 사용했던 것처럼 언론 길들이기의 폐단이 없겠는가의 질문이었다.

김 장관의 답은 명쾌했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며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원칙이 정해져 있다고 했다. 이런 조례를 도지사의 의지로 만들게 된 것도 과거 그의 경험이 반영된 것일 것이다. 그는 주간 <남해신문>을 창간해서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8년 여 활동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런 사업도 상당히 앞선 도정(道政)이다. 엄마 없이 아빠와 딸이 단칸방에 사는 가구를 선정해서 방 두개 딸린 집을 빌려주어 어린 딸들에게 자유로운 주거 공간을 마련해 준다는 것이다. 그 이름이 '전셋집 마련 프로젝트 행복하우스'로 되어 있는데,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성 압박의 위험에 이중으로 노출되어 있는 여아들의 생활권을 도에서 보호한다는 의미는 현실의 필요를 잘 반영한 정책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사업들(지역언론 지원 조례나 행복하우스 프로젝트)은 다른 시도에서도 벤치마킹할 만한 것들이고, 그렇게 된다면 진정 소외받고 있는 도민을 위하는 행정으로 경남도의 위상을 높여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김두관 지사와 노무현 대통령은 닮은 점이 많다고들 한다. 그래서 그를 리틀 노무현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국민이 노무현을 좋아하는 것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그는 이 사회에 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난공불락과도 같은 주류의 물꼬를 다른 곳으로 틀려고 한 대통령이었다. 다시 말해 주류 비주류를 따지지 않고 의식이 바르고 실력이 있으면 누구나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비대화된 서울 중심의 국가 경영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려 했으며, 지방 사람들도 자기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보려고 했던 것이다. 절대 권위를 무너뜨려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도 국민들과 친근한 관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대통령도 별종이 아닌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낀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유일하지 않았을까 싶다.

김두관 지사가 관례를 깨고 밴 차를 몰고 200여km를 달려 옥천까지 온 것도, 도중에 마음에 두고 있던 나에게 식사를 함께 하자고 연락한 것도, 옥천에서 몇 사람이 모여 작은 시골 마을 식당에서 우리 음식을 기쁘게 먹은 것도 이런 과거 권위주의로부터의 탈피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강원도 지사로 일하는 이광재 지사가 어느 시골 군의 6급 공무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애로사항을 청취한 것이 언론을 탔던 적이 있다. 관례에 비추어 있을 수 없는 일을 도지사가 했다고 해서 여러 언론에 회자되었었다. 이런 일이 정치 지도자들에게 일상사가 되어야 한다는 바람도 그들 보도 속에 담겨 있었다. 김두관 경남도 지사도 이런 국민들의 바람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김두관 지사가 이끌고 있는 경남도가 유독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개발 사업에 반기를 드는 것 같이 보여 안타깝다. 국가의 시책에 협조해야 할 광역단체장이 지나친 행동을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한 그의 입장은 확고하다. 중앙 정부가 국민 전체를 위해 검증된 정책을 가지고 있을 때 어느 시도에 뒤지지 않고 적극 협조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반대하는 것은 광역단체의 고유 기능이라는 것이다. 4대강 개발 사업은 국민 70%가 반대하고 다대수의 환경 생태학자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당대의 편리함만으로 개발을 할 경우 후손들이 입을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지사로서 또 양심 있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초자치단체장은 자신이 맡고 있는 시·군민을 하늘같이 받들 줄 알아야 하며 광역단체장은 또 시·도민의 유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 나아가 대통령도 다른 것이 아니다. 국민의 바람을 잘 읽고 그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 자기 개인의 정치적 입장 관철을 위해 욕심을 부리다가 불행의 길을 걷는 전직 대통령들을 많이 보아왔다. 2012년에는 또 대통령 선거가 있을 것이다. 자천타천으로 많은 사람들이 후보군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그 중 진정 국민을 하늘같이 받들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대통령도 국민과 의사가 잘 소통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하늘이 내린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국민과 친근한 사람, 국민을 위해서라면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섬길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역대 대통령 중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국민의 바람에 가까이 있었던 사람이다. 그는 서민 출신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서민을 위한 자기 철학이 너무나 분명했다. 지금 우리의 정관계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권위주의 체계와 미래 탈권위주의의 체계가 함께 섞어 있다. 세계 속의 대한민국울 꿈꾸며 국가의 진정한 발전을 바란다면 과거의 구태의연한 권위주의 정치 체계는 하루 바삐 청산되어야 한다. 대신 국민이 친구처럼 느낄 수 있고, 국민이 진정 신뢰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김두관의 지난 온 행적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나는 정치꾼이 아닌 정치인 김두관이 이런 공간을 메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갖는다. 이것은 나만이 갖는 기대치가 아닐 것이다.


태그:#김두관, #경남도지사, #옥천언론문화제, #옥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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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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