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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자아_1 | 마네킹의 모습으로 만난 자아

지난 9월 4일부터 12일까지 열렸던 헤이리의 가을 판페스티벌에서 헤이리에 기반을 둔 작가들이 참여한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헤이리 미술전'이 그것이었습니다. 각자가 일 년간 몰두해온 생각을 내보이는 전시였습니다.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천호균 선생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헤이리 미술전에 헤이리 몇 분 작가들의 작품을 직물에 프린트하는 작업을 하고자 합니다. 아들에게 젖 물린 아프리카 여인의 이미지를 받을 수 있을까요?"

헤이리미술전이 오픈된 날 '논밭갤러리'를 방문하고 그곳에 디스플레이된 천 선생님의 그 기발한 작품을 보고 유쾌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BIG HEYRI'라는 제목의 그 작품은 다양한 성향의 작가의 작품을 티셔츠에 프린팅한 다음 마네킹에 입혀 디스플레이하고,  마네킹의 얼굴은 작가의 얼굴 사진들을 러프하게 프린트하여 씌웠습니다.

천호균선생님의 'BIG HEYRI'
 천호균선생님의 'BIG HEYRI'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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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천 선생님께서는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그 개성을 살리면서도 조화된 큰 헤이리를 이루어가자는 메시지를 담은 듯했습니다.

제 작품이 프린트된 제 얼굴의 마네킹을 보면서 저는 새로운 저를 대면하는 것 같았습니다. 조금은 낯선……. 아마 종종 저를 대하는 이웃들도 때로는 이처럼 낯선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천호균 선생님의 'BIG HEYRI'는 저를 좀 더 도스르고 낮추어서 더 친숙한 모습으로 다가가야하겠다,는 반성의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했습니다.

마네킹의 모습으로 만난 자아
 마네킹의 모습으로 만난 자아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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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자아_2 | 문리적 노화와 현실인식 사이의 괴리

지난 9월 4일부터 12일까지 열렸던 헤이리의 가을 판페스티벌에서 관객들에게 흥미로운 탐방이 될 수 있었던 또 다른 프로그램은 '오픈스튜디오'였습니다.

헤이리에 거주하는 15인의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업실을 개방하여 방문객들을 맞는 프로그램이었지요. 그 공간을 탐방하는 것뿐만 아니라 작가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습니다.

저는 헤이리를 돌면서 축제프로그램들을 살피는 기회에 '공스튜디오'에 들렸습니다. 공영석 선생님은 근엄한 모습으로 스튜디오를 지키며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방문객들로부터 사진에 대한 질문도 받고 때로는 공 선생님이 그 분들을 배경지 앞에 앉혀서 인물사진을 촬영해 주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니터에 그 사진을 띄워서 바로 보여주면 그 반응들이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연인들의 화사한 모습에 스스로도 흡족해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주름이 이렇게 여러 줄로 늘었는지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답니다. 자신이 그렇게 늙어 보이는 것은 자신이 그렇게 나이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진이 잘못 나왔기 때문이라는 인식인 것이지요.

오픈스튜디오의 방문객을 위해 찍어준 공영석선생님의 사진들
 오픈스튜디오의 방문객을 위해 찍어준 공영석선생님의 사진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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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문리적 노화와 현실인식 사이에 괴리가 존재했던 것입니다. 누구나 나이든 자신의 모습을 쉽사리 인정할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은 여전히 젊은데 얼굴이 이렇게 노인의 모습이라니!'

그래서 그 분은 사진을 받아가질 않았답니다. 사실 마음보다 몸이 더 빨리 노화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여러 번입니다. 간혹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과 마음을 트고 얘기할 때면 그 분들이 여전히 소년, 소녀의 마음을 간직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이마의 주름은, 마음은 여전히 청춘인데 이렇듯 오랜 시간 치열하게 살아왔구나, 하는 훈장 같은 것이지요. 그 훈장을 거부할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물리적 처치로 그 훈장을 반납하는 것도 참 부자연스러운 모습 같기도 하구요.

저는 주름 없는 노인보다 겹겹인 주름 속에서도 항상 신선한 발상과 실천으로 젊은이들을 오히려 놀라게 하는 어르신들이 훨씬 아름다워 보입니다. 백발의 공 선생님이 저를 사진 배경막 앞에 앉혔습니다. 공 선생님은 저를 찍고 저는 포니테일의 흰 백발, 공 선생님을 찍었습니다.

공 선생님의 이마에 네댓 줄의 주름이 선명했습니다.

제게 포즈를 주문하는 공선생님의 이마에도 주름이 선명합니다.
 제게 포즈를 주문하는 공선생님의 이마에도 주름이 선명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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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낯선자아, #천호균, #공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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