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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라는 예쁜이름을 가진 한국계 혼혈아이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똥가리
▲ 오! 나의 피앙세 소라라는 예쁜이름을 가진 한국계 혼혈아이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똥가리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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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가리'는 떠나갔다. 나의 분신 똥가리. 녀석이 없는 공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젠 이곳 독일에 녀석은 어디에도 없다. 함께 있을 땐 그 존재가치를 몰랐는데 녀석이 떠나고 난 빈자리가 허전함으로 채워질 때에야 녀석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녀석은 공항에서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늙은 아빠와의 기약 없는 이별을 아쉬워했다. 떠나는 날 아침에 아빠와의 기약 없는 이별이 슬펐는지 잠깐 어두운 표정을 짓더니 어린아이답게 이내 잊어 버리고 까불대며 명랑했다. 공항에서 개찰 직전까지 어리광도 부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잘대며 놀았다. 그러나 막상 개찰구를 통과하자 이젠 진짜 아빠와 헤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울먹거리더니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나를 감격하게 했다.

삼천리금수강산보다 독일연방공화국이 좋아?

녀석은 우려와는 달리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고, 주변의 이방인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렸다. 글쎄, 이방인이란 말은 녀석에겐 해당사항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녀석은 독일 친구들이랑 똑같이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자랐으니까.

어쨌거나 녀석은 이곳의 유치원을 졸업했다. 한국 나이로 만 여섯 살,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물론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문제는 아니다. 녀석은 엄마와 아빠가 나름대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례를 든다면 엄마와 아빠의 고향인 '삼천리 금수강산'보다 '독일연방공화국'을 더 좋아하는 느낌이 들었고, 우리말도 서서히 잃어 버리는 조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 가족이 그 동안 비비고 부대끼며 생활해 왔던 자그마한 강변도시는 똥가리 또래의 이른바 '동방예의지국 아이들'은 거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부모가 유학생 출신인 아이들이 간혹 있었을 지라도 그 아이들은 이내 돌아가 버리곤 해서 나의 똥가리가 어울리면서 우리말과 정서를 배우기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늙은 아빠를 떠나기 전까지 똥가리가 할 수 있었던 우리말이란 것이 우리 부부가 일상생활에 써 왔던 어른들의 용어였음에랴. 그나마도 우리식으로는 초등학교에 해당되는 '그룬트슐레'에 들어가면 조금씩 조금씩 잃어 버리게 될 것이다.

바야흐로 교포2세대에 해당하는 아이들이 거의 빠짐없이 겪어야 했던 정체성 혼란 문제가 드디어 우리 똥가리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이 엄마는 똥가리가 조금 더 크면 독일말이 서투른 엄마와 대화도 안하고 겉돌기만 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다.

나, 똥가리 아빠도 독일에 오랫동안 살아온 교포들이 거의 독일 아이가 되어버린 자녀들과 허심탄회한 대화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 우리문화에 대해선 접근조차 못하는 것을 많이 보아 왔다. 이대로 대책 없이 차일피일 하다가는 머지않아 나의 일로 다가올 것이라는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은 '내 나라 내 땅'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역 땅이라지만 아이에게는 그래도 태어나서 자란 곳이니 이곳의 '꼬추친구'들과 최소한의 추억거리는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유치원을 졸업한 후에 엄마랑 같이 돌아가는 것으로 낙찰을 보았다.

아이는 7월 말 이곳의 유치원을 졸업했다. 그리고 8월 15일 엄마 손을 잡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늙은 아빠 곁을 떠나갔다. 어렵사리 결론을 내리고 그렇게 보내기는 했지만, 과연 나의 분신 똥가리 없이 얼마나 오랫동안 '기러기아빠'로 살아갈 수 있을지는 아직도 별로 자신이 없다.

8월 15일, 나는 기러기아빠가 됐다

기러기아빠! 슬픈 순정만화의 제목을 연상케 하는 단어다. 항간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다고 하더라만, 어쨌거나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구미선진국으로 어린 자식들을 엄마와 함께 유학 보내고 나서 홀아비 아닌 홀아비로 궁상맞게 살아가는 아빠들의 대명사 '기러기아빠'.

드디어 나, 똥가리아빠도 궁상맞은 아빠들의 대열에 합류하는가? 궁상맞게 살지 않기 위해 노력은 할 것이지만 머지않아 대부분 한국 기러기아빠들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할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한국의 기러기아빠들과는 다른 게 딱 한 가지 있기는 있다. 아이의 장래를 위한다는 어쭙잖은 명목은 같지만 한국의 기러기 아빠는 자식을 외국으로 유학 보내고 독일의 기러기 아빠는 거꾸로 한국으로 똥가리를 유학 보내는 것이겠다.

아! 그들과 다른 게 또 하나 있다. 독일의 가난한 노동자인 똥가리 아빠는 자식의 유학비(?)를 충족하게 댈 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 서글프지만 현실임에랴. 어쨌거나 나의 분신 똥가리는 지금 내 곁에 없고 나는 떠나보낸 아들을 그리워하면서 지나간 추억들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쓴다.

나는 똥가리와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제대로 놀아주지 못했다는 한심한 자책감을 벗어나기 위해서 아이가 떠나기 서너 달 전 부터 거의 모든 것을 아들에게 '올인'하기로 하고 똥가리와의 추억 만들기에 들어갔다. 퍼도 퍼도 마르지 않은 샘물처럼 하루 종일 함께 놀아줘도 돌아서면 "아빠, 또 놀아줘!"하며 보채는 녀석을 충분히 만족시키지는 못했을 거라 사료되지만.

어쨌거나 나와 붕어빵인(나는 잘 모르겠는데 남들이 붕어빵이라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있다) 똥가리를 덤불숲을 헤치고 산으로, 들녘으로, 호수로, 호연지기를 키워준다는 명분으로 부지런히 끌고 다녔다. 다행히 녀석은 나의 분신 똥가리답게 탐험놀이를 좋아했다.

아빠가 만들어준 새총과 나무칼을 차고 제가 마치 숲속의 사나이 로빈훗이라도 되는 양 똥폼을 잡고 휘젓는 모습이라니. 당연히 아빠인 나는 대견해서 '므흣한' 미소를 머금고 지켜보고 있고. 고슴도치도 자기자식이 예쁘게 보이는 법임에랴.

대한민국이 내나라 내땅이 되기를

아들이 떠나간 빈자리, 텅 빈 가슴, 벌써 3주째다. 공허하고 공허하고 공허하다. 그러나 참고 견뎌야지 어쩌겠는가.

지난 세월, 간고하고 지난하지 않았던 때가 별로 없었지만 최근 1년도 내겐 버거운 한 해였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에 기인한 실업자 신세로 몇 달을 보내고, 이곳에서 거의 유일하게 대화를 이어왔던 친구이자 동지를 급작스레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다. 또 그 충격이 가시기 전에 미국에서 한방병원을 하고 있는 큰형님의 역시 예기치 않은 급서 소식은 한동안 나를 침통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장고 끝에 나의 분신 똥가리를 '내나라 내 땅'으로 떠나보냈다. '정체성 세워주기'란 아빠의 편협한(?) 욕심의 부산물로.

생각하건데 아직은 나의 똥가리에겐 '삼천리금수강산'이 '내나라 내 땅'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녀석은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죽 자랐으니까. 독일 아이들 틈새에서 부대껴온 녀석의 '내나라 내 땅'은 아직까지는 '독일연방공화국'일 것이다.

지금 한국은 여름의 막바지.

"무지 덥다. 아빠. 그치만 상기 형아하고 재미있게 잘 놀아. 모든 게 신기하고 재밌어. 아빠가 보고 싶지만 나, 독일 안 가고 여기서 살래. 근데 아빠, 아빠는 언제 한국에 와? 왜? 왜 못 오는데?"

인터넷 무료전화를 통해 들려주는 아들내미의 전언이다. 세상 차암 좋아지기는 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들내미와의 통화가 무료라니, 어쨌거나 나의 똥가리의 마지막 멘트가 가슴에 못으로 박히는 듯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적응하고 있다니 막혔던 가슴이 어느 정도 뚫린 기분이다.

바라고 바라 건데 나의 똥가리가 한국의 생활에 쉽게 적응하고 연착륙하여 아빠만의 '내나라 내 땅'이 아니라 똥가리의 '내나라 내 땅'으로 가슴깊이 자리매김 되었으면 한다.

한얼아! (나의 분신 똥가리의 정식 이름이다) 아빠가 보고 싶고 그립거들랑 아빠가 가르쳐준 노래를 부르려무나.

"아빠가 그리울 땐 아빠사진 걸어놓고
아빠 얼굴 바라보면 눈물이 납니다.
아부지 울 아부지 보고 싶은 울아부지
울고도 싶어요. 보고도 싶어요.
사랑하는 울아부지"

"아들이 그리울 땐 아들사진 걸어놓고
아들 얼굴 바라보면 눈물이 납니다.
한얼아 내 아들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울고도 싶구나. 보고도 싶구나.
사랑하는 내 아들아"

한얼아! 아빠는, 한얼이를,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아. 똥가리 파이팅!


태그:#한얼, #똥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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