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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7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7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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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서울교육감이 9·1 정기인사 발표로 또 한 번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09년 교육계 최고의 이슈 메이커가 김상곤 경기교육감이었다면, 2010년 최고 이슈 메이커는 누가 뭐래도 곽노현 서울교육감이다. 교육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교육과학기술부장관 또는 차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그의 행보나 발언은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그의 선거 공약 이행에 해당하는 전면 무상급식 시도나 체벌 전면 금지 선언, 학생인권조례 추진, 혁신학교 300개 설립 추진도 관심사이지만, 최근 인사비리와 수학여행, 공사비리 등 비리에 연루된 교장들의 집단적 퇴출과 고위 장학관의 낙후지역 교장 발령, 여성 정책과장 임명으로 대변되는 최근의 인사 정책 등이 그러하다.

이런 행보에 대해 인터넷을 중심으로 나타난 국민의 반응은 환영이 압도적이다. 이 가운데 사사건건 비토를 놓는 세력들이 있으니, 바로 교육계의 기득권 세력들과 조중동 등 보수언론들이다.

장학관의 교장 발령이 한직 좌천이면 평교사는 유배?

서울교육청은 9월 1일자 정기 인사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중등교육정책과장을 임명하고, 공고 교장을 교육장으로 발령하는 등 기존 인사 시스템으로 보면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그러나 이 '파격 인사'라는 수식은 어디까지나 기존 인사 시스템을 기준으로 했을 때에만 성립한다.

일부에서는 공고 교장이 교육장으로 발령 난 것에 대해서 '비전문직 출신 교육장'이라고 하지만 이 말 자체가 모순이다. 여기서 '비전문직 출신'이란 장학관이나 장학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교육장이 됐다는 의미다. 그러면 장학관과 장학사는 전문직이고, 교직은 전문직이 아닌가? 교사라는 직업 자체가 전문직인데 수십 년 교사와 교장 경험을 가진 인사가 교육장이 된 것을 비전문직 출신 교육장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누가 뭐라고 해도 교육계에서 최고의 전문직은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이기 때문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중등교육정책과장을 임명한 것에 대해서도 '파격'이라고 한다. 이미 교단에서 여교사가 차지하는 비율이 남교사보다 많아진 지 오래다. 여성 중등과장이 이제야 나왔다는 것이 오히려 미스터리 아닌가? 여성이 다수임에도 교장, 교감과 교육장 등 고위직은 여전히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게 오히려 비정상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 중등과장이 등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고 오히려 늦은 것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이번 인사에 대한 반응에서 가장 논란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스운 것이, 교육청에서 장기 근무한 장학관들을 소위 강남이 아닌 지역의 '한직 교장'으로 발령했다는 주장이다. 곽노현 교육감은 "본청에서 장기간 근무한 장학관 대부분은 능력이 뛰어난 분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교육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서울의 비선호 지역의 학교장으로 발령을 냈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은 당사자들의 말을 인용하여 "좌천 인사"니 "한직 발령"이니 하는 표현을 써 가면서 반발 기류를 전하고 있다. 또 "기존 인사 원칙을 깡그리 무시했다. 기존 인사 원칙을 믿고 교육 발전에 헌신해 온 사람들의 노력은 뭐가 되느냐"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는 보도도 있다. 물론 더 고위직으로 승진을 기대하거나 혹시 그것이 안 되더라도 강남 등 소위 '물 좋은 곳'의 학교장으로 발령 날 것을 기대하고 있던 일부 장학관들의 허탈함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 체제에서 그들이 누려온 부당한 특권이었지 결코 정당한 권리가 아니다. 한 마디로 '부당한 기득권'이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법전 어디에 서울교육청 장학관을 지내면 최소 강남 교장으로 발령 난다고 규정하고 있는가? 반대로 장학관은 낙후 지역으로 발령 낼 수 없다는 규정 역시 어디에도 없다.

참으로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교장이 좌천이면 도대체 평교사들은 유배 받은 것인가? 서울의 교장 발령이 한직 발령이면 전남 섬지역 교장은 달나라 파견 발령이냐?"고 국민들은 반문한다. 강남이 아닌 지역으로 발령이 났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그들에게서 교육자의 양심을 찾아볼 수 없다. 대학에서 교육학 개론 시간에 처음 고민하던 "교육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교사가 되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다시 던질 때다.

이번 곽노현 서울교육감의 9·1 정기인사 발표는 공정택 전 교육감과 그의 측근들, 교장과 장학사들의 구속 사태로 대변되던 기존의 매관매직, 밀어주고 끌어주기라는 잘못된 인사 관행을 바로잡는 시작이다. 이런 의미에서 "파격 인사"가 아니라 "인사의 정상화"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이번 인사가 파격적인 게 문제가 아니라 이런 정상적인 인사가 지금까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게 진짜 문제다.

체벌 금지 강연 중 퇴장한 교장들... 학생들 따라할까 부끄럽다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3월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도착한 뒤 부축을 받으며 청사로 걸어오고 있다.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3월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도착한 뒤 부축을 받으며 청사로 걸어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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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기득권의 반발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며,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8월 19일 체벌 금지 강연에 대한 일부 교장들의 집단적인 퇴장이다.

곽노현 교육감은 일선 학교에서의 체벌금지 정책을 확정하고 고등학교 교장 340여 명을 대상으로 체벌 금지의 당위성에 대해 강연을 했다. 그런데 사립학교 교장들을 중심으로 사립학교의 '건학이념'이니 '사랑의 매'니 하는 말로 체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더니 급기야 교장 40여 명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대한민국 어느 사립학교가 건학이념으로 학생 체벌을 규정하고 있는가? 세상 어느 사립학교의 어떤 건학 이념이기에 체벌이 아니면 실현이 불가능한가? 그런 사립학교나 그런 건학이념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강력하게 반발하는 교장들도 그 이상의 집단행동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립학교면서도 시교육청에 예산을 의존하기 때문에 혹시 예산 못 받을까 걱정이 되어서란다. 체벌은 하고 싶은데 돈 안 준다고 할까 봐 체벌 금지를 따르겠다는 군색한 논리에 헛웃음이 나온다.

이는 아이들이 배울까봐 더 우려된다. 물론 교장을 비롯해 그 어느 누구라도 교육감의 정책에 대해서 반대 의견을 표현할 수 있고, 행동으로 이를 표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장들의 이번 집단 퇴장 행동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 연수에 참가한 교장들은 근무 중에 국민 세금으로 출장비를 받아서 참가했다. 그런데 교장들이 연수장을 이탈해서 집단 퇴장한 것은 교사들로 치자면 명령불복종이고 근무지 무단이탈이다. 만약 전교조 교사들이 출장을 나와서 이런 행동을 했다고 하면 분명히 학교장과 교과부는 징계를 한다고 난리를 피우고, 나아가 검찰은 (특수)공무방해죄로 형사처벌 검토 운운했을 것이다. 그리고 조중동 등 보수언론들은 교사들의 집단행동에 우리 교육이 걱정된다며 한심하다는 투의 사설로 도배를 했을 것이다.

이제 앞으로 교장들은 큰일 났다. 교장들이 학교에서 입학식이나 조회와 같은 공식 행사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재미 없다"며 집단으로 나가 버려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교장 선생님들이 교육감에게 하는 행동을 보고 괜찮은 것인 줄 알고 따라했다"고 학생들이 하면 뭐라고 지도할지 참으로 걱정이다. 교장은 교육감이 마음에 안 들면 강연 중 나가버려도 되는데, 학생들은 마음에 안 들어도 교장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야 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기득권의 반발은 계속된다... 하지만 국민 의지하면 답이 보인다

곽노현 서울교육감을 비롯한 이른바 진보교육감의 행보에 대한 기득권들의 반발은 이미 예상됐다. 징계위원회와 인사위원회 등에 외부 인사들을 대거 영입하고, 감사관과 공보관을 외부 공모로 모집하는 것에 대해서 "내부의 관료들을 못 믿는 것이냐? 우린 뭐가 되느냐?"며 볼멘 소리를 하고 나선 것도 그렇다. 보수 언론도 "코드 인사, 좌파 심기"라고 거들고 나섰으니 앞으로는 더욱 노골화될 것이다.

김상곤 경기교육감 사례에서 증명된 것처럼, 전면 무상급식이나 혁신학교와 같이 예산이 수반되는 정책 실현에 대해서도 반발이 예상된다. 거창한 이념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기득권에게 돌아가는 경제적 이권이 줄어들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9·1 정기인사에 대한 내부 관료들의 반발과 보수 언론의 비판은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보수언론을 등에 업은 교육기득권층의 반발은 더욱 커지고 조직화될 것이고 곽노현 교육감의 앞길은 험난할 것이다. 이런 반발에 맞서 곽노현 교육감이 기댈 힘은 하나밖에 없다. 학생을 믿고, 학부모를 믿고, 교사를 믿고, 그리고 국민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현장의 능력을 믿는다"는 곽 교육감의 낙관이 서울교육 희망의 근거가 되기를 기대한다.


태그:#곽노현, #장학관, #서울교육청, #체벌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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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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