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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부채상환비율 폐지로, '약탈적 대출'이 늘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아파트단지 견본주택 모습이다.
 총부채상환비율 폐지로, '약탈적 대출'이 늘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아파트단지 견본주택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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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

금융기관이 대출자의 소득 등 대출상환능력과 관계없이 과도하게 대출을 해준 뒤, 대출을 갚지 못하면 대출자의 담보를 빼앗는 금융기관의 횡포를 이르는 말이다.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연체율과 주택압류율이 높아지자 이 용어가 부각됐다.

약탈적 대출이 가져오는 사회경제적 폐해가 극심한 탓에, 미국 정부는 지난 7월 주택담보대출 상품 등에서 발생하는 불공정한 수수료나 약탈적 대출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한 금융규제개혁법안을 지난 7월 발효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정부는 29일 소득에 따른 대출을 일정 비율로 제한해 약탈적 대출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을 한시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는 금융기관이 자율적 판단 하에 대출 규모를 정하게 된다. 바야흐로 약탈적 대출의 시대가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 "가계 부채 문제 없다", 그러나...

정부는 8·29 대책을 통해 서민·중산층 등 실수요자의 주택 거래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주거안정을 이룰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서민·중산층에 대한 대출 확대가 오히려 이들의 주거 안정을 해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약탈적 대출의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은 29일 브리핑에서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의 60~70%를 고소득자가 빌리고 있고, 연체율은 외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며 "또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유지할 것이기 때문에 가계부채 문제는 악화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역설적이게도 임 차관이 발언한 내용은 8·29 대책을 통해 향후 가계 부채 문제의 악화를 보여주는 수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총부채상환비율을 40~60%로 제한했던 최근까지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연체율이 외국의 절반 수준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현재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0.53%로, 지난해 5월(0.55%) 이후 1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 3월(0.36%) 이후 연체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앞으로 총부채상환비율 한시적 폐지로 인해, 연체율 상승은 불 보듯 뻔하다.

또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은행 가계대출 잔액 418조9천억 원 중 주택담보대출은 273조2천억 원으로 65.2%를 차지했다. 관련 통계가 만들어진 2003년 4분기 이후 가장 높다.

주택담보대출의 60~70%를 고소득자가 빌리고 있는 상황도 이번 대책으로 곧 바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총부채상환비율 한시적 폐지의 대상자를 서울 강남·서초·송파구 등의 투기지역을 제외한 수도권의 9억 원 이하 주택을 구입하는 무주택자나 1가구 1주택자로 한정했다.

정창수 국토해양부 1차관은 "수도권 가구의 91%인 무주택자와 1가구 1주택자가 이번 대책의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늘어나는 대출의 대부분은 서민·중산층이 부담하게 된다는 뜻이다. 

정부 말대로 빚내면 정상적인 생활 불가능... 서민·중산층만 고통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29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실수요 주택거래 정상화와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29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실수요 주택거래 정상화와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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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총부채상환비율의 한시적 폐지로 서민·중산층은 얼마나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을까? 정부가 29일 브리핑에서 예로 든 사례를 살펴보자.

연소득 3천만 원(월 소득 250만 원)인 가구가 5억 원짜리 아파트를 매입할 경우, 최대 2억5천만 원(현재 수도권의 주택담보인정비율은 50%)까지 빌릴 수 있다. 이 가구가 20년 만기 원리금균등분할방식(금리 연 6%)으로 원리금을 갚을 경우, 20년 동안 매월 179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 소득의 71.6%에 달한다.

이에 대해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보통 가계는 소득의 40%까지 빚을 갚는 데 부담할 수 있다고 본다"며 "만약 가계가 그 이상을 부담하게 될 경우, 사실상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금융기관이 총부채상환비율을 자율적으로 판단해도 무분별하게 대출을 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기관이 스스로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대출자의 소득과 관계없는 무분별한 약탈적 대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가계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총부채상환비율을 사실상 무력화한데 반해, 50%인 주택담보인정비율은 유지해서 금융기관의 건전성 장치를 유지하기로 했다. 결국 부동산 가격이 '반토막'나는 상황이 발생해도, 금융기관은 빚을 잔뜩 진 가계의 주택담보를 인수하게 되면 손해를 보지 않는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빚은 경기 변동에도 고정되지만, 담보인 자산은 경기 변동에 따라 크게 변한다"며 "경기가 안 좋아질 경우, 가계는 자산인 담보를 포기해서 빚을 갚을 수밖에 없다, 길거리로 쫓겨나는 가계가 많아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작년에는 공공부채를 늘려서 부동산을 부양하려 했다면, 이제는 서민·중산층의 가계 대출을 볼모로 부동산을 부양하려 한다"며 "집값 거품이 계속 빠진다면, 서민·중산층의 고통은 커진다"고 강조했다.


태그:#약탈적 대출, #총부채상환비율, #D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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