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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최근 경찰청장 내정자의 과거 발언이 아니었다면 영영 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짐승처럼 울부짖는" 유족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냥 묻어서는 안 될 일이다.

 

천안함사건은 미제사건이다. 합조단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정부와 군 당국의 합동조사단이 면밀히 검토하고 증거까지 나왔다는데 뒷간 가서 안 닦고 나온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는 데에는 우리가 가진 감각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오감이라고 알려진 몸의 감각기관을 이용해서 보고 듣는 것을 기본으로 한 입력정보를 분석해서 판단하는 것이다.

 

혹은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이나 기관의 정보를 듣거나 보거나 했을 때다. 그 정보는 6하 원칙에 따라 사건의 주체와 발생경로 결과가 유기적으로 이어졌을 때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상식, 이에 근거한 판단으로 하며 경험이 부족할 때에는 상식적인 수준의 과학적 분석을 활용할 수 있다.


"아직도 천안함이냐"


합동조사단의 발표는 나름(?)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고 어뢰의 일부조각을 증거로 하고 면밀한 실험결과와 도표를 포함하고 있다. 이를 사실로 인정하는 지지층도 꽤 있다. 하지만 사실로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 역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내놓은 반박을 근거로 한다. 여전히 그들은 싸우고 있고 질려버린 대부분의 국민들은 서서히 기억에서 지우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천안함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국방은 국가의 존재이유 중 하나다. 급작스런 공격에 대한 방어능력이 없는 전함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느닷없이 죽은 젊은이들에 대한 보상은 누가 어떻게 해야 합당한 것인가. 누가 어떻게 왜 천안함을 침몰로 몰아갔는지 분명히 알아야 하고 국가는 이를 국민들에게 명백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사실, 천안함 침몰 사태에 대한 군 당국이나 청와대의 대응이 국민들의 불신을 키웠다. 구조에 대한 늦장대처와 원인분석에 대한 말 바꾸기, 함수와 함미가 완전히 분리될 정도로 파괴된 원인에 대한 추정 불확실, 정보 은폐 등이 그 이유다. 감추고 덮고 말 바꾸는 이의 말을 누가 사실로 믿을 수 있겠는가.


<천안함을 묻는다>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추이와 진행 결말을 기록하고 있다. 언론사 기자, 과학자, 군사정보전문가 등의 필진이 사건의 내용을 분석하고 각자의 의견을 내놓는다. 책을 읽으면 궁금하고 답답했던 사건의 본말에 한걸음 다가가 답답하고 불안함의 원인을 진단해 볼 수 있다.


그날 밤, '다시보기'


2010년 3월 16일,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은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 부두를 출항했다. 천안함에는 장교와 부사관, 사병 등 장병 104명이 타고 있었다. 1200톤급 천안함은 연안경비 및 초계임무를 맡는다. 백령도 근처 경비구역에 배치되었다. 3월 25일 풍랑주의보 발효로 대청도 동남쪽으로 피항했다. 26일 아침 경비구역에 복귀했다. 오후 8시 이후 29명이 야간 당직 근무를 서고 있었다.


26일 오후 1시, 대전육군교육사령부 대강당. 이상의 합참의장을 비롯한 육해공 총장들과 미합동전력사령부, 한미연합사 작전지휘자 등 150명이 모였다.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자문위원인 권태영 박사의 '우리군 합동성 강화 실태와 발전방안' 발표에 이어 후버 부사령관의 '미군의 군사변혁 및 합동성 강화'사례가 발표되었다. 처음이었다. '합동의 문제'를 우리 군 수뇌부가 모여 논의한 적은 과거 한차례도 없었다.


합참이 인사권을 가지겠다는 논란이 일었다. 전력에 대한 소요를 실험·검증하고 합동 지휘자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겠다는 내용의 발표 뒤였다. 육·해·공군 청장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김성찬 해군총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합동성을 강화한다는 대의에는 창성한다. 한국군이 자칫 '물오리'가 되자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물에서는 상어, 땅에서는 호랑이, 공중에서는 독수리가 되어야 할 것 아닌가. 전문성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다 섞어놔서 결국 물오리가 되라는 말은 아닌지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일로 불러 모았다니 각 군의 총장들은 비위가 상하는 일이었다. 뒤이어 한민구 육군총장은 합동성을 명분으로 내세운 합참의 2단계 조직개편으로 전력발전본부가 신설되었으나 합동직위자 중 육군의 비율이 낮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오후 9시22분. 최원일 함장의 몸이 큰 충격으로 떠올랐다. 왼쪽으로 나가떨어졌다. 통신장이 함장님을 외치고 부하들이 부축해 30분에 갑판으로 나갔다. 포승장은 이미 구조요청을 한 상태였다. 내기장 오모상사가 울면서 "함장님, 함미 없어요. 우리 애들 안 보여요"했다. 함미쪽 연돌밖에 안 보였다. 기름 냄새가 났다. 함수도 우현 90도로 기울어 돛대 팔이 바다에 닿았다 말았다 했다.


박모 작전관이 말했다. "어뢰 같은데요." 이에 최 함장도 동조했다. "응, 나도 그렇게 느꼈어. 봐라, 함미가 아예 안 보이잖나." 이때 통신장이 최함장에게 전화기를 건넸다. "뭐에 맞은 것 같습니다.", "뭔거 같아", "어뢰 같은데요. 함미가 아예 안 보입니다.", "어디? 함미 어디부터?", "연돌이 안 보여요. 고속정과 리브를 빨리 조치해주십시오." 2함대 사령부는 어뢰라는 부분은 임의판단이라 보고 이를 삭제한 후 해군작전사령부와 합참에 전달했다.


사건해역에서 2.8킬로미터 덜어진 초소에서 목격된 것은 폭음과 섬광이었고 물기둥과 부유물, 초계함 등은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짙었다. 100미터의 물기둥이라면 해안에 파도가 칠만했다. 초병은 천둥과 낙뢰로 판단된다고 상황실에 알렸다. 이는 합참에 보고되지 않았다.


49킬로미터 떨어져있던 속초함은 9시32분에 연락을 받고 급히 사고지점으로 북상했다. 현장 도착은 10시 40분. 10시 55분에 북상하는 고속의 표적이 포착되어 뱃머리를 북으로 돌렸다. 45노트의 속도로 북상하는 검은 물체였다. 속초함은 이 물체가 북함정으로 판단해 백령도 서북단 해안지점으로부터 11시 방향으로 격파사격을 실시했다. 최초표적과는 9.3킬로미터로 유효사거리가 12킬로미터인 76미리 주포를 130여 발 발사했다.


물체는 계속 북상하다가 11시05분에 NLL을 넘었고 이 순간 속초함은 사격을 중지했다. 3분후 레이더 상에서 소실된 물체는 1분 뒤 다시 나타났다가 다시 2분 뒤에 이미 육지인 장산곶 부근에서 사라졌다. 제 2함대 사령부는 이를 '새떼'라고 판단했다. 속초함장으로 하여금 검은 물체는 새떼라고 수정하여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합참의장은 만찬을 마치고 서대전역에 도착했다. 이때가 9시 22분. 천안함이 동강난 바로 그 시각이었다. 9시 27분에 고속철에 몸을 실은 이의장은 휴식을 취했다. 이의장이 천안함 보고를 받은 것은 거의 서울에 도착할 무렵인 10시 11분경이었다. 9시45분 합참이 청와대 위기상황실로 사건을 보고한 지 26분이 지난 시점이다. 청와대가 안보관계장관회의 소집을 결정하고도 11분이 지난 시각. 사건발생 이후 49분간 군 최고지휘부의 대응이 공백이었던 셈이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이보다 3분 늦게 보고 받은 것까지 생각하면 상식으로 이해가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던 셈이다.


지겹지만 중요한 물음


사건의 원인을 짐작케 하는 중요정보가 해군에서 합참으로 보고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감사원은 직무감사를 하면서 어뢰피격에 대한 천안함장의 최초보고와 속초함장의 반잠수정 보고, 해안초병의 폭발음 청취 등 주요내용이 합참에 전부 보고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고 6월 10일 감사결과 발표에서 이를 공개했다.

 

실종된 핵심정보는 의혹을 키웠다.

 

북한잠수함 정보는 전적으로 미군의 위성정보에 의존하는데 사건이 발생한 26일부터 28일까지 미국이 제공한 군사정보는 지극히 모호한 것도 의심스럽다. 초기의 군 발표와 5월20일 합조단 발표사이에는 새로운 '사실'이 추가되었다. 초병이 말한 하얀 섬광이 물기둥으로 비약했고 생존자들이 찰랑이는 물결만 보았다고 하더니 물방울이 튀었다는 진술이 나왔다. 강력한 물증인 1번 지뢰가 등장한 지 5일 만에 '추정'과 판단에 의한 발표가 나왔고 당연히 빈약한 근거들이 증거로 제시되었다.


함수와 함미를 건져내고도 언론에 공개하길 꺼려하더니 스스로 분석한 과학적 증명들도 오류투성이라는 것이 국민들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스크류의 휘어진 방향, 멀쩡한 형광등과 탄약통들, 비교적 깨끗하고 단정한 내부집기들, 함수와 함미 외부에 깊게 파인 긁힌 자국들, 절단면의 휘어진 방향, 폭약의 잔여물 등 중요하고 핵심적인 사건 정황들이 무시된 발표는 점점 더 의심을 키우는 데에 도움을 줄 뿐이었다.


책이 제공하는 것은 다양한 각도의 분석과 제한된 정황정보와 증거물에 대한 분석 자료를 받아 반박하는 정도다. 사건당시에 대한 뚜렷한 정황근거와 정보들, 솔직하고 명확한 목격자들의 진술, 과학적인 증거분석이 오늘도 여전히 안갯속에 있는 천안함사건에 대한 사실을 드러내는 데에 힘이 될 것이다. 더불어 46명의 희생 장병과 수색 작업 중 순직한 고인들과 그 유족에 대한, 국가와 군 당국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예의이기도 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천안함을 묻는다/ 강태호엮음/ 창비/ 16,000원


천안함을 묻는다 - 의문과 쟁점

강태호 엮음, 창비(2010)


태그:#천안함사건, #천안함, #합참과해군, #천안함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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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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