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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경기도 여주시 이포보 농성 현장 상황실. 5일은 염형철, 박평수, 장동빈 세 명의 환경 운동가가 4대강 사업을 온 몸으로 막기 위해 콘크리트로 된 거대한 보에 오른지 딱 15일 되는 날이다.

 

'찜통더위'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하루였다. 온종일 커다란 야외 찜질방 속에 들어앉은 기분이었다. 가지고 온 노트북도 바깥의 열기에 한껏 달아오른 상태. 키보드를 두드릴 때마다 열기가 그대로 전해져 왔다. 현장에 있던 어떤 이는 "숨도 쉬기 힘든 더위"라며 혀를 내두른다. 상황실의 이들은 미적지근한 물을 연신 들이키며 더위를 쫓고 있지만, 한참 역부족이다.

 

 

상황실의 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더위뿐만이 아니다. 상황실 바로 맞은편에서 계속해서 '외지인들은 여주의 발전을 막지 말고 나가라'는 내용이 담긴 녹음테이프가 끝없이 반복해 흘러나온다. 급기야 상황실에서 "이러다간 내용을 다 외우겠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결국 상황실에서는 여주군청 환경과에 민원을 제기했다.

 

조배숙 의원 "국회 특위 구성 최선 다할 것"

 

"어떡하지? 올려 보냈어야 하는데..."

 

5일 오후 여주 이포보 농성 현장. 현장에 있던 조배숙 민주당 국회의원의 얼굴엔 수심이 잔뜩 어려 있었다. 이날 폭염으로 조 의원의 얼굴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지만, 조 의원은 계속해서 이포보 고공 농성 현장을 돌아보며 "어떡하지"라는 말만을 연발할 뿐이었다.

 

이날 조 의원은 죽과 선식, 생수 등을 상자 가득 들고 이포보 상황실에 나타났다.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3인의 환경 운동가들에게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시공사 측의 강력한 반발로 이 물건들은 끝내 전달되지 못했다. 현장을 찾은 조 의원과 비서진, 그리고 박창재 상황실장은 물건 반입을 막아서는 시공사 측에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전달해야 한다"며 버텼지만, 시공사 현장 관계자는 "물, 선식, 소금 이외엔 절대 (반입이) 안 된다"며 맞섰다.

 

결국 조 의원은 비서관 한 명을 대동하고, 수많은 시공사 직원에 둘러싸인 채 현장에 들어갔다. 농성을 벌이고 있는 3인의 환경 운동가와 무전으로 대화를 나누고 상황실로 돌아온 조 의원은 "너무 속상하다. 죄송해서 어떡하나"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조 의원은 "잘 주무시냐고 물었더니 콘크리트가 뜨겁고, 서치라이트가 비추는데다가 확성기로 동네 주민들이 온갖 욕을 다 해 잠을 잘 못 잔다고 하더라"고 고공 농성 현장 활동가들의 상태를 전했다. 또 조 의원은 이들이 "물이나 선식은 최대한 아껴 먹고 있고, 무전도 경찰이 듣는 것 같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한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낮에는 탈진 상태에 이르는 등 건강이 염려되는 상황이나, 다행히 염형철 사무처장의 중이염은 많이 호전된 상황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3인의 환경 운동가들은 조 의원과의 무전에서 감사의 뜻을 표했다. "(가져오신) 물건은 마음으로 받았다"며 조 의원을 위로하던 이들은 조 의원에게 "국회에서 4대강 특위를 구성하는 데 앞장서 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조 의원 역시 "민주당 내 쇄신연대 의원들이 일요일(7일)에 현장을 방문하기로 했다"며 "특위 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휴가철 맞아 지지 방문하는 시민들 줄이어

 

한편 휴가철을 맞아 이포보 현장에는 '휴가 아닌 휴가'를 보내러 온 이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땀이 뚝뚝 흘러내리는, 한낮 기온 최고 32℃의 여주 이포보 현장에 많은 사람들이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환경 운동가들을 격려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이들은 휴가를 가는 길 혹은 휴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일부러 발걸음을 돌려 현장을 찾았다.

 

5일 오후에도 한 가족이 이포보 현장을 찾았다. 이들 역시 휴가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현장을 방문했다. 이 가족은 아이스크림을 한아름 들고 와 상황실에 전했다. 더위에 지쳐 있던 상황실 사람들은 잠시나마 아이스크림을 나눠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또 이에 앞서 오전에는 서울에서 한 한의사 부부가 휴가를 떠나는 길에 상황실을 찾아와 더위에 지친 체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한약을 전하고 갔다.

 

앞서 한 여성도 간식을 두 손 가득 들고 상황실을 찾아왔다. 이미 여러 차례 현장을 방문했다는 이 여성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상황실에 있던 마이크를 들고 고공 농성 현장을 향해 노래를 부르며 응원을 보냈다. 보 위에 오른 3인의 환경 운동가들도 무전을 통해 "잘 들었다"며 즐거워했다.

 

수원교구의 방구들장 신부도 신자 등 일행과 함께 현장을 찾았다. 길게 기른 흰 수염과 큰 보청기가 눈에 띄었다. 노령의 방 신부는 무전으로 "존경하고 사랑한다"며 "살아남아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농성 15일. 한 달의 반이 지나갔다. 이포보 공사 현장의 3인의 환경 운동가들은 지친 기색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걱정하지만 이들은 "괜찮다, 견딜 만하다"라고 말한다. 많은 시민들이 보내는 커다란 지지와 응원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충분히 먹고 마시지 못해도, 심지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도, 작열하는 더위에도 이들을 견디게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미나 기자는 오마이뉴스 12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4대강, #이포보, #조배숙, #고공 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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