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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각, 오후 9시 30분에 홋카이도(北海道)의 한 중앙에 자리한 아사히가와(旭川) 역에 도착했다. 역 앞은 어느 일본 도시의 역 앞과 비슷한 모습이다. 역 앞에 큰길이 가로질러 지나고 그 앞으로 도시의 번화가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여름날, 시원한 저녁 바람이 산들거린다.

 

밤이 깊어가는 헤이와도리(平和通り) 쇼핑공원에는 기모노를 입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아사히가와(旭川)의 여름 마츠리(夏まつり)가 시작하는 날이었다. 아사히가와를 소개하는 팸플릿에서 잠깐 보았던 여름축제가 바로 오늘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도시는 큰 퍼레이드가 방금 끝났는지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있었다. 일본에서는 느끼기 힘든 활기와 생동감이 도시 전체에 흐르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어렵사리 인터넷으로 예약한 헤이와도리 주변의 작은 호텔을 향해 가족과 함께 여행 가방을 끌었다. 나의 가족 사이로 기모노를 입은 수많은 아사히가와의 남녀노소 시민들이 지나갔다. 약간의 아쉬움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조금만 일찍 왔으면 신위를 모신 대형가마인 '미코시(神與)'와 함께 장식을 단 수레인 '다시(山車)'의 거리 행진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호텔에서 아사히가와를 소개하는 자료를 다시 찾아보니 아사히가와의 여름축제는 다행히 8월 초까지 열리고 있었다. 이 축제는 주로 8월초에 3일간의 일정으로 열리는 아사히가와의 한여름 대 이벤트였다. 아사히가와의 주민 중 무려 5천명이 참석한다는 무용 대퍼레이드는 아직 우리 앞에 남아있었다.

 

 

다음날 만난 여름축제는 일대 장관이었다. 각 마을을 상징하는 깃발을 나부끼며 각양각색의 기모노를 입은 주민들이 지나갔다. 본부석에는 아사히가와 상공회의소에서 이 거대한 축제를 주최한다고 되어 있었다.

 

 

축제의 행렬에는 아사히가와의 온갖 무용회와 민간무용써클이 망라되어 있었다. 동아사히가와 문화단체 연락협의회, 노인그룹 연합회, 북성시민위원회, 아사히가와시수도국. 축제의 행렬은 관에서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사히가와에서 스스로 생겨난 수많은 민간단체와 모임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었다. 이 수많은 민간단체들은 서로 다른 색상의 화려한 기모노를 입고 서로를 구별하고 있었다.

 

 

행렬 사이로 '토토로(トトロ)'를 닮은 거대 인형이 뒤뚱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워낙 뚱뚱해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 거대 인형 주변에서 여러 사람이 이 인형을 극진하게 모신다. 유심히 축제의 행렬을 지켜보던 신영이가 계속 웃음을 터뜨렸다. 9월에 열리는 일본 전국건강복지축제의 홋카이도 대회 시민위원회에서 만든 대회 마스코트인 '우츠상(うつさん)'이다.

 

 

'우츠상'은 바로 홋카이도에 많이 사는 명물인 우는 토끼, '나끼 우사기(なき-うさぎ, 啼兎)'이다. 토끼가 우는데 우는 소리가 독특하게 커서 우는 토끼라는 뜻의 '나끼 우사기'라고 불린다. 얼핏 보면 얼굴의 눈과 귀는 쥐와 비슷하게 작고 둥글지만 몸매가 워낙 풍만하고 푸짐해서 너무 귀엽게 보인다. 우사기의 특징을 잘 표현한 작은 귀에는 귀여운 리본을 매고 있고 굴곡이 없는 항아리형 몸매는 너무나 웃겼다.

 

축제 행렬의 참가자들은 '우츠상' 외에도 각 팀의 개성을 살린 마스코트들을 데리고 나왔다. 아사히가와시 수도국의 상하수도부에서는 모자를 눌러쓴 칸다쿤(カンタくん) 인형을 데리고 나왔다. 칸타쿤은 나 어릴적 일본 만화영화에서 많이 보아왔던 캐릭터를 닮아있다. 만화 캐릭터는 외지 관광객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나와 나의 가족은 축제의 행렬을 한참동안이나 구경했지만 행렬의 대오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남자들이 입은 붉은 색상의 기모노가 유독 눈에 띄었고 여자는 다양한 색상의 기모노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손에 든 부채를 팔랑거리며 여유있게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다.

 

대로변 백화점에서 집에서 사용할 생활용품을 사고 나온 뒤에도 행렬은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었다. 해가 거의 지고 저녁시간이 되어갔지만 마을 주민들의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아마도 행렬에 참여하고 싶은 마을 사람들은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나와 나의 가족은 저녁까지 이어진다는 축제를 더 즐기기 위해 일단 저녁식사를 했다. 일본은 어디나 그렇지만 중심가의 식당은 일식이든 서양식이든 깔끔하고 음식도 먹을 만했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먹기 위해 헤이와도리의 유명한 베니스풍 식당인 '라파우사(LaPausa)'에 들어갔다. 서울의 어느 이태리 식당에 뒤지지 않을 만큼 맛이 뛰어났다.

 

게다가 일본어를 잘 하지 못하는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주인의 친절이 마음을 포근하게 했다. 신영이가 식당에서도 영어책을 집중해서 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나에게 어떤 책을 보고 있느냐고 물어보면서 일본인들 특유의 칭찬을 늘어놓는다. 나의 짧은 일본어 설명을 듣고 우리 가족을 일본 사람으로 본 모양이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나갈 때까지 그는 유창한 일본어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어는 느낌으로 알아들으려고 노력하고, 도저히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웃음으로 대신했다.

 

저녁이 깊어가자 나는 일본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장면과 만나게 되었다. 도시 중심가의 길을 막고 향토음식을 파는 노점이 셀 수 없이 들어서고 있었다. 노점들 사이로 기모노를 입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왁자지껄하게 몰려들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본사람들의 이런 활기찬 저녁시간은 처음 접한다. 아사히가와의 밤을 즐기는 이벤트가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대로변 사거리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고 있었다. 대로 한 켠에는 공연을 위한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반짝거리는 연두색의 화려한 공연복장을 입고 있었다. 아이들은 현란한 댄스음악에 맞춰 자신들이 준비한 춤을 시민들에게 마음껏 보여주고 있었다. 대로변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리듬에 맞춰 박수를 치며 어린 학생들에게 호응하고 있었다.

 

 

이런 풍경은 내가 사는 대한민국에서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일본에서 이런 활달한 공연을 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얌전하고 조용한 일본 사람들에게도 이런 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새로운 경험이었다. 밤늦게까지 공연은 끝나지 않았다. 마치 아사히가와의 모든 초등학교가 이 축제에 참여한 것 같았다. 관객 중에는 어린 학생들의 가족들도 있을 것이다. 축제의 관객들은 밤이 깊어도 자리를 떠날 줄을 몰랐다.

 

 

인산인해 속에서 사람들을 비집고 공연장 밖으로 나오는 것도 힘들었다.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축제. 아사히가와 시민과 여행자들은 함께 붙어서 공연을 보며 흥을 돋우고 있었다.

 

지역축제는 외지인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상업성을 띠고 축제의 내용이 재미 위주로 많이 구성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사히가와 축제는 외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노력 외에도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아사히가와에서는 축제 마지막 날에 축제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 모두 참여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아사히가와의 축제는 시민들의 호응 속에 긴 역사를 지켜왔던 것이다.

 

홋카이도의 시원한 밤공기 속에 헤이와도리를 가로질러 숙소로 돌아오고 있었다. 기모노를 입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그들은 많은 인파 속에서도 소란하지 않게 축제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호텔의 지배인 아저씨가 밤 늦게 들어오는 나의 가족을 보고 웃으며 말을 건넨다.

 

"아사히가와 여름축제, 대단하지요?"

"상상 밖의 축제에요. 아사히가와에서 너무 즐거운 경험을 했습니다."

 

너무 깊은 밤이었다. 나는 한여름 밤의 즐거운 흥분을 가라앉히며 이불 속으로 쏘옥 들어갔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09년 7월말~8월초의 일본 여행 기록입니다.  


태그:#일본, #홋카이도, #아사히가와, #여름축제, #우는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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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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