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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엄경철·KBS 새 노조) 조합원들이 30일 업무에 복귀했다. '단체협약 쟁취'와 '공영방송 사수'를 걸고 일손을 멈췄던 KBS 새 노조는 "조속한 시일 내에 단체협상을 재개해 공정방송위원회 설치 등 단체협약 체결에 적극 노력하겠다"는 문구 하나를 따내는 데 29일간의 파업이 필요했다.

 

앞서 파업 28일차에 열린 세 번째 '시민과 함께 하는 KBS개념 탑재의 밤'에서 엄경철 KBS 새 노조 위원장은 "새 노조를 인정받는 마무리 수순을 밟으면서 또 다른 투쟁으로 가려고 한다. 파업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파업 정신으로 제작 현장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 지금의 이 마음, 이 결기 결코 잊지 말고 현장에서 보여주자"면서 사측과 가합의했음을 밝혔다.

 

사측과의 협상에 진전이 있는 건 알았지만 가합의까지 간 걸 몰랐던 KBS 새 노조 조합원들은 다소 놀라면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지난 한달 여 동안 하나같이 "파업이 즐겁다,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던 조합원들은 그만큼 새 노조 집행부에 대한 신뢰도 컸던 것이다.

 

'MB의 방송'이 아니라 '국민의 방송'으로 되돌아가겠다고 나섰던 이들의 파업에 많은 시민들이 지지를 보냈고, 또 많은 언론도 주목했다. 모든 일엔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보이지 않은 곳에서 이 파업에 열성적으로 참여한 조합원들이 있다. '파업봉사단'(파봉단)으로 불렸던 이들은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파봉단으로 활동한 임종빈 기자(28∙보도본부 국제팀)를 파업 19일차, 28일차였던 지난 19일, 28일에 만났다. 그는 19일엔 결의대회 현수막을 잡고 있었고, 28일엔 '시민과 함께 하는 KBS 개념탑재 문화제'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파봉단 임 기자가 겪은 지난 한 달은 어땠을까.

 

"'쪽 팔려서 파업했다'는 구호가 정확한 표현"

 

- 파업봉사단은 뭔가.

"보통 다른 곳에서는 자봉단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우리는 좀 새롭게 하자고 해서 '파봉단'을 꾸렸다. 기자, PD 등 직종을 가리지 않고 약 15명 정도가 같이 했다. 선배가 파봉단을 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고민하지 않고 단번에 하겠다고 답했다. 이 파업에 내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파봉단은 주로 무슨 일을 했나.

"주로 몸 쓰는 일을 했다. 행사 준비물이나 유인물 등 짐을 나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중 핵심은 현수막을 옮기고 들고 있는 거다. 다른 사업장은 파업하는 내내 현수막을 내걸고 파업하는 걸 알리는데 우리는 회사 측이 현수막 하나 못 달게 해서 매일 집회 때마다 뒷배경용 현수막을 들고 있어야 했다."

 

 

- 이 파업에 도움이 되고 싶었던 이유가 있다면….

"이번 파업은 정말 기다려온 파업이었다. 기존 노조에서 특보 사장을 막는 파업에 실패했을 때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 입사한 지 4년 됐는데 2008년 8월(정연주 전 사장이 해임된) 이후 KBS가 한 순간에 추락한 느낌이다. 입사 면접에 앞서 "요즘 KBS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KBS에 대한 개혁, 변화의 요구가 있고, 그 요구에 따라 내부에서 기존의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난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는 것 같다"는 답변을 하려고 준비했었다. 또 입사 후엔 이렇게 좋은 언론사도 있구나, 원래 이렇게 좋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한 순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지더라. 그 모습 보면서 "아, KBS가 예전엔 이랬구나" 하면서 자괴감에 빠졌다. 파업 전엔 이런 분위기에서 '방송쟁이'일 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우리가 자주 외치는 구호 중에 "쪽 팔려서 파업했다"는 구호가 있는데 정확한 표현이다. 그래도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바꿨기 때문에 그렇게 좋았던 시기가 만들어졌던 것 아니겠나. "KBS가 이 정도 밖에 안 되나가 아니라 바꾸면 된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 파업 일정이 없을 땐 어떻게 보냈나.

"새벽 6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하는 기자들의 로망은 오전에 실컷 자는 건데 이번 파업 동안 그 꿈을 이뤘다. 조금 늦게 일어나서 파업 결의대회에 참가하고 저녁 땐 여의도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체력을 키웠다. 파업출정식을 KBS본관 앞 민주광장에서 했는데 그날 청원경찰들한테 너무 힘없이 끌려나왔다. 다음번엔 조금이라도 더 버티고 싶어 체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임시로 노조사무실로 얻어 쓰고 있는 기자협회사무실이 5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다. 물건 옮긴다고 매일 거길 오르내리려니 그 역시 체력이 필요하더라. 그런데 저녁 때 술자리들이 많아서 운동을 많이 하진 못했다. 기자들도 다 함께 모이기 힘든데 이번 파업을 통해 PD 등 다른 직종 조합원들과 알게 되고 서로 고충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 29일 파업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대구 내려갔을 때가 좋았다. 파업20일째 조합원 대토론회를 한 후 우리한테 동력을 높일 계기가 필요했는데 대토론회 이틀 후에 한 지역탐방이 그런 계기를 만들어줬던 것 같다. 서울에 있던 조합원들이 대전, 광주, 창원 등 지역총국으로 내려갔다. 부산에 내려간 조합원들은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선전전했던데 나는 대구로 내려가 대구 시내를 돌아다녔다. 36도가 넘는 정말 더운 날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그동안 지역에 있는 조합원들은 올라와서 싸웠는데 내려가 보니 참 힘들 것 같더라. 본사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우르르 집회 나오기도 쉬운데 지역은 소수인 상황에서 참 어렵게 투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본사 조합원들을 환대해줬다.

 

파업 26일째, 조합원이 1000명을 넘은 게 대구 보도국에서 10여 명이 한꺼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서울 못 올라온 사람들은 파업 분위기를 잘 느끼지 못하니까 "우리 잘 싸우고 있다. 여러분이 들어오면 큰 힘이 될 거"라고 얘기했는데 그런 진심이 잘 전해졌나 보다. 우리가 다녀간 후 10여 명이 가입했더라."

 

 

- 파봉단으로 힘쓰는 일도 많고 파업이 길어져서 힘든 적도 있었을 것 같은데.

"우리야 시키는 대로 하면 되니까 별로 힘든 게 없었다. 내일 집회에 몇 명 나올까 매일매일 걱정하는 집행부가 많이 힘들었을 거다. 아내도 KBS 사회부 기자로 사회부 대의원을 하고 있는데 매일 조합원들한테 문자 보내고 매번 인원 확인하면서 힘들어하더라. 오늘로 '찍사'를 세 번째 했다. 주로 편집국장 형이 하는데 홈페이지에 사진 올리고, 노보 특보 만드느라 밤에 늦게 끝나더라. 사진 찍는 게 취미이기도 한데 더 많이 찍을 걸 그랬다."

 

- 복귀 후 업무는 어떨 것 같나.

"원래 8분짜리 프로그램 2개를 만든다. 파업 전에 취재를 해놨는데 그 내용이 머릿속과 수첩에만 있어서 다 잊어버리지 않았을까 걱정이다. 미리 원고를 써뒀어야 하는데 이제 슬슬 걱정이다. 또 8월에 해외취재가 있어서 복귀하자마자 섭외해야 하는데 휴가철이어서 비행기표 등을 구하기 힘들 것 같다.

 

무엇보다 사측이나 간부들이 어떻게 나올까가 걱정이다. 한 후배가 며칠 전에 부장과 마주쳐서 인사를 했는데 인사를 안 받았다고 한다. 우리가 간부들이 미워서 파업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다음 인사 때 파업에 많이 참여한 부서 사람들을 찢어놓는단다", 8월에 휴가 내뒀던 조합원들한테 "너희 때문에 휴가 못 가고 일한 사람들도 있는데 너희들이 휴가 가는 게 맞냐"라는 소리들이 들려온다고 하더라. 들어가서가 더 중요할 것 같다."

 

- 지지하던 시민들은 합의문이 부족하다, 더 오래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한다면 겸허히 받아들여야 될 거라고 본다. 우리의 힘이 아직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거니까…. 그래도 복귀자가 생긴 후에 들어가면 사측이 이긴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복귀하고 들어가서 협상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는 지금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파업 종결 선언하던 날, 새노조 조합원들 눈물

 

파업 19일차 만났을 때, 임 기자는 "지금 이대로 현장투쟁으로 전환하자고 해도 이번 파업이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2년여 동안 '김비서'로 불리면서도 행동하지 못했던, 억눌려왔던 감정을 분출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것, 파업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이고 성과"라고 생각한다면서.

 

파업 종결을 선언하던 29일, KBS 새 노조 조합원들이 하나같이 보였던 눈물은 "새 노조의 파업 자체가 승리"였음을 보여준 '승리의 눈물'이었다.

 

28일 개념탑재의 밤이 끝나고 파봉단은 어김없이 곳곳에 걸렸던 현수막을 걷어내고, 의자 등 소품들을 실어 날랐다. 엄경철 위원장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쓰레기들을 정리하던 파봉단원들 어깨를 힘있게 두드리면서 지나갔다. 또 지나가던 조합원들이 파봉단이 들고 있던 짐을 함께 들어 옮겼다. 지난 한 달여의 파업이 KBS 새 노조 조합원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임 기자는 다음 투쟁 땐 "보도본부에서 웃긴 후배 한 명 섭외해서 밴드나 결성해봐야 겠"단다. 이번 파업으로 일약 스타가 된 라디오본부 조합원들로 구성된 '장기화와 몰골들' 공연을 세 번 봤더니 조금 식상해졌다고. KBS 새 노조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태그:#KBS 새 노조, #임종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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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눈으로 본 세상, 그 속엔 새로운 미래가 담깁니다. 월간 <노동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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