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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찾은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의 한 중소기업 공장에 '압류물 표시'가 붙어있다. 이 기업은 부도가 난 상태로, 현재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
 21일 찾은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의 한 중소기업 공장에 '압류물 표시'가 붙어있다. 이 기업은 부도가 난 상태로, 현재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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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업을) 왜 했는지 모르겠어요."

경기 시흥시 시화공단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K씨의 하소연이다. 반백의 머리카락과 검은 얼굴의 그는 지난 21일 오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자금난, 인력난 그리고 '대기업의 쥐어짜기'에 버티고는 있지만 쉽지만은 않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매출 25억 원 수준으로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최근 마진율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올해 들어 원자재 값이 50% 이상 상승했지만, 납품하는 대기업의 요구로 생산제품의 가격을 올리지 못한 탓이다. K씨는 "대기업과의 갑을 관계에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LG화학이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는 이날 신문 기사를 가리키며 쓴웃음을 지었다. 최근까지 지역 중소기업 사장 모임 회장을 지낸 그는 "삼성전자가 올해 2/4분기 무려 5조 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등 대기업은 잘 나가지만,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횡포와 지원 부족으로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중소기업은 위기다. 지표경기가 좋아지고, 대기업은 사상최대의 실적을 냈다는 보도가 이어지지만, 대기업의 협력업체인 중소기업들 사정은 여전히 '한겨울'이다. 전문가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심해지면, 경제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물론 이같은 경고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좀처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활력 떨어진 중소기업 산업단지... "말로만 파트너, 실제로는 봉"

지표경기는 좋아진다고 하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어렵다. 21일 찾은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의 한 중소기업 공장은 일거리가 없어 멈춰져있다.
 지표경기는 좋아진다고 하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어렵다. 21일 찾은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의 한 중소기업 공장은 일거리가 없어 멈춰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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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 소재 기반 중소기업 1만 개가 모여 있는 반월·시화 국가산업단지(경기 안산·시흥시 소재)는 예년과 같은 활력을 찾기 힘들다. 이곳 중소기업의 상당수가 잘나가는 대기업의 하청기업들이지만, 이들 기업 경영진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찾기 힘들다. 노동자들 역시 최저임금에서 허우적되고 있다.

밸브 등을 만들어 대기업 A사에 납품하는 중견기업 B사는 2008년 1000억 원의 매출과 1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낼 정도로 튼실한 기업이었지만, 올해는 적자가 예상된다. 이는 대기업의 단가 인하 요구 탓이 크다. 회사 내에서는 "말로만 파트너나 협력업체지, 사실상 봉'이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 회사 노조 간부는 "대기업은 3~5% 단가 인하를 요구한다, 매년 1~2 차례씩 공장을 방문해 점검한 뒤 '단가를 더 인하하라'고 한다"며 "회사는 어쩔 수 없이 인건비를 줄여서라도 대기업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회사와 노동자 모두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기아자동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 C사의 경우, 일주일에 평균 한 번꼴로 공장이 멈춘다. 올해 영업이익 목표는 '0'이다. 올해 상반기 자동차 99만261대를 팔아 반기(1~6월) 사상 최대 실적을 이룬 기아차와 대비된다.

이 업체의 한 관계자는 "기아차는 1년에 두 세 달 10%의 판매단가 인하를 요구한다,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들어줄 수밖에 없다"며 "또한 기아차가 잘 나가더라도 외국 회사 부품을 쓰거나 부품을 더 싸게 공급하는 업체와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아, 우리는 기아차와 달리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한 "현대·기아차가 계열사인 부품업체 다이모스를 통해 부품을 조달하기 때문에, 1차 하청기업이었던 우리는 2차 하청기업이 됐다"며 "중간에서 다이모스가 (당초 하청업체) 수익의 상당 부분을 취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중소기업은 피멍

부도가 난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의 한 중소기업 공장은 기계설비들이 철거된 채 방치돼 있다.
 부도가 난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의 한 중소기업 공장은 기계설비들이 철거된 채 방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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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최근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극화에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21일 제주롯데호텔에서 개최된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국내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대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중소기업과 상생하려는 노력을 해달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정 총리는 지난 9일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관계 부처에 중소기업 실태와 애로를 점검하고 개선방안을 서둘러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는 21일 '대·중소기업 거래질서 확립조사단'을 구성하고 대기업 불공정행위 실태 점검에 들어갔다.

하지만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가 크게 개선될 것으로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미 지난 2006년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2009년 4월 납품단가 조정협의제도가 도입됐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는 크게 줄지 않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6월 발표한 '중소제조업의 납품단가 반영 실태 및 애로요인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0년 4월 현재 원자재 구매가격은 2009년 1월보다 18.8% 상승했지만, 납품단가는 같은 기간 고작 1.7% 상승했다.

또한 조상 대상 208개 중소기업 중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전혀 반영하지 못한 곳이 44.2%나 됐다. 반면, 가격에 전부 반영했다고 응답한 기업은 3.9%에 불과했다. 이들 중소기업의 45.2%는 정부에 대기업 담합 등 불공정거래 대한 강력한 단속과 제재를 요구했다.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 요구로 피멍드는 중소기업의 사정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산업연구원(KIET)에 따르면, 국내 5개 자동차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우량협력업체의 2008년 평균영업이익은 2004년에 비해 22.4% 줄었다. 반면,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5.3% 줄어드는 데 그쳤다.

또한 현대차 계열사와 일반 협력업체들의 실적 차이도 컸다. 현대차 계열 11개사의 평균 영업 이익률은 2003년 8.4%에서 2009년 상반기엔 9.3%로 좋아진 반면, 31개 비계열 협력업체들은 같은 기간 4.8%에서 2%로 크게 나빠졌다.

"대·중소기업 양극화 심해지면, 경제 기반 자체가 무너져"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심화된 것은 우리나라 경제정책이 대기업 위주로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조이현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70~80년대부터 정부는 재벌 위주의 정책을 폈고, 그 결과 재벌이 과도한 힘을 가져 대·중소기업 간의 균형이 깨친 것"이라며 "정부가 더욱 적극적인 정책을 펴지 않는 이상, 대기업의 횡포가 줄어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의 희생을 발판으로 대기업이 이익을 독과점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우리나라 경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대기업들이 고용을 늘리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고용의 88%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갈수록 영세화되고 무너질 경우, 경제 활력이 떨어져 결국 경제 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태그:#대중소기업 상생, #대기업 사상 최대 실적, #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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