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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독도서관을 둘러 본 다음, 길을 왼편으로 잡는다. 도서관 정문 앞에도 한글로 표기된 콩다방이 보인다. 인사동과 북촌의 많은 커피숍은 아무래도 한국적인 정서가 강조되는 곳이라 그런지 서구의 브랜드로 한글 간판을 다는 곳이 많은 것 같다. 기분 좋은 일이다.

한글로 된 콩다방 간판
▲ 콩다방 한글로 된 콩다방 간판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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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좀 더 가면 내가 감기에 걸리면 단골로 가는 '이운경 내과의원'이 나온다. 과거 정부에서 대통령 주치의로 활동한 초로의 의사가 계시는 곳으로 보청기를 끼고 컴퓨터도 없이 환자기록카드에 볼펜으로 표기를 하여 검진하고 처방하는 곳이라 정감 있는 의원이다.

가회동 주민센터
▲ 북촌미술관 가회동 주민센터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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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사거리에서 길을 북쪽으로 잡으면 '북촌미술관'과 '가회동 주민센터'이다. 이곳은 구한말 천도교 제 3세 교주로 독립운동을 했던 '손병희(孫秉熙)선생의 옛 집터'이기도 하다. 손병희 선생은 기미년 독립선언 시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 3.1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었으며 교육 문화 사업에 힘쓴 분이다. 

비스킷 나눠먹기
▲ 조각 비스킷 나눠먹기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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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입구에는 조각가 '구본주'의 작품인 '비스킷 나눠먹기'가 설치되어 있다. 의자를 겸하고 있는 이 조각은 실용주의 설치미술로 아주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런 작품이 도심 곳곳에 많이 설치되는 날이 왔으면 한다. 

작은 수제피자집
▲ 피자집 작은 수제피자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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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길을 좀 더 오르면 궁중요리가 '황혜성' 선생이 운영했던 요리점 '궁연'이다. 지금은 후손들이 경영을 한다고 하는데, 마당이 정말 아름답게 꾸며져 있고, 안쪽에 큰 나무가 좋은 곳이다. 그리고 이내 '작은 수제피자집'과 '커피점'이 있다. 북쪽에는 이런 작고 아름다운 가게들이 참 많다.

50~60년은 된 것 같은 철물점, 세탁소, 빵집, 커피숍, 구멍가게, 식당 등등. 참 정겹고 아늑하다. 그리고 길 건너에 '노틀담 몬테소리학교'가 보인다. 어린이 교육 자료로 몬테소리가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많은데 이곳에 학교가 있는 것은 처음 알았다.

인촌 동상
▲ 중앙고 인촌 동상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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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중앙고등학교'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매듭박물관' '가회박물관'을 지나 중앙고에 닫는다. 이곳도 사실을 박물관 수준으로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있는 곳이다. 우선 본관 앞에 '인촌 김성수 선생의 동상'이 있고, 좌우측 건물도 일제 강점기에 지은 건축물로 건축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교실이다.

3. 1운동 기념관
▲ 3. 1 기념관 3. 1운동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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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일요일에는 예배당으로 쓰이는 '강당'과 강당 옆에 있는 '3.1기념관'은 기미년 독립운동 당시에 학생들이 모여서 독립운동의 계획을 논의하던 곳이다. 그리고 다시 학교를 돌아서 정문 쪽으로 나오면 중앙학원의 설립자 가운데 한사람으로 인촌의 백부인 '원파 김기중(圓坡 金祺中)' 선생 동상이 있다.

독립운동
▲ 6.10 기념비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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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중앙고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주도를 했던 '6.10만세 기념비'도 보인다. 학생들이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곳이 바로 이곳 인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말년에 인촌이 친일을 하여 욕을 먹기는 했지만 말이다.

명성황후의 출생지
▲ 김형태 가옥 명성황후의 출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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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고를 나와 북촌 한옥골목으로 가는 길에 언덕 위에 있는 '김형태 가옥'을 잠시 바라본다. 고종황제의 비인 명성황후가 이 집터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현재의 집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서민한옥이지만, 명성황후가 태어난 사랑채는 100년이 넘는 오래된 건물이라고 한다. 일반인에게 개방이 되지 않아 입장을 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이어 안산에서 국회의원과 치과를 하고 있는 김영환 의원이 경영하는 국내 최초의 '한옥으로 된 믿음치과'가 보인다. 이곳에 한 번쯤은 치아 치료를 위해 방문해 보고 싶지만, 여력이 없어서 잘 되지 않는다.

남아공
▲ 남아공 대사관저 남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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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측 골목으로 길을 잡으면 2010년 월드컵 주체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관저'가 보인다. 역시 성북동과 북촌에는 대사관저가 많은 것 같다. 우연히 발견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사관저는 반가움이 넘친다. 이제부터 월드컵의 계절이니 말이다. 한국의 16강 진출을 이곳에서 다시 한 번 기원한다.

그리고 한옥마을 골목길 뒤편 입구에 있는 가회동 '이준구 가옥'이다. 1930년대 지어진 한옥과 양옥의 중간정도가 되는 건축물로 유명한 곳이지만, 언덕 위에 있어 지붕만 보이는 것이 아쉽다. 하지만 입구의 담쟁이 넝쿨이 좋아 사진을 한 장 찍어 둔다.

북촌
▲ 북촌한옥마을 북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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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한옥골목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2007년 대선 전에 이곳 한옥에서 살다가 당선되어 청와대로 이사를 갔다고 하니 터가 좋은 곳인가 보다. 나도 이곳에 작은 한옥을 얻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돈이 없어서 당분간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생각보다 빈집이 많은지 문이 외부에서 굳게 닫힌 곳이 많다. 대략 20~30평 정도 되는 작은 한옥이 주류인 것 같은 곳이다. 

북촌
▲ 북촌한옥마을 북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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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한옥골목은 사실 이곳을 주로 촬영지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자주 보던 집들이 많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반드시 이곳 한옥에서 한 번쯤 살고 싶다. 

북악
▲ 북악산 북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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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길을 오르면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孟思誠)선생의 집터'가 나온다. 선생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재상을 지낸 인물로 여러 벼슬을 거쳐 세종 때 이조판서로 예문관 대제학을 겸하였고 우의정에 올랐다. '태종실록'을 감수, 좌의정이 되고 '팔도지리지'를 찬진하였다. 조선 전기의 문화 창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선생은 황희(黃喜)와 함께 조선 전기의 문화 창달에 크게 기여했고, 성품이 청백 검소하여 평소에도 남루한 행색으로 생활을 했으며, 시문(詩文)에 능하고 음률(音律)에도 밝아 향악(鄕樂)을 정리하고 악기도 만들었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말년에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를 지은 학자이기도 하다.

맹사성 선생의 집터를 둘러본 다음, 일행은 '동양문화박물관'을 지나 삼청동으로 길을 잡는다. 삼청동 가는 길목에는 조선시대 궁중의 화과(花果)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청인 '장원서(掌苑署)터'가 있다.

과수와 꽃
▲ 장원서 과수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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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서는 전국의 과수원에 과수를 식재하거나 접목하여 그 수입을 대장에 기록하고 관리하는 관청이다. 특히 궁중의 정원 관리와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유실수의 개발과 식재에 신경을 많이 쓰던 관청으로 궁궐에 꽃과 과일을 공급하던 일을 주로 했다.

주요 사업으로는 제주도에 있던 감귤을 남해안 지역으로 이식하여 재배하는 기술연구는 물론 우리 농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지대한 공헌을 하여 오늘날 '원예연구소'의 전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 아지오 이탈리안 레스토랑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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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길을 좀 더 가면 우측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지오'가 보인다. 인사동과 홍익대 인근에 레스토랑과 의자 갤러리를 경영하는 김명한 사장이 최근 북촌에 개업을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패션디자이너 출신의 김 사장의 안목이 돋보이는 가게로 내외부의 인테리어와 아웃테리어가 남다른 곳이다. 이곳도 내부 장식과 집기의 상당부분을 100~200년 전 이탈리아서 쓰던 식탁과 의자들로 치장한 것처럼 보인다.

역사 문화와 함께하는 서울시 중로, 중구 걷기 모임 카페
http://cafe.naver.com/daipapa.cafe


태그:#북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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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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