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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간 제주 마늘을 주워 모았습니다. 부지런히 모으다 보니 한상자가 되었습니다.
▲ 제주 마늘 줍기 지난 2주간 제주 마늘을 주워 모았습니다. 부지런히 모으다 보니 한상자가 되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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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부터 제주 마늘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오전에 귤농장으로 가서 하루 종일 귤농장주가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고 오후 6시경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큰 봉지를 하나 들고 마늘 밭으로 갑니다. 제가 마늘을 주워 모으는 이유는 울산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주기 위해서입니다.

일을 마치고 오후 늦게 가 본 마을 마늘 밭은 쑥대밭을 방불케 했습니다. 마늘을 캘 때는 간지런히 놓여 있던 마늘 줄기가 마치 잠자고 일어난 사람 머리카락처럼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습니다. 낮에 누군가 마늘밭에 다녀갔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제주 마늘 값이 장난이 아니거든요. 마늘 줍던 어느 중년 부인께서 말했습니다.

"작년엔 그나마 떨어진 마늘이 좀 있던데, 올해는 마늘 값이 비싸 그런가 일하는 할망들이 파지 마늘을 모두 주워 가나 봐요. 떨어진 마늘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네요."

그러나 저는 생각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쯤은 안 있겠나? 이 넓은 밭에...'

누군가 먼저 다녀갔다고 마늘 줍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제주도 마늘이 비싸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전해 들었기에, 울산에 있는 가족이 생활하면서 들 마늘 살 돈이라도 아끼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천천히 걸어가면서 마늘 밭을 이리저리 살펴보았습니다. 마늘 줄기를 다시 옆으로 치우면서 마늘 밭을 걸어다녔습니다. 낮에 온 사람들이 모두 주워가서 한 개도 없을 것만 같던 마늘쪽이 하나 둘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마늘쪽을 주울 땐 기분이 어찌나 좋던지요.

정신없이 마늘 밭을 헤매다 보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더군요. 시계를 보니 오후 8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어두워지고 있을 때는 군에서 훈련할 때 하는 낮은 포복 자세로 마늘 밭에다 얼굴을 들이밀고 들여다 보았습니다. 날이 어두워 지니 흙은 검게 보이고 마늘은 조금 하얗게 보여 구분이 되더군요. 그렇게 두어시간 주워 모으니 큰 봉지에 조금씩 쌓여 묵직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빈 상자를 하나 구해 거기다 모았습니다. 2주 정도 모으니 상자 하나가 거의 차 올랐습니다. 그동안 주워 모은 마늘을 펼쳐놓고 말렸습니다. 어제(9일) 오전 드디어 시간이 나서 울산 가족이 사는 집으로 한 상자 보내 줄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늘 모은 기념으로 제주 마늘 밥을 한번 해 먹어보면 어떨까?'

언제나 호기심이 많은 저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자밥, 고구마밥, 콩밥, 팥밥, 약밥….' 여러 가지 다른 밥은 많이 해 먹어봤어도, 마늘 밥은 한 번도 먹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참에 좋다고 소문난 제주도 마늘로 밥을 한번 지어 먹어 보기로 했습니다. 제주도 마을을 울산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 기념으로 말이지요. 마늘을 한 줌 정도 남겨 놓고 보냈거든요.

밥 솥을 여니 마늘 향이 가득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습니다.
▲ 제주 마늘로 지은 마늘 밥 밥 솥을 여니 마늘 향이 가득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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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어떨지 몰라 많이 넣지는 않았습니다. 한 줌 남겨놓은 마늘을 꺼내 물에 불린 뒤 칼로 일일이 껍질을 깠습니다. 쌀을 씻어 넣고 껍질 깐 마늘도 씻어 쌀 위에 넣고 물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전기 밥솥의 취사 기능에 불이 오도록 해놓았습니다. 몇 십 분 후 전기밥솥에서 끓는 소리가 났습니다. 김이 올라 오면서 마늘 냄새도 풍겼습니다. 과연 마늘밥 맛은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더군요.

제주 마늘로 한 밥과 제주 귀농 12년 선배님 조준기 선생님 사모님이 주신 김치에 먹어 보았습니다. 이 맛을 어찌 말로 표현 할까요? 함 드셔 보실래요?
▲ 마늘 밥과 김치 제주 마늘로 한 밥과 제주 귀농 12년 선배님 조준기 선생님 사모님이 주신 김치에 먹어 보았습니다. 이 맛을 어찌 말로 표현 할까요? 함 드셔 보실래요?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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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던 시간. 취사가 끝나고 보온으로 '철커덕'하고 바뀌었습니다. 바뀌자 마자 뜸들일 시간도 주지 않고 밥솥 뚜껑을 열어 보았습니다. 궁금해서 더 기다릴 수 없었거든요. 밥솥을 열자 김이 확 솟아 오르고는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 사이로 하얀 마늘이 보였습니다. 저는 얼른 밥그릇에다 밥과 마늘을 펐습니다. 그리고 지난 번 금악에 계시는 귀농 선배 조준기 선생님 댁에 갔을때 형수님이 주신 김치를 꺼내 놓고 수저를 들고 먹기 시작했습니다.

밥과 익은 마늘을 한수저 뜨고 그 위에다 배추김치 한조각 얹은 뒤 한 입 먹어 보았습니다. 천천히 조심스레 어떤 맛일까 음미하며 씹었습니다. 익은 마늘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생마늘은 씹을 때 매운 맛이 나서 별로던데 익은 마늘에선 달착지근한 맛이 났습니다. 결국 제주 마늘밥을 두그릇이나 먹어 치웠습니다.

제주로 귀농을 한 지 두 달이 넘었네요. 울산에 있었다면 감히 마늘로 밥을 해먹을 생각이나 했을까요? 제주도에 오니 감자도 캐 먹을 수 있고 마늘 밭에 가서 마늘도 주워 모아 이렇게 밥도 해먹어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저는 제주도 귀농을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현실이지만 잘 참고 견뎌 볼 것입니다. 제 인생에도 제주 마늘밥 처럼 감칠맛 나는 날이 오겠지요. 살다보면.

덧붙이는 글 | 저는 지금 혼자 울산에서 멀고먼 고장 제주도로 귀농한 상태 입니다. 혼자 밥해먹고 빨래도 하며 지낸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하지만 가족과 함께 모여 제주도 어느 집에서 시골 밥상 차려놓고 저녁 먹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힘겹지만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태그:#제주 마늘, #제주 귀농, #제주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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