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목요일이었나? 신문을 보다가 흠칫 놀랐다.

"경찰 '불심 검문권' 대폭 강화"

불심 검문이라. 이명박 대통령이 되고 참 자주 듣게 되는 '추억 속의 말' 가운데 하나다. 평생 불심 검문 따위 한 번도 안 당하고 사는 '착한' 사람들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하고 넘어갔겠지만, '시키는 대로 잘 하는 것'이 착한 것이라면 그런 착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나 같은 사람은 그런 기사 제목을 보고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는데, 내용이 대충 이렇다. 원래는 '질문'할 수 있다고 돼 있던 게 '요구'할 수 있다고 바뀌었고, '흉기'를 검사할 수 있다고 돼 있던 게 흉기와 '그밖의 위험한 물건'을 검사할 수 있다고 바뀌었다. 게다가 불심 검문을 당한 사람이 답변을 거부할 수 있다는 조항이 빠졌다. 경찰의 권한이 더 세지고, 조사할 수 있는 대상은 더 넓어진 거다.

하지만 이전에도 그 불심 검문이라는 게 법대로 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 국민들이 인도에서 시위하면 집시법 위반이고, 경찰이 광장을 점거하는 것은 공무 집행인 세상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 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하기 시작하면서 그런 경험을 훨씬 더 자주 하게 된 것 뿐, 언제나 경찰은 그 자체로 하나의 권력이었다.

불심검문 강화... 이제 경찰 멋대로 하라는 것

불법적인 불심검문으로 주민들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가 없다.
 불법적인 불심검문으로 주민들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가 없다.
ⓒ 평택범대위

관련사진보기


2006년 봄이었다. 평택에 있는 미군 기지를 넓히겠다고 대추리 주민들을 막 못 살게 굴 때, 대추리 주민들이 서울 용산 미군 기지에 앞에 있는 국방부 앞에 모여서 집회를 한 적이 있다. 평택까지는 자주 못 내려가더라도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에는 참석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나도 그리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하철 역 출구를 나와 보니 꺼먼 옷을 입은 전경들이 방패를 들고 인도 양 옆에 늘어서 있었다. 그 가운데 지휘관처럼 보이는 좀 나이든 경찰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눈으로 한 사람 한 사람 훑고 있었다.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그 앞으로 지나가는 순간, 그 나이든 경찰이 나한테 잠깐 멈추라고 하더니 신분증을 보자는 거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옆에 늘어서 있던 전경 대여섯이 방패를 들고 와 내 앞을 막아섰다. 헉.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불심 검문은 거부할 수 있다고 법에 돼 있다는 걸 어디서 주워들은 덕에 침착하게 불심 검문에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경찰이 또 보여 달라고 그러기에 나도 열이 올라서, 불심 검문 거부할 수 있는 거 모르냐고, 경찰이 법도 모르고 경찰 해 먹느냐고 따졌다.

서로 똑같은 얘기를 몇 번 주고받는 동안 나는 빨리 길이나 열라고, 당신 고발할 테니 관등 성명 대라고 협박(?)도 했다. 지금 같으면 이런 거 저런 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진작 연행해 갔겠지만, 그래도 그때는 고발할 거라고 이름 대라고 하면 경찰들이 좀 쫄기도 하고 그랬다. 한참 그러다 나이든 경찰이 한 발 물러섰다. 신분증은 안 보여 줘도 좋으니 그 깃대는 주고 지나가라고. 아~놔. 깃대 때문이었냐?

집회 때 깃대로 쓰는 낚싯대를 내가 들고 가고 있었는데 결국 그것 때문에 나를 막아섰던 거다. 쇠파이프도 아니고 각목도 아니고 집회 때마다 다들 들고 나오는 플라스틱 낚싯대 때문에. 덩치 큰 놈이 어쩌다 잘못 깔고 앉기만 해도 부러져 버려서 생돈을 들이게 만드는 낚싯대가 '위험한 물건'이라니. 신분증도 못 보여 주겠다는데 깃대(낚싯대)를 주고 지나가라는 말을 들을 턱이 없다. 나는 더 열이 올라서 막 대들었고 그 사이에 몰려든 사람들이 우르르 밀어붙인 덕에 그냥 전경들을 뚫고 지나가 버렸다.

법이 있어도 그쯤은 우습게 여기는 경찰인데, 이제 아예 법을 바꿔서 경찰들이 더 '지맘대로' 할 수 있도록 근거를 장려해 주겠다는 거다. 흉기나 무기뿐만 아니라 '그밖의 위험한 물건 등'까지 다 조사할 수 있도록. 그래서 조사한 위험한 물건이 그때 내가 들고 있던 플라스틱 낚싯대였나? 그럼 허리띠를 하고 있으면 채찍으로 쓸 수 있다고 우길 거고, 넥타이를 하고 있으면 경찰의 목을 조를 거라고 우길 건가? 하긴, 플라스틱 낚싯대를 '컬러 쇠파이프'라고 우겨서 사람을 구속시키기까지 했던 경찰이니 안 그러리라는 법이 없다.

2002년이었다. 집회를 하다가 경찰에 잡혀 버렸다. 그때도 나는 깃대를 들고 있었는데, 연행이 되면서 두드려 맞는 통에 깃대고 안경이고 다 잃어버렸다. 그런데 48시간 조사를 거의 마쳐 갈 때쯤 형사가 내 앞에 사진 한 장을 내밀며 "너 쇠파이프 들고 있는 사진 나왔어. 너는 이제 내가 책임지고 구속시켜 준다" 하고 통쾌하게 웃었다. 뭔 소린가 싶어 들여다보니 쇠파이프는 무슨, 그냥 내가 깃대를 들고 있는 사진이었다.

경찰 시험에는 국영수 말고 '어거지' 과목이 있는 건가 싶어 피식 웃으며 이게 낚싯대지 무슨 쇠파이프냐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기가 막혔다. "낚싯대 같은 소리하네. 이거 컬러 쇠파이프잖아, 새끼야." 사진에는 낚싯대를 만든 브랜드 로고까지 선명하게 보였지만, 형사가 낚시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딴 건 몰랐던 걸까? 그런데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인간 어뢰설'보다 더 말도 안 되는 그 '컬러 쇠파이프설'을 판사가 인정하면서, 나는 덜컥 구속이 되고 말았다.

이러다 낚시꾼들 모두 잠재적 범죄자 될라

불심검문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합원을 연행하려던 경찰과 민노총 조합원이 몸싸움 중이다.
 불심검문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합원을 연행하려던 경찰과 민노총 조합원이 몸싸움 중이다.
ⓒ 김정욱

관련사진보기


경찰이 마음먹으면 낚싯대가 쇠파이프가 되는 세상에, 허리띠가 채찍이 되고 넥타이가 오랏줄이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나. '그밖의 위험한 물건 등'까지 다 조사할 수 있게 해 놓은 이번 개정안대로라면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아서 주머니와 가방을 뒤지고, 아무 물건이나 찾아서 "이거 위험하다" 하고 꼬투리 잡으면 범죄자가 안 될 사람이 없다.

죄를 지은 사람이나 안 지은 사람이나 누구나 죄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일단 전국의 모든 낚시 동호회 회원들은 낚싯대라는 '위험한 물건'을 몇 개씩이나 갖고 있는 잠재적 범죄자로 지명 수배를 당할 것이 뻔하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하더니, 대통령이 되고 나서 시간을 10년이 아니고 30년 전으로 되돌리고 있다. 아니, 대한민국 경찰이 아니라 일제시대 순사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100년을 되돌렸다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역사 교과를 선택 과목으로 만든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청소년들에게 일제시대 역사 체험 교육을 시키려고 내린 '구국의 결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이제 길 가다 경찰을 보면 좀 피해 가고 둘러 가고 그래야겠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기억해야 할 것 하나. 죄 없는 국민들을 경찰 앞에서 죄인처럼 주눅 들게 만드는 이 개정안을 제안한 사람들!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구상찬, 김광림, 박종근, 서병수, 유승민, 이인기, 이한성, 임영호, 정갑윤, 최구식, 현경병 의원 그리고 이를 대안법률로 발의한 행안위원장 조진형 의원, 잊지 않겠다.


태그:#최규화, #불심검문, #조진형, #경직법, #쇠파이프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