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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행동 속에, 궁극적으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메커니즘으로는 우리가 도저히 이길 수 없어요. 아무리 좋은 민주주의 선거제도, 정당제도를 만들어놔도 정당을 운영하는 사람이, 선거제도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못하는 거 아닙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가을,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기자와 나눈 3일간의 심층 대화에서 담담하게 끄집어 낸 화두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온갖 정치적 의사사건이 난무하는 지금 이 순간,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더욱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어느새 1년의 시간이 흘렀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포괄적 뇌물'을 수뢰한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던 노 전 대통령이 고향인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은 지 23일로 만 1년이 됐다. 갑작스런 서거소식을 접하고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던 그날도 오늘처럼 일요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노 전 대통령을 다룬 책들에 하루 종일 시선이 쏠린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정치권력 만능 아니다, 진짜 권력은 따로..."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오연호 지음, 오마이뉴스 펴냄)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오연호 지음, 오마이뉴스 펴냄)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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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오연호 지음, 오마이뉴스 펴냄)는 '바보 노무현에서 사상가 노무현까지'를 한 권에 잘 담았다. 노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정치 역정과 혼이 녹아 있는 책이다. 뭔가 다른 그의 철학과 소신 등 정치적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겨 손을 뗄 수가 없다.  

이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은 "정치권력은 만능이 아니다"고 줄곧 강조한다. 권력에 눈이 어두워 우정과 의리, 심지어 생명과도 같은 신의와 소신을 헌신짝처럼 여기는 권력지향형 인간들에게 던져 주는 메시지가 너무도 강렬하다.

"대통령의 자리는 최고 정점이 아닙니다. 진짜 권력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시민권력입니다. 각성하는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시민권력, 나는 이제부터 그 시민들 속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임기를 마치기 직전 그는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진솔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그의 소박한 꿈은 불과 2년도 채 못돼 산산조각이 나고야 말았다. "각성하는 시민이어야 한다", "시민이 각성해서 시민이 지도자가 될 정도로 돼야 한다"며 늘 시민 편에서, 시민권력을 강조하던 그가 정작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시민 편에서, 시민권력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억울하게, 너무도 억울하게 저세상 길을 재촉했다. 유서내용은 지금도 계속 기억 언저리에 남아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이 책의 저자는 긴 시간 노 전 대통령과 생생한 대화를 나눴음에도 정작 유서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는 어려움이 커보인다. 그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가늠케 한다. 저자는 이렇게 되뇌인다.  

"전직 대통령인 그가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흘러나온 혐의들을 보고 역사가 해줄 평가에서마저 자신을 잃어버렸던 것일까? 아니면 역사로부터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긴 세월이 너무 고통스럽게 느껴졌던 것일까?"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

결국, 저자는 노 전 대통령과의 오랜 인터뷰 과정에서 힌트를 얻은 듯, '정치인'과 '승부사'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심정을 이렇게 읽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검찰과 보수언론에게 온몸으로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이제 그만. 나로 끝내라'"  

과연 끝났을까? 유감스럽게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유서에 담긴 고통의 무게가 지금도 계속해서 우리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그가 남긴 숙제, 즉 민주주의와 진보, 시민의 길을 생각하기 위해 잠시 책을 덮으려니 맨 뒷장에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란 제목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천사가 또 다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당신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민주주의 위기, 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이 3대 위기를 헤쳐 나가는데 힘이 되어주십시오. 당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지켜냅시다."

김 전 대통령은 "저승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어이 만나서 지금까지 하려다 못한 이야기를 나눕시다"며 "그동안 부디 저승에서라도 끝까지 국민을 지켜주십시오.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십시오"라고 추천사를 마무리 지은 뒤 불과 한 해를 다하지 못하고 그의 곁으로 향했다.

1년 전 슬픔과 비통함이 오늘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더욱 복받치는 이유는 뭘까? 그는 시민 출신이었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1998년 7월 8일 첫 대정부 질문에서 했던 발언은 지금도 서민들의 가슴속에 절절하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에 피의사실 흘리며 죄인 취급하던 검찰 수사팀, 지금은?

2006년 5.18 26주년 기념식에 참석 기념사를 하고 있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2006년 5.18 26주년 기념식에 참석 기념사를 하고 있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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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며 자라왔던 고향마을에서 그는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부정한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진행된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집요하게 반복된 검찰의 피의사실 흘리기와 언론의 받아쓰기는 결국 그를 죽음의 나락으로 내 몰았다. 

하지만 당시 수사팀 주역들은 지금도 건재하다. <경향신문>은 22일 '노무현 서거 1주기' 특집기사에서 "당시 검찰 수사팀 중 대부분 대형 로펌의 변호사로 영입되거나 이후 검찰 인사에서 수혜를 받았다"며 '반성 없는 검찰'의 실상을 이렇게 꼬집었다.

"이인규 당시 대검 중앙수사부장은 그해 6월 수사결과 발표가 난 다음 달 사표를 내고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교롭게도 그가 간 로펌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변호를 맡고 있던 '법무법인 바른'이었다. 자신이 수사를 진두지휘하던 사건의 피고인을 변호하는 꼴이 된 것이다. 변호사가 된 이 중수부장은 대형 사건들을 잇달아 수임했다. 대한통운 비자금 사건,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이 연루된 골프장 건설 비자금 사건 등 대부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소속의 사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어 기사는 "검찰에 남아 있는 수사팀원들도 승진 가도를 달리고 있다"며 이렇게 전했다.

"홍만표 전 수사기획관은 지난해 8월 인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수사 당시 그는 수사브리핑 등을 맡아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책임론의 당사자였다. '박연차 게이트'의 주임검사로서 노 전 대통령을 면전에서 직접 신문한 우병우 전 중수1과장도 차장급인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으로 승진했다. 범정기획관은 범죄정보 수집과 분석을 담당해 검찰총장의 오른팔로 불리는 요직이다."

정치권의 하명수사 성격을 띤 수사를 맡은 검사들이 인사에서 혜택을 보는 관행이 되풀이됐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경향>은 기사에서 "결국 노 전 대통령과의 악연이 그들의 성공을 보장해준 셈이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더불어 사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지방선거 화두로 부각된 까닭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공연이 22일 저녁 창원 만남의광장에서, 23일 저녁 부산대 넉넉한터에서 열렸다.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공연이 22일 저녁 창원 만남의광장에서, 23일 저녁 부산대 넉넉한터에서 열렸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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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시시비비가 아직 가려지지도 않은 채 피의사실을 연일 생중계하며 노 전 대통령을 죄인 취급하던 보수신문들도 건재하다. 노 전 대통령 재임시절부터 퇴임이후에도 사사건건 그의 언행을 꼬투리 잡아 문제 삼으며 흠집 내기에 주력했던 보수신문들은 1년이 흐른 지금 사상 최대 규모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북풍'과 '안보타령'을 앞세워 긴장과 대결국면을 조성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천안함 침몰이후 극도로 악화된 남북관계와 한반도 안보위기 상황이 과거 정부 탓이라는 주장도 서슴지 않고 있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책에 다시 시선이 머무는 이유다. 보수언론이 주도해 만들어지는 여론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이런 말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도 가슴에 와 닿는다. 최근 색깔공세에 여념이 없는 보수언론들이 새겨야 할 내용이다.

"민생은 정책에서 나오고  정책은 정치에서 나옵니다. 정치는 여론을 따르고 여론은 언론이 주도합니다. 언론의 수준이 그 사회의 수준을 좌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PD수첩'과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수수 의혹사건' 때도 1년 전과 같은 일이 반복됐다. 확인되지 않은 혐의 사실이 언론에 생중계됐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검찰은 잘못된 관행을 고치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별반 지켜지지 않았다. 표적 수사, 코드 수사, 별건 수사, 피의사실 공표, 사생활 침해 등 검찰의 구태는 여전하다. 누굴 믿고 저러는 것일까?

1년 전 전국에서 500만 명이 넘는 조문객이 줄을 이었고 1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많은 시민들이 그의 영정 앞에서 옷깃을 여미며 다시 노무현을 생각하게 하는 까닭이다. 그가 그토록 강조하던 '더불어 사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이 6․2 지방선거의 화두로 부각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태그:#노무현서거1주기, #마지막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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