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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몇몇 국립대학들이 부쩍 법인화를 서두르고 있다. 법인화가 개별 대학에 불리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육 당국의 법인화 인센티브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반면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를 비롯한 교원단체들은 법인화가 몇몇 대학의 총장들에 의해 졸속으로 무리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학 사회 내에서 점차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과연 법인화가 한국에서 고등교육의 미래를 밝혀줄 대안인가?

법인화는 한국 고등교육의 미래가 될 수 없다. 법인화 찬성론자들은 국립대학의 법인화가 대학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높인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율성과 책무성이 높아지면 대학 경쟁력과 공공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상당한 오류가 있다. 대학의 자율성과 공공성은 본질적으로 충돌하며, 책무성과 경쟁력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없다. 국립대의 목표는 경쟁력을 수반하는 공공성의 확보이다. 따라서 논점은 법인화가 아니라 어떻게 국립대의 원래 목적을 달성하느냐 하는 것이다.

한국의 국립대 수준이 한국의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 지금 한국의 발전전략은 자본과 노동 투입 위주의 양적 성장전략에서 지식과 기술 수준 상승이라는 질적 성장전략으로 옮아가고 있다. 질적 성장 전략의 핵심은 인적 자원 개발이다. 대학은 인적 자원 개발을 주도하는 기관이며 한국의 경우에는 예나 지금이나 국립대학이 이를 선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국립대학들의 수준이 한국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국립대학 법인화,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

한국의 발전모델을 생각해보면 고등교육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도 분명하다. 한국은 '국민주력기업'을 집중 육성하고 이를 통해 국제 경쟁력을 확보했다. 기업의 집중육성전략이 큰 효과를 나타냈다.

고등교육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2005년 현재 OECD 주요 국가들의 1인당 고등교육예산을 보면, 미국이 19,220 달러, 스위스가 17,977 달러, 일본이 10,278 달러이며 OECD 평균이 11,422 달러이다. 한국의 1인당 고등교육예산은 5,356 달러에 불과하다. OECD의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부담 고등교육비의 평균 비중이 1% 정도인데 한국은 0.6%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1인당 고등교육예산을 최소한 OECD 평균 수준으로라도 끌어올리지 않고서 국제경쟁력을 말할 수는 없다. 국민주력기업을 육성하듯이 국립대학에도 과감하고 특성화된 투자가 필요하다.

현재 진행 중인 법인화의 논리는 2000년대 초 시장의 비유가 사회 모든 영역을 휩쓸 때에 하나의 유행으로 나타났었다. 복지국가의 축소,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 해소, 공사의 민영화 등과 함께 체제의 질을 개선하는 방안으로 논의되었다. 이와 함께 대학 진학 인구의 감소 등 한국 사회의 구조변화로 인해 대학의 구조개혁도 불가피했지만 아쉽게도 대학 구성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원활하지 못했다. 질적 개선을 위한 집중육성보다는 효율성을 앞세운 구조조정 논리가 강조됨으로써 국립대 체제를 해체하려 한다는 오해가 구성원의 반발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다.

지금의 국립대학 법인화는 원래의 취지에서 더욱 더 벗어나있다. 이대로라면, 첫째, 대학별 관심 영역의 특성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고등교육체제 내의 분업은 사라지고 모든 대학들이 모든 분야에서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 극히 비효율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둘째, 고등교육의 양극화를 확대한다. 수도권 집중 등 각 대학이 지닌 기존의 지위를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셋째, 진정한 국제경쟁력보다는 평가 제도만 강화될 것이다. 이 체제하에서라면 법인화 이후의 평가가 대학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국립대들은 질적 심화보다는 평가에 도움이 되는 계량적 요소를 확대하는 데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당초에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해도 현재처럼 법인화를 진행하는 것은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이조차 버리는 오류라고 말할 수 있다.

대학의 영역조차 시장중심의 사고가 지배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대학의 진정한 가치는 진리의 보호와 생성에 있는 데 이 가치는 대부분 미래적이어서 현재의 시장가격으로 환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지방대학 교수가 평생을 거쳐 딱 2권의 책만을 썼다고 하자. 법인화로 대변되는 현재의 평가 경향이라면 가까운 미래에 이 교수는 승진은 고사하고 직업을 유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2권의 책 중 하나가 근대 역사를 좌우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래스고우 대학의 아담 스미스가 바로 그 사람이다.

캘리포니아 대학 체제 생각해 볼 때

이제 한국 고등교육의 미래를 위하여 보다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때이다. 한국의 국공립대학 체제 개선을 위하여 미국의 주립대학체제, 특히 1960년대 클라크 커 총장의 지도하에서 형성된 캘리포니아 대학 체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체제가 현존하는 비효율 고비용의 국립대 체제를 개혁하는 데 가장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사례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처럼 당시 캘리포니아에는 약 30여개나 되는 4년제 공립대학들이 난립하고 있었고 이들의 경쟁으로 고등학생의 50~60%가 4년제 대학에 진학하는 매우 비효율적인 구조였다. 커 총장이 이끈 구조개혁의 핵심은 세 층의 특성화된 대학체계(UC, CSU, CCC)를 마련하고 각 시스템은 각자 별도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UC는 연구중심, CSU는 직업교육중심, CCC는 평생교육중심이라 할 수 있다.

박사학위는 UC에서만 수여되며 4년제 대학(UC, CSU)의 입학은 고등학교 졸업자 중 상위 1/3 정도만 가능하도록 조정되었다. 당시에 존재하는 대학이나 교수들은 이 체제 중 어느 것에 참여할 것이냐를 선택할 수 있었다. 현재 교육부가 구조개혁의 한 대안으로 언급하고 있는 연합대학안이 이와 가장 유사하나 특성화라는 관점에서 방향이 다르다.

한국의 경우 한국인의 정서와 미래 구상에 적합한 방안이 가능하다. 일차적으로 지금의 국공립대학들을 3개의 특성화된 그룹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각 그룹은 각각의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캠퍼스별 분산과 집중을 원활하게 한다. 예컨대 연구중심대학 그룹에 있어서 일상적 활동의 책임은 각 캠퍼스별 총장이 책임지지만 전체 시스템의 운영위원장은 대통령이 맡는 게 좋고, 직업교육중심대학 그룹에 있어서는 광역시도지사가, 평생교육중심대학 그룹에 있어서는 시장이 맡는 것이 좋다. 이로써 국가 역량의 낭비를 막고 지역간 균형발전을 가능하게 하며 지역의 긍지와 자부심을 지켜줄 수 있다.

대학의 품격이 국가의 품격을 좌우한다. 대학이야말로 공동체의 정신적 골격을 형성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진리의 탐구와 발견은 공동체 통합과 국제 경쟁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국부의 상당 부분을 대학 육성에 투입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법인화는 이러한 목적을 해칠 가능성이 높은 방안이다. 이제 보다 새롭고 진취적인 해결책을 실천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 백종국 기자는 경상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이며, 전 전국국공립기획처장협의회 회장을 지냈습니다.



태그:#국립대 법인화, #신자유주의, #캘리포니아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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