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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교육학자 라이머(Everett Reimer)는 1971년에 쓴 그의 책 <학교는 죽었다>에서 "학교는 이렇게 빤히 내다보이는 결과를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흐려놓을 뿐 아니라 이러한 전망과 모순되는 온갖 환상을 열심히 만들어내고 있다. 학교는 학생들을 개인간, 계급간 그리고 국가간의 경쟁에 아주 적합하도록 키워가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그리고 <탈학교사회>를 쓴 일리히(Ivan Illich)와 더불어 제도교육의 문제를 지적하며 대안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1981년에 <학교는 죽었다>를 번역한 김석원은 당시 한국사회의 교육풍토에 대해 "입시지옥이니 과외열풍, 치마바람, 가짜 교사자격증 파동, 가짜 박사학위 소동, 그리고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문교정책 등등, 모든 것들이 독버섯처럼 곳곳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이제는 천하의 명의일지라도 치료는커녕 처방조차 내리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고 묘사했다.

지금은 어떤가? 죽은 학교가 소생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으며, 독버섯은 더욱 광범위하게 번져나갔다. 신자유주의 교육의 신종 독버섯까지 등장했다. 그 결과, 고려대를 자퇴한 김예슬 학생이 표현한 대로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배움터에서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되었다. 대학은 죽었다. '탈대학사회'를 위한 대안은 없을까?

나는 2년여 전 대학을 그만두었다. 대학인지 교회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학문적 능력과 소양 대신에 신앙생활을 강요하는 지방의 작은 대학에서 속내를 감추며 버티기 싫었다. 그래서 진보 성향의 총장이 있을 때 임용되었던 교수들 중 신앙생활에 충실한 교수들 외에 모두 그만두게 되었다.

그 대학에는 만학도들이 많았다. 이런저런 사정에 의해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직장인, 사업가, 주부들이 뒤늦게 공부를 하겠다고 온 것이다. 이 사람들은 취업이 목적이 아니었다. 배우겠다는 열정으로 온 것이었다. 따라서 배움에 임하는 자세가 어린 학생들보다 훨씬 더 진지했다. 단순히 졸업장이 필요해서 온 이들도 있었지만, 이들도 강의를 들으면서 변해갔다.

특히 지금은 그만 둔 진보 성향의 교수들로부터 새로운 진실을 배우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진보교수들의 전공은 역사학, 철학, 종교학, 경제학, 언론학 등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였다. 대개 취업과는 거리가 먼 인문학 분야거나 경제학이나 언론학 분야도 취업과는 거리가 먼 원론 위주의 강의였다. 그래서 사회인들이 부담 없이 만학의 불꽃을 태우려 했던 것 같다.

이 경험에서 학교를 그만두며 착안한 것이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공부하는 대안대학의 설립이었다. 당연한 듯 대학에 진학해서 사회가 요구하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박제화된 교육을 받지만,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의 연륜이 쌓이면서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지적 갈증이 생길 것으로 보았다. 

제도교육 차원의 대학은 포기하더라도 알찬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 직장인이나 전업주부가 부담 없이 공부를 할 수 있는 곳, 대학을 졸업했지만 배우지 못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원리를 깨우칠 수 있는 곳, 그런 대안대학이 필요하고 수요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평생교육법을 뒤졌고, 기획안을 만들어 사람들을 만났고, 공간도 어느 정도 확보하였다. 그러나 다른 일도 생기고 돈도 없어 일단 접었다.

평생교육법에 열거된 교육기관은 많다. 거의 모든 대학들이 운영하고 있는 사회교육원이나 사설 기관, 그리고 백화점에서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 등이 해당한다. 그러나 평생교육이나 교양교육을 표방하는 이 강의들은 모두 다 실용적인 분야에 국한돼 있다. 외국어, 컴퓨터, 요가, 꽃꽂이 등을 상품으로 하는 영리적 목적이다.

초·중·고등학교 과정의 대안학교는 많고 다양하다. 대안교육 차원에서 설립된 대안고등학교가 대학입시에서 월등한 성적을 내면서 변질된 경우도 있다. 대안대학으로는 함양의 녹색대학이 있는데, 너무 전문적인 분야(환경과 건축)라서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 수요와는 거리가 멀다.

김예슬 학생의 선언에 즈음하여 어른들이 대학교육의 바른 방향을 찾고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빤히 내다보이는 결과를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흐려놓을 뿐 아니라 이러한 전망과 모순되는 온갖 환상을 열심히 만들어내고" 있는 죽은 대학을 극복할 수 있는 창조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라이머와 일리히가 제안한 대안교육, 다양한 대안학교가 있는 우리 경험에서 대안대학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태그:#김예슬, #대학, #대안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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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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