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 5․18과 기억

 

현재는 과거로 이루어진 원뿔의 정점과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와 현재는 이어지는 두 계기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두 요소를 지칭한다. 그 하나는 현재인데 그것은 끊임없이 지나가고, 다른 하나는 과거인데 그것은 끊임없이 존재하며 그것을 통해 모든 현재가 지나간다.


현재와 과거의 매개항에 기억이 놓인다. 기억은 과거를 표상하는 한 양식이며, 과거의 일을 재현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기억과 망각은 항상 함께 작동한다. 기억은 순수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망각을 동반한 심리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기억은 일차적으로 기억되는 순간의 우연성을 통과하면서 최초로 굴절되며, 나아가 현재와 과거라는 물리적인 간격을 통과하면서 다시 한 번 왜곡된다. 그러므로 기억은 결코 과거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역사 새로 쓰기나 역사의 새로운 규정 등은 망각하고자 하는 열정에 의해 촉발된, 과거의 기억에 대한 적대적인 구성물이 된다. 그 결과 역사/이야기, 기억은 처음에 지녔던 연속성과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현재의 관심과 이해에 무게의 중심을 둔 당사자가 시도하는 과거의 추방이다. '광주'의 '오늘'도 역시 그러한가? 그러하다.
 

5․18 민중항쟁 30주년이 다가온다. 20대 초반에 역사적 사건의 격랑에 몸을 담았던 필자도 벌써 오십을 훌쩍 넘긴 초로의 늙은이가 되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그때의 사건은 어쨌든 마무리되었지만, (아, 그러고 보니 어쨌든 용산참사도 마무리는 되었다.)그 시간의 경과에 함께 우리의 기억과 상흔이 다 지워진 게 아니라는 것 또한 분명하다. 다만 대중들은 해마다의 기념주간 행사를 통해서 혹은 간헐적이나마 5․18관련 보도를 통해 오래 전 광주에서 무시무시한 사건이 발생했었다는 사실을 주기적으로 알게 되지만, 그 앎이 오래가는 일은 드물다. 사건의 한쪽에서는 잊고자 소망하지만 결코 잊지 못하는 피해자가 있고, 다른 편에는 잊기를 원하고 또한 그러는데 성공하는 강하고 종종 무의식적인 동기를 지닌 다른 모두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묻는다. 오늘 우리에게 광주는 무엇인가? 더 나아가, 그때 그들은 왜 총을 들었을까? 오월 문학을 연구하는 필자의 주된 관심이 머무는 자리이다.

 

2. 문학과 사회 

 

5․18과 관련한 우리의 기억에서 가해자는 두 말할 필요 없이 진압군이었다. 항쟁 이후의 대부분의 소설에서 광주는 살육과 공포의 비극적 공간으로 기억-재현되고 있다. 국가 폭력의 하수인으로 시민들을 향해 온갖 만행을 저지른 공수부대원을 비롯한 진압군들은 야만적인 집단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들은 '비적 떼'로 묘사되거나, '사람도 아니'며 차라리 '야만이자 악마'인 까닭에 그들의 만행을 목도한 시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죽일 놈들'이라는 신음을 토한다. 그들의 극도의 잔혹성과 무차별성은 이방의 점령군보다 더한 '광기'를 드러낸다. 시민들은 '폭력의 표적'일 뿐이어서 금남로 일대는 '완연한 사냥터'가 되고, 주변사람들의 이유 없는 죽음에 분개한 무장시민군들은 '싸우다 죽는'다. 광주는 곧 사지(死地)로 기억된다. 그런데 5․18 민중항쟁 30주년이 다가오는 이 때, 현실의 법정에서는 그날의 가해자를 피해자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다.


이 기억된 과거에 대한 상반된 해석은 일종의 정체성 문제를 제기한다. 1980년 광주와 관련된 '나'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가의 질문을 새롭게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는 중대한 하나의 '사건'인 것이다.


물론 5․18소설들에서는 일찍이 광주진압작전에 투입된 군인들 역시 피해자일 수 있다는 측면에 시선을 둔 작품들이 더러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더럽게 운이 없어' 광주로 차출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까닭에 그때는 누구라도 그런 짐승 같은 짓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그의 잘못이란 '쏘라는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이 광주에서 짐승 같은 짓을 했다는 사실은 기억-트라우마(trauma)로 남아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유폐하게 만든다. 진압군으로 광주에 투입된 그들 역시 피해자의 위치에 있다는 이 역설이 광주라는 역사적 공간의 비극성을 선명히 드러낸다. 그런데 가해자 역시 희생자라는 인식의 근거는 무엇일까? 권력에 눈 먼 이들에 이용당한 하수인일 뿐이라는 것, 팔십만의 시민과 이만의 병사들은 결코 적이 아니라 결국 같은 그물 속에 갇힌 포획당한 물고기라는 인식에 바탕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문학/문화는 모두 기억에서 출발한다. 기억은 문화의 근원이자 바탕이다. 문화는 변화무쌍한 일상 저편에서 중요한 것은 기억해내고, 안정적이지 못하고 우연적인 것은 망각함으로써 개인과 공동체가 이용할 수 있는 하나의 의미체계를 세우는 기억의 능력을 통해 존재의 바탕을 얻는다. 그런데 기억된 역사적 사건은 기억 그 자체로서보다 객관적인 문화적 형상물로 재현된다. 이렇게 재현은 단순한 기억의 재생이나 모방이 아니라 또 다른 하나의 실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기억과 문학적 상상력이 서로 교차하는 문학 텍스트는 스스로 하나의 '기억 공간'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문학의 영역에서는 오월의 기억을 역사적 유물 혹은 망각의 무덤으로 치부하고 있는 듯싶다. 왜냐하면 1990년대 이후의 문학은 역사보다 일상을, 공동체보다 개인을, 전체보다 부분을 더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역사를 지워버리는 것이 곧 1990년대 이후의 문학의 새로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 새로운 문학-새로운 문학인 것처럼 여겨지는 문학-에는 더 이상 오월 광주에 대한 언급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1980년대 초반엔 정치적 금기였던 오월 광주가 1990년대 이후에는 문화적 금기가 되었다는 지적은 매우 시사적이다. 경쟁에서 이기려는 열망에만 들떠있는 사회에서 대부분의 행위자들은 역사나 공동체 혹은 타인의 상처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치 자동인형처럼 앞으로만 돌진한다. 그들은 아주 단순한 어떤 힘들에 의해 이끌리며, 그들 중 누구도 자기의 존재여건에서 빠져나오려 하지 않는 듯하다.


문학은 온갖 형태의 비인간적 억압과 지배, 그리고 학대에 가장 본질적으로 대항하며 인간의 소망하는 삶을 고양시키는 한편 그 목표를 인간의 해방 또는 자유의 확대에 두는 상상적 재현이다. 우리가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국가 폭력의 기억을 망각의 창고에 가두지 않고 꾸준한 소설적 탐구를 거듭하는 까닭은, 그것이 거대한 폭력에 대항해서 끝내 지켜 내야 할 인간성의 옹호라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여전히 유효한 성찰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가 단순한 역사적 기록으로만 남아 있지 않고 우리와 함께 숨 쉬며 정서적 교감까지 가능하게 하는 것은 소설을 포함한 문학/문화의 기능이고 힘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진술에는 문학을 사회 ․ 역사적 현상의 반영물로 생각하는 문학사회학의 관점에 서 있음을 드러낸다. 기본적으로 문학사회학에서는 텍스트(text)속에 감추어진 개인적 삶의 구조, 집단의식, 세계관의 구조 같은 것을 도출하려 한다. 우선 문학 행위가 인간의 의미 있는 행위인 것이 분명한 이상 그리고 그 의미가 사회적으로 형성 ․ 유포 ․ 발전 ․ 전승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문학을 사회학적으로, 곧 문학사회학적으로 고찰할 근거가 마련된다. 문학 행위란 의미를 만들어 내는 행위이고, 의미란 사회적 지평 속에서 형성되는 것인 만큼, 특히 이데올로기적 지평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 분명한 만큼 5 ․ 18소설들의 문학사회학적 탐구는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오월 소설들 뿐 아니라, 정치 행위가 언제나 하나의 체제를 유지, 혹은 정립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라면 문학은 바로 그러한 체제가 가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불편함, 혹은 구속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다.


1990년대 이후의 문학에서 더 이상 오월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지만, 5․18민중항쟁의 진실을 여러 층위에서 살피고 있는 소설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5・18소설들은 거대한 국가 폭력에 맞서 작가 개인들이 벌인, 불가해한 운명에 맞선 글쓰기의 대상이다. 관련 연구에서 김명인은 한국문학사에서 5월 문학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살피고 있다. 그는 1990년대 이래 혁명적 지향을 갖는 민족민주운동은 이론적 실천적으로 상상 이하의 취약성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대중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섹트화, 관념화해 온 운동의 거품이 제거되는 현상으로 본다. 그런 버블현상의 근저에 5월 광주가 놓여 있다는 것, 곧 5월 광주가 과대 포장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엄밀히 말해 5월 광주는 말 그대로 항쟁이지 혁명은 아니라는 것, 희생이지 운동은 아니라는 것, 광주는 1980년대 들어 지배 블록의 재편과정에서 선택된 희생양이지 변혁 운동의 성지는 아니었던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구모룡은 오월문학은 오월에 대한 역사적 연구 성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특수성을 지니지만 간단없는 기억 작용과 상상력에 의한 의미의 증식을 통해 문학으로서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진단한다. 뿐만 아니라 오월은 중심 권력의 폭압에 저항한 주변의 생동하는 힘을 상징한다는 의미 규정과 함께, 중심주의를 극복하는 저항적 지역주의를 비판적 지역주의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방향 제시를 하고 있다. 또한 오월의 경험이 제주나 부마의 경험과 연결되고 차이 나는 부분들을 함께 다루는 장을 만들어 가야 한다거나 그러한 지역문학의 상호교섭이 지역의 역사를 상호텍스트로 하는 데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계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섞임 현상을 정서, 일상, 생활, 이론 등 다른 지역인 간의 갈등을 그 역사성까지 거슬러 풀어내는 창작 방안의 검토가 필요하다는 제언 등 매우 구체적인 오월문학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매우 중요한 주문을 한다. '우리의 오월에 너희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다그침은 또 다른 분리주의 전략에 통합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 따라서 경험의 확대를 통하여 안팎의 경계를 해체하고 이를 가능성의 공간으로 확산시켜 나갈 것이 필요하다는 주문으로 이해된다. 오늘 광주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묻는 소설 몇 편을 아래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3. 임철우의 「관광객들」의 경우

 

임철우의 「관광객들」(『일어서는 땅』, 1987)은 5․18이 7년 쯤 지난 후의 풍경을 '광주 밖'의 시선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김유택의「목부 이야기」(『일어서는 땅』, 1987)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무심한 소녀의 눈빛을 통해 오래 전 잊혀진 광주의 기억을, 그 죄의식을 망각에서 복원해 내고 있다면, 「관광객들」은 제목에서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 광주 밖의 사람들이 광주의 비극을 어떻게 무심히 지나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칠년 전, 그해 오월 불란서에서 오년간의 유학시절을 마무리하는 논문을 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고 힘겨웠던 이은애는 지금 교수가 되어서 광주를 스쳐 지나가는 중이다. 그녀의 옆자리에는 도쿄의 한 대학에서 문화사를 전공하고 있는 다케다라는 일본인이 앉아 있다. 어떤 문예잡지의 청탁으로 한국의 오월사건에 관한 기사를 쓰기 위해 광주에 내려가는 중이다. 운전을 하고 있는 양대범은 자신이 경영하는 무역회사의 업무조차 며칠 미뤄놓은 채 이들과 함께 경주나 해운대를 거쳐 제주도로 날아가서 바다낚시며 골츠를 즐길 계획을 갖고 있다. 양대범과  이은애는 대학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는 선후배 사이다. 양대범과 다케다는 양대범이 일본에 사업상 용무로 가게 된 기회에 알게 된 처지다.

 

자동차가 시내로 접어들자 다케다는 거리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찰칵, 여기서 그랬단 말이지? 찰칵, 찰칵, 정말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야?"(280쪽) 그러나 그들은 잘 믿기지 않는다. 잘 닦여진 차도엔 육중한 장갑차 대신에 무수한 차량들만 무심히 오가고 있고, 검은 아스팔트 바닥위로는 흥건한 핏물 대신에 보기에도 산뜻한 흰색과 황색의 차선이 정연하게 그어져 있을 뿐이었으므로 그들의 호기심은 이내 심드렁해진다. 그것의 절정은 그들이 망월묘역과 금남로의 오월사진전시장을 둘러보며 다음과 같이 말하는데서 잘 요약된다.
 
  자, 우리 함께 기념촬영을 하지요. 여기에 왔다는 흔적은 뭔가 남겨야하지 않겠습니까,
  양 사장. 허헛.(287쪽)
  쯧, 기대했던 것보다는 별 것도 아닌 걸.
  난 괜히 구경 왔나 봐요.(289쪽)

 

그들이 남기고자 하는 흔적은 과연 무엇일까? 나도 광주에 가 보았다는, 그래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 느껴보았다는 자기 위안 혹은 알리바이(alibi)일까. 결국 광주 밖의 사람들은 "광주를 알기는 하지만 광주의 비극을 알지는 못하고, 비극을 알기는 하지만 비극의 깊이는 알지 못하기에" 결국 이렇게 말하는 것이리라. 이처럼 망월동 묘역에 처음 가 본 사람들, 아니라도 우리 모두를 은유하는 것이 분명한 이 관광객들의 말은 그들이 광주항쟁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들의 카메라엔 "억압되고 묻혀진 진실"이 인화(印畵)될 리 없다.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본 관객들의 경우는 어떠할지 궁금한 일이다.

 

4. 주인석의 「광주로 가는 길」의 경우

 

주인석의 「광주로 가는 길」(『문학정신』,1995,12월호)은 거듭하여 '광주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묻는데(19쪽, 21쪽, 24쪽, 37쪽), '광주'와 관련하여 말(언어)이란 대체 무엇인가를 끈기 있게 탐구하고 있기도 하다. "(어떤)말을 사용하는 사람과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여러 가지 입장 그리고 그 말 자체의 관계에 대한 인식"(13쪽)은 꽤 쓸모 있거나 필연적일 것이라고 서술자는 너스레를 떤다. 그런데 그것이 꼭 너스레만이 아닌 것이, 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났던 어떤 끔찍한 사건이 열흘 동안 지속되었다는 것과 그 사건이 가히 비극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그러나 이 대목만 넘어서고 나면 누구라도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이란 아무것도 없다."(11쪽)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10년 전 광주에서의 비극을 모두 비극이라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서도, 그 비극의 제목을 각기 다르게 부르고 있기 때문인데, 어떤 사람은 그 비극을 광주사태라 부르는데 그렇다면 그 비극은 광주에서 폭도 수십 명이 사살된 사건이고, 또 어떤 사람은 그 비극을 광주민주항쟁이라고 부르는데 그렇다면 그 비극은 광주의 민주시민 수백 명이 무고하게 죽어간 사건이고, 또 어떤 사람은 그 비극을 광주민중봉기 혹은 광주무장봉기라고까지 부르는데 그렇다면 그 비극은 광주에서 봉기한 수천 명, 적어도 천 명이상의 혁명적 민중 혹은 노동자계급이 장렬하게 싸우다 전사한 사건이 아니냐는 것이다.(12쪽)


앞으로의 과제와 관련해서도 하나는 5월 투쟁을 통일투쟁으로 몰아 나가자 하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아니라 계급의 해방투쟁이어야 한다는 것(18쪽)이어서 도대체 무엇이 옳은지 사람들의 그 '말'을 알 수도 믿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소설은 기존의 자동화되고 관습화된 '광주' 해석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객관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리 말하자면, 사실은 객관적이라기보다 이중적이며(불신-30쪽), 기존의 확고부동한 해석에 환멸(장식적-38쪽)을 느끼며, 따라서 "멀찌감치서 지켜보기만 하는"(29쪽) 이의 시선으로서 아주 당연하게도 역사적 허무주의(53쪽)로 빠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이 소설의 귀결(한계)이다. 


이 소설에서 김민수가(결국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다음과 같다.

 

"객관적인 사실이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누구에겐가 해석된 사실이 있을 뿐이지.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네. 그들이 그걸 의도했건 않았건 말일세."(53쪽)

 

  따라서 결론은 다음과 같이 뻔하다. 아니 불온하다.

 

"광주도 마치 그 영화(구로자와 감독의 '나생문') 속에서 벌어진 사건과 같지 않을까. 진상은 밝혀질 수 없고, 사람들은 각기 나름의 해석된 광주를 갖고 있을 뿐이지. 그 해석된 광주란 바로 자기들의 이해와 의도에 따라 해석된 광주일 테고 말이야."(53쪽)

 

역사란 "실재에 대한 지적 태도의 선택적 체계", 곧 해석이고 선택의 문제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 말이 어떠한 객관적인 역사도 배제된다는 뜻으로 읽혀서는 곤란하다. 보는 각도가 다르면 산의 모습도 다르게 보이기는 하지만(그 말 자체만큼은 백번 옳지만), "산은 원래가 객관적인 모습을 갖지 않고 있다거나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 말처럼 성립되지 않는 말"인 까닭이다. 말(언어)의 문제에 있어서도 다를 게 없는데, 어떤 계층의 인간도 하나의 사회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 분명한 이상, 그가 사용하는 언어도 "개인적으로 상속된 것이 아니라 그가 자라나는 집단으로부터 받은 사회적 획득물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광주에 관한 기존의 해석이란 자동화되고 관습화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요구요, 현재의 산물인 것이다.
 

5. 정찬의 『광야』의 경우

 

정찬의 『광야』(2002)는 광주공동체의 실체와 그것의 의미를 형이상학적으로 구명(究明)하고 있는 소설이다. 작가는 이미「완전한 영혼」(1992)에서 '장인하' 라는 '완벽한 무사상적 인간'을 통해 사상가가 무사상가를 우러는다는 것, 세계의 악에 대한 증오로 무장된 실천가의 열정이 증오가 없는 단순한 정신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런 그가『광야』를 통해 말하려고 하는 핵심은, 결국 "절대는 일상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는 것, 꿈이 삶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159쪽)으로 요약된다. 그러니까 작가는 "오월의 역사적 위상을 진보사관에 입각하여 맥락화하는 대신에 죽음과 삶이라는 형이상학적 문제를 오월에 끌어들여 그것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무엇보다 오월에 대한 거리두기와 그럼으로써 오월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으로 (임철우와 문순태와는 다른 차원에서)그것의 전모를 꿰뚫어 볼 수 있었던 데에 기인한다.


오월에 대한 거리두기를 위해 이 소설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1989년 11월 9일 밤과 10일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역사적 장면을 지켜보는 『볼티보어 선』 베를린 특파원 '테리 머턴'이라는 기자를 내세운다. '테리 머턴'은 그해 오월에 전남도청이 내려다보이는 여관의 2층 창가에 있었다. 이 '테리 머턴'의 시선을 통해 작가는 그해 오월 광주를 바라보는 것이다. 작가가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소설을 시작하고 끝맺는 의도는 분명하다. 그해 오월의 비극을 분단 이데올로기에서 찾는 것이다. 그런데 결코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는다. 그저 비극이라는 것, "인간이 만든 두 개의 이데올로기가 상대의 생명은 물론이고 자신의 생명까지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이 비극"(12쪽)이라는 것이다. 테리 머턴은 그해 오월의 광주와, 광주에서 죽었던 이들을 생각한다.


『광야』는 광주에서의 열흘을 선조적으로 서술하면서 주요 등장인물의 내면을 읽는다. 사료적 자료는 충실히, 그러나 엄정한 실증주의적 태도로 활용한다. 그는 우선 누가, 어떤 계기로 항쟁에 참여했는가를 바라본다. 80년 5월 18일 오후4시, 이미 금남로에서는 공수 대원의 진압봉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시민들은 길 군데군데 흥건히 고인 핏물을 보며 치를 떤다."(19쪽) 그들의 구성은, 학생들은 소수였고 자유업을 하거나 직업을 가진 청년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젊은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낙네들은 물론이고 중년층과 노년층들도 꽤 눈에 띄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 대부분은 전두환이 누구인지조차 몰랐고,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던 이들"(28쪽)이었다는 점이다.


이 단순성과 무명성은 기실 시민들의 자발적 단결과 투쟁의 중추적 내포일 것인데, 이를 『광야』에서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무장을 하고 계엄군들에게서 도청을 접수했으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권력의 주체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94쪽)한 것으로 해석한다. 봉기가 확산될수록 학생들은 그 수가 줄어들면서 시위대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었다. 그것을 작가는, "신념과 열정이 봉기의 발화점은 되었을지언정 봉기 확산의 원동력은 아니었"(49쪽)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시각은 자연스레 왜 학생들을 비롯한 지식인 계급이 결정적인 순간에 광주에 없었는지를 해명한다. "경악과 분노 속에서 대책을 논의한 그들은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것에 의견을 같이했다. (중략) (결국)그들이 선택한 것은 피신이었다. 사태가 발생하면 현장에서 빨리 피해야 한다는 의식이 그들의 몸에 배어 있었기"(96-97쪽) 때문인 것이다.   

 

그는 또,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차량 시위대의 운전자들로 하여금 죽음을 무릅쓰게 한 것이 '분노'였음을 확인한다. 그러한 윤리적 분노의 수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 (광주의)공동체의식이라는 것을 등장인물, 박태민(대학생-노동운동가)을 통해 깨닫는다. 하지만 한편, 트럭을 몰고 계엄군들에게 질주하는 김선욱(공장 노동자)은 휘발유 드럼통에서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공장에서 일하다 몸이 망가져 투병하다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작 열여섯 밖에 안 되는 어린 여동생을 기억한다. 그래서 저들이 학살의 대상으로 광주를 택한 것에 대해 차라리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공장주가 작업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프레스의 안전장치를 뜯어 버릴 수 있는 것은 노동자를 자신들과 다른 인간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고, 마찬가지 이유로 광주를 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광주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신군부의 권력 장악 프로그램에 의해 '선택'된 것이라는 관점을 보이는데, 공장 노동자인 김선우의 시각을 빈 것은 그 둘의 본질적인 연관 관계에서는 적절한 선택(해석)으로 생각되지만, 채 각성에 이르지 못한 노동자의 눈으로는 또한 너무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이 소설에서 작가의 통찰은 여러 군데서 빛나고 있는데, 신군부의 발포 목적에 대한 사유(해석)가 특히 그러하다.

 

"그것은 시위대를 총기로 무장시키기 위해서였다."(78쪽) 거나, 이후 무장해제(무기회수)와 관련한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 국면과 관련하여(이는 또한 80년 5월이 끝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노정된 문제이기도 한데),적이 눈앞에 있으면 광주공동체는 붕괴되지 않는다. 붕괴는 분열을 전제로 한다. 광주공동체를 분열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주어야 한다. 축제의 시간이 지나가면 정말로 무서운 시간이 온다. 참여자와 비참여자, 강경파와 온건파, 학생과 비학생,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 분열의 조건은 얼마든지 있다. 인간이란 존재는 분열의 능력에는 천부적이다. 혁명군은 혁명이 이루어지는 순간 분열된다. 인류사에서 이것을 극복한 집단은 어디에도 없다. 인간은 수순한 시간, 꿈의 시간을 감당하지 못한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짊어지고 있는 존재의 조건이자 운명이다.(79쪽)

 

라고 말하고 있거니와, 그래서 결국 아무도 '너는 누구인가?'를 묻지 않았던 광주공동체가 곧 '우리의 시간'이었다면 해방광주는 '나의 시간'이 되어서 그리하여 모두가 우리였고 전사였던 광주공동체에서 시민군이라는 새로운 집단이 탄생함으로써 비무장 시민들은 전사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전락했다(104쪽)는 분석을 내놓는다. 또한 계엄군이 도청에서 퇴각한 것에 대해 시민들이 서로를 껴안으며 (승리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에 대한 다음의 지적들이 그러하다.

 

그것은 혁명가가 존재하지 않은 혁명이었으며, 죽음을 넘어선 이들만이 맛볼 수 있는 승리의 열매였다. 그 해방의 땅이 2만여 명의 병력에 둘러싸인 절해고도의 도시임을 아는 이는 (그러나)아무도 없었다.(89쪽)

 

그들은 알고 있었다. 시민군이 혁명과 반란의 도시를 지킬 수 없음을. 그들의 두려움은 여기에 있었다.(91쪽)

 

그래서 왜 그들이 총을 들었는가와 관련하여, 처음에는 '윤리적 분노'였던 것에서 나아가, 이제 왜 그들이 무장저항을 주장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이른다. 답은 자명하다. 곧, 무장해제와 관련한 갈등에서, 일상생활에서 계급적 차별과  편견에 시달렸던 무장시민군들이 추구하는 것은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꿈의 세계요, 수습위원회가 추구하는 것은 현실 세계로의 회귀라는 것,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절대는 일상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는 것, 꿈이 삶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영민한 통찰 뒤의 어딘가에 역사적 허무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혐의로부터 그가 자유롭기는 어려울 듯하다. 사실 우리의 근현대사는 역사적 허무주의를 부추기기에 알맞을 만큼 거의 모든 인간적 선의와 혁명적 기획들이 왜곡되거나 압살당한 결과들로 점철되어 왔다. 그러한 역사적 투쟁과 그 좌절에서 초래된 역사적 사실 사이의 불일치와 괴리는 체계적이고 단선적인 역사이해에 대한 심각한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그렇다하여 곧잘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선택하는 신화적 공간이나 존재의 탐구라는 형식으로는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어디까지나 주체로 기능했던 이들의 진실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규정하기는 버거운 일이다. 아니 작가는 처음부터 절대적 신념(이데올로기)에 대한 회의로부터 출발하고 있으니, 문제는 그렇다면 그때 총을 들었던, 그리고 끝까지 도청을 지키다 죽었던 사람들은, 곧 '악'에 대한 절대적 확신(증오)을 가졌던 사람들은, 고귀하되 위험하고 허약한, 따라서 '불완전한' 사람들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광야』는 「완전한 영혼」에서 사실 한발작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아니 반복일 뿐이다. 그래서 임철우의『봄날』과 문순태의『그들의 새벽』에서 비판적으로 그려지는 학생수습위원회위원장 김창길이 『광야』에서는 "진지하고 성실했다"(125쪽)고 평가 받는다. 문학담론에서 작가마다 나름대로의 생산규칙이 있음을 인정해야 마땅할 것이기에 더 시비 걸 생각은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작가가 사회의 언어체계를 초과하거나 사회의 가치체계와 무관한 상태에서 작품을 생산해도 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썼든지 간에 작품은 시대적 산물"인 것이다. 그럼에도『광야』의 작가가 매우 진지하고 성실했다는 점은 덧붙여야겠다. 왜냐하면 그는 총을 들고 맞섰던 오월의 광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기억과의 투쟁이다. 해방 광주가 분열에 시달렸지만 승리의 기억은 잊지 않았다.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세력에 맞서 죽음으로 쟁취한 승리의 기억을 시민들은 소중히 품고 있었다.(174쪽)

 

그러면서 그는, 그 승리의 기억(광주라는 환경)에 환상을 심어놓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이념의 허구성을 논하는 이 작가 나름의 성실성이라고 믿는다. 인간(민중)에 대한 근원적 신뢰는 아름답고 감동적이지만 그것이 근거 없는 신뢰일 때 냉혹한 현실을 올바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불문가지이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국민들이 광주가 조속히 진압된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236쪽)


6. 김신운의 『청동조서』의 경우

 

김신운의 『청동조서』(2001)에서 광주라는 공간은 초현실적․초역사적 공간으로 설정되고 해석된다. 이 소설에서의 무대는 더 이상 1980년 광주라고 하는 역사특수적인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할 정도로 추상화되고 있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이 도시에서는 여러 시간대가 고도로 중첩되고 병치되어 있어서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시간감각이 통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바다에 갇힌 주민들은, 밤에는 유격대에게 당하고 낮에는 토벌대에게 시달"(4․3사건-62쪽)리며, "연대는 남해안의 한 섬에서 발생한 폭동 진압 임무를 띠고 출동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중"(여순사건-54쪽)의 중첩, 병치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소설에는 여순사건 이후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모든 역사적 폭력의 시간대들이 한꺼번에 응축되어 있다. 서사의 시간 역시 청동기 시대의 무자비한 폭력성이 한반도 남쪽 어느 도시에서 다시 한 번 악의에 찬 모습을 드러낸 사건으로 드러날 뿐인데, 그렇다면 굳이 광주의 오월이 아니라도 이 소설에서 이야기되는 청동시대는 폭력이 일상화된 초역사적 초현실적 공간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소설에서 광주는 단지 삽화적 차원에서만 수용되고 있다. 그래서 "작가 김신운에게 오월은 '트로이전쟁'이기도 했고 '4․3'이기도 했고 아프칸에 쏟아진 수많은 폭탄들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80년 5월의 광주는 이 소설에서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그 자체(An-ch)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광주라는 공간이 단지 소재주의적적 측면에서만 기능하고 있는(작가의 과도한 이념으로 채색된 5․18소설들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청동조서』는 항쟁의 의의와 역사적 진실의 실종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작가 스스로 고백하고 있거니와, "그는 이 혁명의 배후에 숨은 진실을 파헤치려는 의도였으나"(62쪽), 의도를 벗어나("무엇인가를 상상하기 시작하면 진실을 왜곡되는 법이어서"-137쪽) 다른 측면에서 광주의 희생의 의미를 폄하하는 것("군중이란 계집년과 같은 것"-95쪽)으로 나타난다. 혹은 사실의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다음의 ①은 폄하요, ②는 명백한 왜곡이다.

 

① 누구나 죽음은 하나일 따름이오. 물에 빠져 죽거나 총에 맞아 죽거나 죽음은 매한가지요. 그런데 얼간이들은 그것에 부질없는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오. 이것이야말로 내가 혐오하는 감상주의자들의 버릇이오.(188쪽)

 

② 반란의 기간에 공공연하게 약탈이 자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었다.(252쪽)
 
그러니 『청동조서』의 작가는 『광야』에서 볼 수 있는 성실함 대신,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작가 스스로 소설 내의 인물 명준(시인)을 내세워 "자기가 공정한 눈으로 이 사태를 바라보고 있는가 자문해"(62쪽) 보는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집단 최면에 걸려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다만 환상에 들떠 있었던 것일까"(234쪽) 하고 짐짓 진지한 척하기도 한다.) 신화적 상상력(환상-fancy)이라는 기교만으로 광주를 재단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문학적 상상력이란 이와 같은 시각적 형상화(이미지-fancy)와는 거리가 멀다. 환상이란 시간과 공간의 질서에서 빠져나온 기억의 한 양상일 뿐인 것이다. "외양, 눈속임, 환상으로서의 이미지는 또한 거울에 비친 상(reflet)처럼 실체가 아니므로 현실성의 부재, 나아가 무(neant)"라고 할 수 있다. 신화는 신화가 이야기하는 대상에서 역사를 빼앗는다. 대상 속에서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그러므로 필연이다.


『광야』에서 볼 수 있는 이념 자체에 대한 얼마간의 회의(차라리 희화화)와 혁명이 끝난 후의 분열에 대한 염증을 『청동조서』의 작가도 지니고 있는 데, ①과 ②, ③ 그리고 ④의 인용이 각각 그것을 반증하고 있다.
  
  ① 우리가 세우려는 이념의 탑이 바로 이것이오. 우리는 민족개조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도시에 왔소. 우리는 이 땅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건설할 것이오. 이 혁명의 궁극적 목표는 보통 인민들의 최대 행복이오. 당신은 이를 기초로 역사적인 문서를 작성하게 되는 것이오.(184쪽)

 

  ② 지상천국의 건설은 인류의 우매한 꿈, 오랜 망상 중의 하나이다.(125쪽)

 

  ③ 당신들이 말하는 세계니 정의니 혁명이니 하는 말들이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오. 그것은 역사적으로 오래 전에 곰팡이가 끼었지만 현재의 백일몽 속에 언제나 다시 피어나는 유령이기 때문이오.(229쪽)

 

  ④그런데 그녀가 없어지자 더 이상 공동체를 공고히 해줄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구성원들은 서로 대립했고, 분열된 공동체는 서로를 법정으로 끌고 갔다.(125쪽)


결국 『청동조서』의 작가에게 80년 5월의 광주는, "악몽을 꾸었을 따름"(82쪽)이며, "허구"(101쪽)이며, "다만 하나의 스캔들이었을 따름"(229쪽)이며, "하나의 그림자, 몽상에 지나지 않았으며"(237쪽), 다시 생각해 보아도, "한바탕 꿈"(239쪽)일 뿐인, 그래서 결국 "그것이 열정이 아니라 다만 열에 들뜬 전염병에 불과"(278쪽)했던 것이다. 작가는 일견 청동시대로 지칭되는 폭력의 반복에 대해 성찰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제주에서, 여수․순천에서 그리고 광주에서의 '반란'에 대해서 냉소의 시선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문학은 많은 것을 허용한다"지만 "김신운의 시도로 하여(정찬까지는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필자 주(註)) '오월'이 심연을 얻고, 광대무변한 시간을 얻는다."는 평가는 아무래도 지나치다. 작가가 알고 있건 모르고 있건 간에, 그가 그러한 관계를 원하든 원치 않든지 간에(김신운은 결코 원하지 않는 듯이 보이지만) 상관없이, 삶은 객관적이며 그 본질로서 사회적 ․ 역사적(삶이 의식을 규정한다)이라는 루카치의 전언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가. 대부분의 말은(순수 자연과학분야에서 사용되는 극소수의 언어 양식을 제외하면)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 작가의 개인적 세계관과 견해가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문학담론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작가가 의도했건 안 했건 문학은 작가 자신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다른 면에서 보면 『청동조서』는 일견 흥미 있는 서사물이기도 한데 그 까닭은 아마도 애매성의 문제라는 각도에서 설명 가능할 것이다. 인생이란 것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특히 5․18과 관련한 해석은 사실 여러 층위의 해석이 요구되는 까닭에) 그것과 관련하여 단순한 진리를 알게 되는 즐거움도 작지 않으나 그 진리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때도 우리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한꺼번에 다 실현될 수는 없다는 것이 부스의 견해이다. 예술가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선택을 해야 하는데, 한 종류의 책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어느 정도까지는 다른 종류의 책을 쓰기를 거부하는 행위라고 그는 말한다.  부스의 견해를 줄여(그리고 빌어) 말하면 이 소설은 애매성이라는 지적 쾌감도, 도덕적 정서적 흥미도 다 놓치고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7. 기억의 왜곡을 넘어서

 

5․18민중항쟁을 형상화하고 있는 대부분의 소설들은 (5․18이라는) 역사적 사실의 회상(기억)을 통해 그 사건이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문제 삼고 있다. 기억술의 창시자인 시모니데스에 얽힌 이야기는 이와 관련해서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시모니데스가 에스코파스라는 부자의 연회에 초대받아 주인을 칭송하는 노래를 부른다. 뿐만 아니라 레다와 백조, 레다와 신 사이에 태어난 카스토르와 폴루라는 신화적 형제에 대해 찬양한다. 주인은 그 노래의 반은 그 형제에게 돈을 받아야 하고 자신은 반만 지불하겠노라고 말한다. 갈등하던 시모니데스에게 어느 두 형제가 바깥에서 그를 찾는다는 전갈을 보내온다. 그 사이 연회장이 무너지고 연회장의 시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 밖에 나가있던 시모니데스만이 참사를 피한다. 시모니데스는 축하객들이 앉은 위치를 정확히 기억해내 시체들의 신원을 확인하게 한다. 시모니데스가 망자들의 신원을 확인해 준 덕분에 장례가 무사히 치러진다.


시모니데스의 이야기는, 기억이란 망자를 추모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기억만이 몰락과 죽음을 넘어설 수 있음을 시사해준다. 윌리엄 웨스트에 따르면, 시모니데스의 기억은 목숨의 빚에 대한 이중 보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문제는, 얼마나 기억을 잘 할 것인가도 아니고, 어떤 기억을 재생해야 할 것인가도 아니다. 어떻게 기억을 생산적인 존재의 생성을 위하여 재배치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이야기하면, 그것은 5․18이라는 국가폭력과 그로인한 인간존엄성의 파괴라는 상흔을 극복하기 위한 서사전략으로 그것을(기억을) 미학적으로 재배치할 것이 요구된다는 의미다.


그러한 문제제기는 소설이 사실에 너무 가까이 다가서면 미학적 요소가 감소되어 재미가 없고, 너무 멀어지면 역사적 의미가 후퇴하게 마련이어서 진정성을 포기해야 하는 곤란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다. 그날의 폭력의 정체와 대항 폭력으로서의 민중의 투쟁의 실상을 제시하면서, 항쟁의 의의와 역사적 진실을 탐구해야 하는 5․18소설들은 그러한 상호모순에서 쉽사리 벗어나기 힘든 어려움을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다시 말하자면, 80년 광주라는 특정한 시공간이 내포하고 있는 특수성과, 소설이라는 예술 장르가 지니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적 가치(미학)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지금까지 살펴 본, 그리고 앞으로의 5․18소설들의 과제가 되고 있다.


이제 5․18과 관련한 소설에서 총체적 재현은 더 이상 무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다. 임철우와 문순태의 소설을 마지막으로  1980년 5월의 광주에 대한 복원은 사실상 마무리 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5․18은 박제화된 기억으로만 남겨져야 할 운명인가.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사는 지금도 계속 쓰여지고 있다고 한다. 『태백산맥』은 100쇄를 넘겼다고 하고, 몇 년 전 개봉된 상업영화 『화려한 휴가』는 관객 수 1천만 명을 넘어섰다고도 한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 소설들이 얻을 교훈은 무엇인가. 역사적 진실과 개인적 진실의 행복한 접점을 찾아 낼 것, 기왕의 작품들이 놓치고 있는 구멍(틈새)을 더 깊고 더 크게 확장해 볼 것이 요구된다. 그 세부야 작가들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민중항쟁을 바라보는 작가의 올바른 역사의식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은 지적해야겠다. 본고는 문학텍스트는 진공 속에서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구체적인 역사적․정치적 상황 속에서 생산된다는 관점에서 '광주'가 무엇인가를 문제 삼고 있는 몇 편의 소설들을 살펴보았다. 허위의 세계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위한 타락된 추구의 이야기로서 소설이란, 필연적으로 하나의 자서전이며 동시에 사회적․역사일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모두들 자기가 보고 느끼는 그대로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무도 동일한 방식으로 세계를 보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다시 기억하기'라는 고통을 통과한 작가들의 열정과 올바른 역사의식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필자는 믿는다.


한 마디만 첨언하자면, '다시 기억하기'만 가지고는 5월 광주의 정신을 계승하거나 새로운 의미로 확장해 나가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최소한 2천 년대 이후 5월 문학의 생산과 소비가 정체되어 있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문학이 그것도 소설이 현실의 문제를 곧바로 적시하기는 곤란한 문제이기는 하되, 지방선거와 관련하여 탈당했던 성폭력 전력자를 다시 받아들이거나, 선거구 쪼개기를 통해 자기 식구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광주민주당'의 퇴행적 행태에 대해서도 문학은 죽비를 내리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광주의 5월이 역사 속에 박제되는 것을 늦출 수 있는 문학적 실천이라고 나는 믿는다.

덧붙이는 글 | 계간 <문학들> 2010년 봄호에도 같은 맥락의 글이 실렸습니다.


태그:#5.18 30주년, #5월 광주, #윤리적 분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